므두셀라의 도시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19 브랜드의 미래 (2011년 02월 발행)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시로가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1

 2050년 11월 11일. 탄소거래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70세의 김 회장은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송구스럽지만 원하시는 이상형 여자분의 데이터를 저희 회사에서는 도저히 찾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 회장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벌써 다섯 군데의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이런 통보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세 번째 결혼 상대자를 찾고 있는 김 회장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165cm정도의 키, 갈색 머리, 갈색 눈동자의 소유자. 이 정도는 길거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스타일의 여자였다. 여기에 단서가 붙는 것이 문제였다. 반드시 ‘시인’일 것. 결혼정보회사의 매니저들은 그 단서를 볼 때마다 난감해했다. ‘시인’이라는 직업은 이미 40년 전에 사라지고 만 골동품과도 같았다. 시는 구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상한 데이터의 한 종류였으며, 이집트 벽화의 기호처럼 난해해서 요즘 사람들은 그러한 상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전화를 받고 김 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 코칭이 있는 멘탈 코치와 접속했다. 코치는 이전의 결혼생활이 실패한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똑같은 여자의 유형을 찾는 것은 김 회장의 젊은 시절, 마음속 깊은 상처 때문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김 회장도 물론 알고 있는 바였다. 그 상처가 마치 위대한 개츠비처럼 자신을 지금의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도.

 

“회장님의 그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앞으로 남은 긴 생을 행복하게 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회장님의 예상 수명은 150세인데, 앞으로 남은 80년을 그 상처 속에서 또다시 헤매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남은 80년을 상처 속에서 헤맨다…?”

 

김 회장의 실제 나이는 70세였지만 외모는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30대 중반의 건장한 미중년처럼 보였다. 또한 김 회장이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특정한 나이 고안법이 인기였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살아온 시간을 세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기대수명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나이 만큼이나 젊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전자 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대략적인 수명을 알고 있었고, 나노주스나 기타 신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을 연장시키기까지 하는 시대였다. 그 계산법으로, 김 회장은 앞으로 80년을 더 살 수 있었다.

 

 

2
특이점 클럽 그리고 아담주스

그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특이점클럽의 회원이라는 점이 컸다. 김 회장은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2025년에 특이점클럽의 정식회원이 되었다. 특이점클럽은 미국의 유명한 과학 기술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기술과 철학을 따르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로, 여기서는 레이 커즈와일과 그의 연구 그룹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신기술들의 수혜를 먼저 받을 수 있는 특혜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트랜스휴먼 프로그램’이라 불렀다. 덕분에 김 회장은 당시 나이 45세에 한국에서도 소위 상위 10%만이 누릴 수 있다는 ‘아담주스’의 혜택을 맛보았다. 아담주스는 혈액 속에 나노로봇이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몸속에 있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암세포 같은 병원체를 없애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완벽한 자가면역반응을 통해 생물학적 면역계가 지닌 여러 단점들을 없애 주는 것이다.

 

게다가 김 회장이 마신 아담주스 v5는 노화를 역전시키는 놀라운 효과가 보고되어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담주스 v5는 텔로미어 유전자 조작으로 노화를 역전시키는 효과까지 있는 신비의 신약으로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김 회장의 외모는 현재 70세라는 그의 나이와는 전혀 상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만날 때 마다 “더 젊어지시네요”라는 말을 줄곧 던지곤 했다.

 

그 덕분에 김 회장은 결혼정보회사에서 VVIP고객이며 A등급으로 통했다. 그의 재산과 사회적 명성, 게다가 너무 어리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중년의 준수한 외모는 결혼을 고려하는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데 충분했다. 70세라는 그의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관건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아담주스를 꾸준히 복용한다거나 새로운 고가의 영생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구매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경제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원하는 여자들에게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김 회장 같은 사람들이 인기였다.
남은 80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멘탈 코치의 말대로 상처 속에서 헤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찔했다. 그때 유리창의 모니터로 실시간 동영상 뉴스기사가 떴다.

