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라는 이름의 A.C.T...G
봉인된 동산에 오르니 내 매듭이 있더라 신의 매듭을 품고 인간이 다시 엮으니 새로운 인류가 나타나더라.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19 브랜드의 미래 (2011년 02월 발행)

2000년 8월 29일 아담 내쉬(Adam Nash)는 세계 최초로 태어난 맞춤아기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이 아기는 판코니 빈혈이라는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여섯 살짜리 여아에게 조직이 일치하는 골수를 제공할 목적으로 시험관 수정을 통해 태어났다. 즉 여아의 조직과 일치하는 골수를 가진 아기를 낳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난자 12개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다음, 여기서 얻은 10개의 배아 가운데 유전자 검사에서 목적에 맞는 하나를 골라 임신한 뒤 ‘아담’이라는 이름의 남자 아기를 낳았다. 이어 아담의 탯줄혈액을 아이의 골수에 이식해 3주일 만에 골수의 기능을 떠맡아 혈소판과 백혈구를 만들어 냄으로써 아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4월 8일 영국에서 유전성 희귀 빈혈을 앓고 있는 4살 난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맞춤아기 출산을 희망해 온 한 부부가 소송을 제기해 영국 고등법원으로부터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맞춤아기 출산은 새로운 기술의 합법적 사용’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1

2030년 2월 어느 날, 37세의 리코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의사에게 전해 들었다.

 

“이런… 쯔쯧, 임신이네요.”

 

리코에게는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그것도 최고의 유전자로 디자인해서 낳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계획된 임신이 아닌, 자연임신이었다. 2030년에 자연임신의 의미는 형질이 나쁜 유전자를 미리 걸러 내지 못해 ‘불완전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자연임신은 축복 받지 못한 잉태였다.

 

이 시기에 섹스는 전적으로 쾌락만을 위한 행위이며, 생명의 생산은 철저하게 계획되고 고안된 난자와 정자를 통해 시험관에서 수정되고 인공자궁에서 길러져 탄생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리코는 20대 초반에 난자를 냉동 보관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미국의 익스텐디드 퍼틸리티라는 업체를 통해 수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서 보관한 자신의 난자를 결혼 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똑같이 20대에 냉동 보관한 건강한 정자를 통해 유전자를 선별하고 수정한 것이다.

 

그런데, 자연유전자의 아기를 갖게 되다니… 리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 케이와 딸 알이 리코를 반겼다. 둘은 누가 보아도 우생학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케이에게는 운동신경에 관한 유전자를 좀 더 신경 썼고, 여자인 알에게는 외모와 관련된 유전자에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아이들은 잘 자라 5살, 4살이었고 리코의 자랑거리였다. 이 두 아이들은 리코의 모성을 확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코는 자신의 자랑인 케이와 알을 생산할 때의 추억을 떠올렸다.

 

 

2
 ‘당신의 아이를 직접 디자인하세요!’
만일 당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당신 자녀를 우연에 맡기겠습니까?
눈동자 색깔, 몸무게, 키, 아이큐, 운동이나 음악적 재능, 공격성, 마약 중독 가능성 여부 등
당신의 아이를 직접 디자인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유전자가 던지는 주사위 놀이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시겠습니까?

 

리코는 맞춤아기 카탈로그를 들춰 보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드름 피부, 그리고 고도근시는 절대 안 돼요. 내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주눅 들며 살았는데….”
남편은 리코가 보고 있던 카탈로그를 흘깃 보고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키가 작아서 공도 만져보지 못했던 거 이야기했지? 난 우리 아들을 반드시 농구선수로 키우고 싶어.”
리코는 남편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대 남자들에게 키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 중 하나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부모는 키 큰 사람이 인생을 사는 데 유리하다고 믿었고, 실제로 각종 통계가 그것을 증명했다. 키가 크면 취직도 잘되고, 더 매력적인 배우자를 얻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키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1980년대에 등장한 인간성장 호르몬은 난쟁이의 치료를 주 목적으로, 극히 적은 환자에게만 처방될 예정이었다가 10년 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품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자식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부모들은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부모는 달랐다.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 순리이며 그 외에 어떤 인위적인 조작(?)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전근대주의적(?) 발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섭취하는 ‘키크는 호르몬’과 ‘키가 커지는 운동화’ 등의 혜택을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남편은 자신이 그런 혜택을 받았으면 169cm의 키가 180cm로 클 수도 있었다고 늘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이는 자연스레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리코도 알고 있었다. 키 작은 남자들의 콤플렉스와 그들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말이다. 실은, 남편과 결혼할 때도 가장 망설이던 부분이 바로 그의 키였으니까.