 

20~30대 젊은 남성들 자살률 심각. 취업난과 결혼난에 허덕여!!!!
“우리는 이제 우리 또래뿐 아니라,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들과도 경쟁해야 한다구요.
취업뿐 아니라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직장을 못 구하자, 25세의 제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70대 노인네랑 지난주에 결혼해 버렸어요. 이런, 제길….”
-  25세, 스톡홀롬의 빈트의 인터뷰

 

새로운 인류, 트랜스휴먼

요즘의 청년들에게 ‘청춘’이라는 말은 그 옛날의 ‘열정’ 혹은 ‘패기’라는 단어와 사뭇 거리가 있다.
오히려 ‘미숙함’과 ‘가난’이라는 단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은 주로 육체를 이용한 노동직이나 생산직으로 전락했다. 기득권을 중장년과 노인들에게 빼앗겨 버린 청년들의 분노는 자연스럽게 범죄를 잉태하게 했다.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주 계층이 20~30대 청년층이어서 사회는 이들을 계도하는 데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국가는 기업들에게 각종 세금혜택을 줘 가며 청년 취업을 권장하지만, 결국 기업이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간의 원숙한 경험과 다소 보수적인 사회관 및 조직관을 가진 중, 노년층을 선호했다. 이들은 전문성과 삶의 지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트랜스휴먼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류가 된 사람들이었다. 김 회장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김 회장은 특이점클럽의 커즈와일 박사에게 감사했다. 자신도 인생에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처음 커즈와일 박사가 아담주스를 김회장에게 추천했을 때도 그는 긴가 민가했다.

 

“헤이, 필립. 불멸을 두려워하지 말게나. 발명은 우연치 않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법이지. 내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영생프로젝트를 고안하고 준비했지만 매번 0.01%의 오차로 실패를 거듭했는데 아 글쎄, 미항공우주국 NASA에서 브레인 탱크들인 우주공학자들의 프로젝트를 연장시키기 위해서 만든 신물질에 힌트를 얻게 되었네. NASA는 혹여라도 있을 우주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신무기를 개발했는데, 이 사람들이 죽으면 다음 세대가 프로젝트를 물려받기가 어려워서 이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프로젝트를 나와 같이 고안한 거지. 물론 대성공이었구 말이야. 암튼 내 말 믿고 먹어 보라구.”

 

김 회장은 여러모로 특이점클럽에서도 혜택을 받은 자였다. 커즈와일조차도 자신의 저서에 김 회장의 케이스를 자주 언급하며 성공 사례로 들먹였다. 커즈와일이 회장으로 있는 세계미래포럼이나 각종 학술 연구 발표회에 살아있는 케이스로 김 회장과 동행하기도 했다. 덕분에 김 회장은 커즈와일과 매우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커즈와일은 선배 트랜스휴먼으로서 김회장의 멘토 역할을 해주곤 했다.
김 회장은 멘탈 코치와의 코칭 결과가 계속 마음에 걸리자, 이번에는 커즈와일에게 직접 화상 채팅을 시도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젊은 청년의 하소연이 담긴 동영상이 흘러나오던 유리창 모니터에는 커즈와일의 얼굴이 활짝 웃고 있었다. 김 회장의 고민에 대한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가. 두뇌 임플란트를 추천하네. 그런 지난날의 상처는 정신적인 암이라고 생각하네. 얼른 지워 버리고 멋진 인생을 살게나.”

 

김 회장이 예상하던 대로였다. 이 시술은 20년 전에 개발된 것으로 처음에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재생이 목적이었으나 나날이 기술이 발달하자, 재생은 물론이거니와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버리는 효과도 얻게 되었다. 어린 시절 성폭행이나 학대를 받은 경험으로 깊은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인공 해마를 자칫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반드시 정신과 의사의 처방과 진단이 필요한 시술이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 직면

김 회장은 원하기만 하면 커즈와일의 도움으로 의사의 처방 없이도 두뇌 임플란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 받은 과거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망설였다. 20대 첫사랑에게 받은 상처와 그녀를 다시 찾고 싶다는 욕망은 자신의 삶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물론 두 번의 결혼 실패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상처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이전의 아내들에게서 그녀의 모습을 찾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솔직한 그의 마음은 좀 더 성공해서, 좀 더 근사한 사람이 되어서 첫사랑이었던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김 회장은 스스로를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이라고 여길 때가 많았다. 굳이 그녀에게 자신을 왜 떠났는지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서 지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와 비슷한 스타일의 여자만을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기억을 지우라니…. 역시 커즈와일다운 발상이었다. 커즈와일은 인간의 상처나 결핍이 고통스럽지만, 때로는 열정과 창조적인 힘으로 형질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섯 번 째 결혼정보회사로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고 다시 멘탈 코치와 접속했다.