 

“아, 그럼 이렇게 해요. 나는 딸을 디자인할 테니, 당신은 아들을 해요. 돈은 많이 들겠지만, 괜찮죠?”

 

리코와 남편은 맞춤아기센터를 찾아가 미리 저장해 놓은 난자와 정자를 통해 체외수정IVF을 시키고 이를 통해 얻은 몇 개의 배아에 대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DG으로 유전자를 해석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며칠 후, 리코는 이메일을 통해 각각의 배아가 지닌 유전적 프로필을 다운 받았다.

 

메일의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각각의 배아가 착상해 성장하면 사진과 같은 모습의 어린이가 되고, 장성한 다음에는 이러한 어른이 됩니다.”
리코의 어린 시절인 2000년에는, 컴퓨터에서 남자와 여자의 사진을 합성하여 미래에 태어날 아기의 모습을 가상으로 만들어 보는 놀이가 있었다. 리코는 30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 이와 비슷해서 놀랍기까지 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제외시킨 완벽한 아이를 만든다는 데 무슨 일을 못할까 말이다.

 

 

리코와 남편은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프로필 하나를 클릭했다. 클릭 후 태어날 아기의 14세의 예상 사진이 모니터에 떴다. 푸른 눈동자에 갈색 머리칼을 지닌 귀여운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리코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피부가 깨끗하네요. 다행이야. 정말.”
그리고 리코는 기분 좋게 지능과 건강 상태를 클릭했다.
‘심장병에 걸릴 위험 78%, IQ 108.’

 

리코와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당신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

 

남편은 리코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리코는 성난 말투로 대꾸했다.
“뭐가 걱정이에요. 이 아이를 안 고르면 되잖아요.”
그리고는 재빨리 다른 배아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키가 훤칠하고 운동신경이 좋은 소년의 모습이 나왔다. 이번엔 남편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나 다음 항목이 문제였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 65%, IQ 102.’

 

리코와 남편은 이번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리코는 남편의 예민한 성격과 조울증적 기질을 평소에 불편해하던 터라 자신의 아기에게는 절대 그런 성격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둘은 맞춤아기센터에서 보내준 20개 배아의 프로필을 모조리 훑어보았다. 하지만 100% 만족스러운 아기는 찾을 수 없었다. 키가 크면 피부가 문제였고, 건강 상태가 좋으면 지능이 말썽을 부렸다.

 

“우리 유전자로만은 안 되겠어요. 유전자 디자인 서비스를 받아야지. 돈이 좀 더 들더라도 그게 아이들의 인생을 생각했을 때는 훨씬 더 낫다구요.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멋진 미래를 살아야 하잖아요. 안 그래요?”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유전자에 운동성과 키, 그리고 외모와 지능을 특별히 새롭게 배치하여 이른바 강화된 유전자로 완벽한 아이들을 만들어 냈다.

 

그 아이들이 케이와 알이었다.

 

 

3

리코가 자연임신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남편은 처음엔 리코의 부정을 의심했다. 그는 젊은 시절 대량의 정자를 추출해 냉동 보관하고 그 후 인공피임 수술을 했던 터라 자신이 아기를 자연적으로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인공피임 시술이 자연적으로 풀릴(?)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리코에 대한 의심을 내려 놓았다.

 

 

 

 

리코의 임신 사실이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사태는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친구들과 동료들은 리코를 걱정했다. 마치 2000년대에 장애아를 낳는 것과 같은 안타까움과 염려를 리코에게 보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지구 상에 몇몇 나라에서는 유전자를 선별해서 아기를 디자인하지 않는 경우, 범법 행위로 간주해서 무지막지한 벌금을 매기기도 하는 시대였다. 아직까지 한국은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었서 벌금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면 열등한 존재로 자랄 것이었다.

 

 

많은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유전적 질병이나
성향의 여부를 가려내어 직원을 채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우울증이나 폭력성, 각종 중독이 우려되는 성향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다.
행동의 결과가 아닌, 오로지 유전자의 감별로
행동을 예측하고 사람을 뽑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2030년은 우성 유전자로 디자인된 아이들과 자연유전자로 태어난 아이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이 너무나 달랐다. 많은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유전적 질병이나 성향의 여부를 가려내어 직원을 채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우울증이나 폭력성, 각종 중독이 우려되는 성향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다. 행동의 결과가 아닌, 오로지 유전자의 감별로 행동을 예측하고 사람을 뽑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유엔 인권위나 많은 NGO단체에서는 수없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리코는 당연하게 ‘낙태’ 수술을 생각했다. 배아로 수정된 이후에는 유전자 디자인을 할 수 없다. 자연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강화된 유전자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운명을 안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리코의 막강한 시댁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들은 이미 농경사회부터 살아온 노인네들이라 뱃속에 생긴 아기를 함부로 없앤다는 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있을 수 없다는 종교 아닌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시댁에서는 케이와 알의 막대한 유전자 디자인 비용을 지불했고, 이외에도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터라, 리코는 시댁어른들의 눈 밖에 나는 일을 감히 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리코는 자연 유전자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4

리코는 아기를 낳는 과정도 힘들었다. 2030년의 여자는 산고의 고통 없이도 아기를 얻을 수 있었다. 출산의 모든 과정이 계획과 맞춤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산뜻한(?) 생산시스템 덕분이었다. 자연임신과 자연분만은 제3세계에서나 행해지는 비인권적이고 원시적인 행위로 치부되곤 했다. 이제 여자들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후 그 벌로 창조주로부터 받은 산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미 산부인과의 모든 시술은 시험관 수정과 인공자궁배양으로 대체되어서 요즘 젊은 의사들은 대부분 자연분만 등의 시술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리코는 구글을 통해서 찾고 찾아 겨우겨우 나이 든 노의사를 만나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리코는 죽음으로 치닫는 무지막지한 산고를 겪은 후, 가까스로 아기를 낳았다. 아기를 받은 간호사는 갓난아기의 발바닥에서 피를 뽑아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심하게 일러 주었다.
“우울증 65%, 지능 110, 실독증 78%….”

 

리코는 침상에 누워서 절망했다. 게다가 실독증이라니… 정상적인 지능이라도 사회에 적응하기는 이미 틀렸다. 자신의 여동생이 실독증으로 책을 읽을 수 없어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황폐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기는 일명 ‘육손이’ 즉 손가락이 여섯 개로 태어났다. 새끼손가락 밑에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었던 것이다. 좋은 유전자로 디자인되지 않은 티가 이렇게 여실하게 드러날 줄이야….

 

다행히 육손이 제거 수술은 간단했고, 외모적으로는 일단 정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 또 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겨서 자신을 깜짝 놀라게 할지 리코는 불안하기만 했다.

 

 

“예부터 육손이는 손재주가 많다고 했으니 잘 키워라.”

 

나이든 시어머니는 그렇게 말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코는 간호사가 건네준 간난아기를 안아 보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5

자연 유전자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제이였다. 제이는 자라면서도 케이와 알에 비해서 수시로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고 게다가 공부도 못했다. 이 세상에서 열등한 존재로 살아갈 것이 뻔한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9살의 제이가 언니 오빠와 놀다가 싸우고 난 후 울면서 자신에게로 달려왔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숭숭 구멍이 뚫린 여드름 피부에 안경을 쓰고, 게다가 겁에 질리면 말을 더듬고 입술을 깨무는 것까지… 그 아이는 제이가 아니라, 리코 자신이었다. 제이는 리코가 그토록 싫어하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빼 닮았던 것이다.
리코는 자신의 품에 달려드는 제이를 밀쳐 냈다. 제이는 어안이 벙벙해서 엄마를 쳐다볼 뿐이었다. 자신의 열등한 모습을 그대로 닮은 제이가, 리코는 불편했다.