 

“내 기억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두뇌 임플란트도 방법이겠지요.”
“그건… 싫습니다.”
“그럼…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 상처와 다시 직면하는 것입니다.”
“…….”

 

김 회장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구글에 접속했다.

 

“케이.”
그녀의 이름과 그녀가 썼던 시를 입력했다. 과연 데이터가 있을까? 오래전 일인데…. 몇 번을 반복적으로 검색한 후에 그녀에 관한 정보와 기사들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구글은 이를 바탕으로 그녀가 한 전원 소도시의 도서관 문화센터에서 ‘시창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김 회장은 오랜만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70세일 텐데…. 아직도 시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나 보군.”

 

 

내 기억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그 상처와 다시 직면하는 것입니다.

 

 

3
30대 중반의 남자, 70대의 여자

김 회장은 그녀가 살고 있는 전원도시로 찾아가 도서관 문화센터의 ‘시창작교실’에 등록했다. 교실에는 70대로 보이는 자연인 노인들이 2~3명 앉아 있었다. 30대 중반의 외모로 보이는 김 회장이 들어서자 교실 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시에 관심이 있네?”
“이봐 자네, 시가 뭔 줄 알기나 하는 거야?”

 

교실 안은 호기심 어린 질문 공세로 가득 찼다. 교실 한가운데에 그녀, 케이가 환한 미소로 웃고 있었다. 70대의 자연 나이 그대로이지만, 주름진 얼굴과 연한 은발은 오히려 그녀의 기품과 매력을 더해주었다. 그녀는 자연에 순응하며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김 회장은 순간, 트랜스휴먼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고 자연인 그대로 그녀와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케이는 김 회장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상한 일이었다. 외형으로만 보았을 때 그 누가 과연 둘을 옛날의 연인 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왜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케이가 물었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음미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 시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케이는 김 회장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환한 미소를 보냈다.

 

김 회장은 그녀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며 의도적으로 그녀 주변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녀 또한 시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 김 회장에게 많은 애정을 가져 주었다. 둘은 스승과 제자로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케이는 김 회장을 제자이자 아들처럼 여기고 시에 대해,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김회장은 그녀에 대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현재 직접 시를 쓰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 하지만 시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여전해서 사람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전파한다는 사실이었다.

 

“왜 시를 쓰지 않나요?”
김 회장은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잔잔한 미소만 지을 뿐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작은 전원 소도시로 내려와 그녀 곁에서 지낸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의 시간은 김 회장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옛 연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못한 채 그 옆을 맴돌아야만 하는, 그러나 그 시간이 자신이 보낸 긴 인생의 시간 중에서 최고로 의미 있고 기쁜 순간들이라는 복합적인 감정들로, 김회장은 하루에도 몇 편씩 저절로 시가 써졌다. 그 시를 케이에게 보여 주면, 그녀는 커다란 눈을 빛내며 감탄해 주곤 하는 것이었다.

 

23세에 만나 1년을 연애하고 헤어진 첫사랑과 재회하게 될 줄이야…. 물론 연인이 아닌, 스승과 제자사이로 변하긴 했지만 말이다. 둘은 또 다른 의미의 연애를 하고 있는 듯했다.

 

 

4
브레인 스캔을 권하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수업 중에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는 10년 전 심장병으로 쓰러져 인공심장을 이식했는데 또다시 재발한 것이다. 매년 인공심장을 업그레이드해 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몸 관리에 소홀했다. 김 회장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가장 최근에 나온 인공심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재수술을 권했다.

 

“신이 나를 부르시는 것 같아요. 떠날 때가 되었어요.”

 

그녀는 인공심장의 업그레이드를 거부했다. 김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얼마든지 생명을 연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이런 원시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하기야 그래서 시라는 원시(?)의 창작도 하는 것이리라. 김 회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어렵게 결심해서 그녀를 만났는데, 만난 지 한달 만에 다시 그녀를 떠나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 회장은 특이점클럽의 회장인 커즈와일에게 자문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영원히 살게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알잖아요.”

 

“그녀가 인공심장 업그레이드를 거부한다고? 이런, 그냥 죽겠다는 이야기군. 몇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 첫째, 브레인 스캔을 권하네. 얼마 전에 우리 특이점클럽의 회원인 레디오 가가가 자신의 뇌를 스캔해서 최신형 바이오기판에 업로드했지. 그녀도 아담주스를 마셨기 때문에 트랜스 휴먼으로서 아마 150세까지는 끄떡 없겠지만 그 후에 혹시 어떻게 되더라도 우리는 가상 세계에서 그녀를 계속 만날 수 있네. 그녀는 아마 그곳에서도 계속 작곡하고 곡도 발표할 걸세… 어때 멋지지 않나?”

 

“브레인 스캔이라… 두 번째 방법은요?”

 

“혹시, 그녀가 알코어 팔찌를 차진 않았나? 하기야 인공심장 업그레이드도 하지 않는 마당에 영원히 살겠다고 자신의 육체를 냉동시켜 영생 프로젝트가 완성된 뒤에 깨어나겠다고 냉동인간이 될 리는 없지. 하지만 혹여 모르니 지금이라도 알코어재단에 의뢰해서 그녀의 육체를 인체 냉동 보존 서비스에 신청하는 것이 어때? 자네도 알다시피,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 월트 디즈니 외에도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도 이 서비스로 영생 프로젝트가 완성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네.”

 

과연 그녀가 이런 방법을 수락할까? 김 회장은 병상에 누운 케이에게 찾아가 브레인 스캔과 알코어재단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는 힘없이 미소만 지었다.
“조금만 더 당신의 시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 살아만 있어 주세요. 제발….”

 

김회장은 그녀에게 간청하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강했다. 게다가 그녀는 더 이상 병원 측에 그 어떤 약도 처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창조주가 허락한 죽음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수명이 연장된 세상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행태들이 생겨났는데 특히 최근에는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들은 죽음의 순간에 그 어떤 인공적인 장치도 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생명이 탄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축하를 하는 것처럼, 죽음을 앞두고도 생전에 사랑하던 사람들을 모아 놓고 파티를 열며 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 해주는 일명 ‘타나토스 컨설턴트’도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케이와 함께 한 화요일

죽음에 대한 그녀의 고집 때문에 실의에 차 있던 김 회장은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1990년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아시죠? 모리라는 교수의 죽음을 앞두고 그 제자가 매주 화요일에 찾아와 나눈 인생의 여러 이야기들이 책으로 묶여 나온 것 말이에요. 나에게 좀 더 시에 대해서 듣고 싶어했죠? 그럼 ‘케이와 함께한 화요일’ 어때요? 촌스러운가요?”
그녀는 매주 화요일 자신의 병실로 찾아와 자신과 함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책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김 회장은 죽기 전의 그녀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인생, 신, 삶, 사랑, 행복, 그리고 슬픔, 고통 등등…. 여태껏 23세의 케이만을 기억하던 김회장에게는 그간의 인생 속에서 그녀가 겪고 정리하고 농축시킨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쁨이었다. 죽기 전의 마지막 선물을 자신에게 베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회장은 그녀에 대해서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을 넘어선, 존경심까지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조바심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듣고 싶던 단 한 가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케이, 그녀는 첫사랑 즉 김회장 자신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인생에서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나. 그녀에게 첫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던가.’

김 회장은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김필립이라는 사람을 모르세요? ”
필립은 김 회장의 젊은 시절 본명이었다. 그녀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동자의 동공이 풀리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누구… 죠?”
그녀는 모른다고 했고, 그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 순간, 김 회장은 폭풍과도 같은 절망 속에 휩싸였다. 김 회장은 너무나도 간절히 알고 싶었다. 그녀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 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혹여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왜 그러는 것인지, 그리고 그녀를 이렇게 지상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김 회장은 커즈와일의 자문대로 그녀에게 ‘브레인 스캔’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정리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요. 선생님의 생각을 정보와 데이터로 만들어 제가 알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정말이지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시와 인생에 관한 좋은 책을 쓰고 싶어요.”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그녀도 김 회장의 진심 어린 눈빛에 흔들렸는지, 아니면 시에 대한 열정과 기억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설득에 동의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허락했다.

 

 

5
저의 뇌에 다운로드해 주십시오

커즈와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 축하하네. 그래, 내가 가장 좋은 바이오기판으로 준비하라고 한국지사에 부탁해 놓지.”
“아니오, 기판은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제 뇌에 다운로드해 주십시오.”