 

유전자가 다르면 형제애도 없는 것일까? 남매지간인 케이와 알도 제이를 은근히 따돌렸다. 하지만 제이는 엄마 아빠와 형제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할머니의 예언이 맞았는지 제이는 정말 손재주가 좋았다. 어릴 때부터 색종이나 찰흙으로 이것저것 만들어서 엄마 아빠에게 선물하고, 언니 오빠에게도 늘 근사한 것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리코는 웃으며 받는 척했지만, 제이가 보지 않을 때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세월은 흘렀다. 강화 유전자로 낳은 최고의 아이인 케이는 대학에 입학도 하기 전에, 그의 뛰어난 운동 유전자를 증명해 프로 농구선수로 유명 구단과 계약을 맺었다. 알은 슈퍼모델대회와 미인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잘난 두 아이는 리코의 자랑이었다.
사춘기가 막 지나 예민해지기 시작한 자연 유전자 태생의 제이는 리코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가 집 안에서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집을 나간 것이다. 리코와 가족들은 열심히 제이를 찾았다. 처음엔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단념은 생각보다 쉽게 되었다. 리코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슬며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6

리코가 간암 선고를 받고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의사에게 전해 들은 것은 케이의 결혼식을 얼마 앞두고였다. 리코의 자랑스러운 아들 케이는 당연히 같은 부류, 즉 맞춤아기로 디자인된 우성인자의 아내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강화된 유전자 계급의 사람들은 그들끼리만 결혼했다. 이들은 자연 유전자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이것이 사회 문제로 대두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과 동종 유전자 부류들과 결혼하고 아기를 생산해서 자신의 종을 강화하려는 성향을 띠고 있어서 사회의 이분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리코는 그러한 사회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리코는 얼른 수술을 마치고 결혼식에 참석할 생각에만 들떠 있었다. 이식수술만 받으면 쉽게 해결될 것이었다. 리코는 당연하게 자신의 뛰어난 자녀들에게서 간을 기증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케이와 알의 간은 리코의 것과 맞지 않았다.
“다른 자녀는 없나요?”
의사가 물었다. 리코는 머뭇거렸다.

 

“한 명이 있긴 하지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제서야 오랜만에 제이를 떠올렸다.

‘나이로 치자면 26살이 되어 있겠구나.’

 

제이의 어린 시절 유전자 조형표를 분석해 본 결과, 제이의 간은 리코의 것과 정확하게 100% 일치했다. 자신이 그토록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던 자연유전자 태생 제이에게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다니… 아이러니였다.
‘제이를 찾아나서야 하나. 수술 날짜와 케이의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리코는 마음이 복잡했다. 집을 나가도 애써 찾지 않았던 열등한 딸에게 이제 와서 엄마를 위해 간을 이식해 달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리코는 헛웃음만 나왔다.

 

 

 

 

복잡한 마음으로 병실에 누워 있는데, 옆 침대의 할머니가 TV를 틀었다. 병실 안 환자들이 모두 TV를 주시했다. TV 모니터에는 한 젊은 여자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유엔본부 건물 앞에서 자신이 만든 조각물로 행위 예술 및 시위를 벌이고 있는 NGO단체의 대표이자 예술가였다. 아이슈타인, 링컨, 루스벨트, 스티븐 호킹 등 우리가 알 만한,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의 조각품들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어서 자칫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그곳은 시위현장이 아니라 야외 갤러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멋진 조각품들 앞에 서서 당당하고도 품위 있게 연설을 했다.

 

 “아인슈타인, 링컨, 스티븐 호킹….
여러분, 이들이 없는 20세기가 상상이 되십니까? 이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검사가 가능했다면 아마도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인 이들은 틀림없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실독증과 마판 증후군 같은 유전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이였다. 안경을 쓰지 않은 것 빼고는 젊은 시절 리코의 외모와 너무나 흡사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늘 수줍어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면 말을 더듬던, 실독증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던 그 제이가…. 자연 유전자 태생의 열등 인간 제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옆 침대의 환자인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로 리코에게 말을 걸었다.
“참, 멋진 여자지요? 어쩜 저렇게 재주도 많고 말도 잘할까. 게다가 정의로운 일까지 하다니….
저런 사람이 진짜지. 원래 창조주가 만든 대로 태어나는 게 최고인 거야. 부모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몰라.”

 

 

이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검사가 가능했다면
아마도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
하나인 이들은 틀림없이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실독증과 마판 증후군 같은
유전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리코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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