 

커즈와일은 잠깐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김 회장이야. 나는 이미 내 가까운 지인들 몇몇의 뇌 속 데이터를 그렇게 다운받고 훨씬 더 풍부한 교감을 하고 있다네. 다운 받은 상대방의 기억을 내 머리 속에 전이시키는 것이지. 상대방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야. 옛날에는 기껏 ‘연애 혹은 사랑’이나 ‘공감’이라는 원시적인 방법을 써야했지만 이제는 이 기술이 나와서 얼마나 효율적인지 몰라. 이것도 곧 대중화될 걸세. 그땐 자네도 이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하하!”
그리고 마지막 단서를 덧붙였다.
“다른 사람의 뇌 속 데이터를 다운 받는 사람들은 정체성 혼란으로 초기에는 힘들어하거나 심지어는 분열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네. 자넨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드디어, 그녀의 머릿속 모든 기억과 데이터를 브레인 스캔하는 날이 되었다. 그녀는 김 회장의 머릿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김 회장은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케이의 기억을 헤집어서라도 그녀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라도 제자와 스승이 아닌, 23세의 연인으로 잠깐이라도 다시 조우하고 싶었다. 브레인 스캔 시술을 앞둔 그녀의 눈빛은 담담했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사람은 김 회장이었다. 혹여라도 이 수술로 그녀의 약한 심장에 충격이 가해져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되었다. 물론 의사들은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말이다.

 

 

병실에는 적막만 흘렀다. 그녀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 미소를 보내며 눈을 감았다. 뇌 전문 공학자는 기다렸다는 듯 브레인 스캔 시스템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삶의 데이터가 고스란히 김 회장 자신의 뇌로 전이된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추억부터 최근의 사건과 감정까지 한 편의 파노마라처럼 김 회장의 머릿 속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그녀의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 속에서 김 회장은 당황했다. 그 기억 속에는 김필립, 즉 김 회장 자신의 이야기는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김 회장은 오열했고, 브레인 스캔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보낸 것에 대한 충격과 브레인 스캔 때문에 그녀를 일찍보냈다는 죄책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이 없었다는 사실로 김 회장은 패닉증상을 보였다. 의료진은 브레인 스캔의 후유증으로 정체성의 혼란이 온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즉시 입원시켰다.

 

 

6
그리고, 80년을 더 살아야 한다

“혹시, 여기가 김필립 선생님의 병실인가요?”
병실에 누운 채 며칠이 흘렀을까? 김 회장이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려 갈 무렵 한 손님이 찾아왔다. 순간, 김 회장은 깜짝 놀라서 침대를 박차고 뛰어나갈 뻔했다. 23세의 케이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젊은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케이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어머니는 기억 속의 일부를 두뇌 임플란트를 통해서 지우셨어요.”
김 회장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사랑하던 분과 헤어지고 나서 그 추억의 힘으로 시를 썼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추억의 고통은 심장이 약한 어머니에겐 독이 되었지요.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 주치의의 강력한 제안으로 그 시절의 기억을 지우셨어요. 어머니는 두뇌 임플란트를 하기 전까지 몇 번을 거부하셨어요. 옛사랑과의 추억이 삶의 존재 이유이자, 시를 쓰게 하는 힘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심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요. 그리고 그 후론 시를 쓸 수 없었어요. 가르치는 일만 하실 뿐….”

 

김 회장은 그제야 브레인 스캔으로 다운로드 받은 그녀의 뇌 속 추억과 기억들 가운데 왜 자신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끝내 23세의 케이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 또한 그 순간을 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살다가 심장병까지 걸렸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7

김 회장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사무실의 가죽의자에 앉자마자 멘탈 코치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곧이어 문자 메시지가 떴다.
“과거의 상처와 직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앞으로 남은 80년을 성공적으로 살아가실 것입니다.”

 

김 회장은 답신을 하려다 멈추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남은 80년이라….”

 

자신의 남은 인생이 이렇게 길고 막막하다고 느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런 생경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는 잘 몰랐다. 30대 중반의 젊은이로 보이던 김회장에게 갑자기 70대의 피로감이 확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때, 책상 위의 알코어재단에서 날라 온 인체냉동보관 동의서가 담긴 책자가 눈에 들어왔다.

 

“므두셀라의 꿈을 실현시켜 드립니다.
150세의 인생이 아쉬우시다면, 알코어재단의 인체 냉동 서비스를 신청하세요.
과학의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합니다.
10년 뒤면 불멸을 위한 아담주스v7이 개발될 예정입니다.
10년만 영하 196℃의 액체 질소 안에서 평안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10년 후엔, 당신의 육체는 물론 소중한 뇌도
당신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누리십시오.”

 

그는 갑자기 그 동의서를 들어 거칠게 찢고는 창밖으로 휘~ 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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