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3. 알아야 할 지식과 알지 말아야 할 지식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권민  고유주소 시즌2.5 / Vol.25 BRAND, B자 배우기 (2012년 06월 발행)

나는 기업과 학교에서 브랜드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아홉 살 딸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과 비슷한 난감함을 겪는다. 특히 브랜드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브랜드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브랜드 전략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사과를 먹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의 맛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사과는 배처럼 맛이 시큼한 것도 있지만, 포도처럼 즙이 많고, 바나나랑은 맛이 완전히 다르고 그러니깐 딱딱한 파인애플 맛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사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브랜드 교육과 성교육

“아빠, 나는 언제 생리해?”

 

어홉 살 딸의 갑작스러운 이 질문은 휴일을 맞이해서 가족끼리 야외로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터졌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뒷자리에는 카시트에 앉은 일곱 살 아들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은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자동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도 어디서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질문을 해서 ‘나중에 알려 줄게’라고 대답을 회피한 적이 있다.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갔건만 딸의 표정에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확고함이 있었다.

 

자녀 양육에 관한 책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정확하지 않지만 딸의 질문에 대해서 아빠가 조곤조곤 알려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책에서는 어떤 내용을 얼마큼 이야기하라는 말은 없었다. 나는 운전 중이라 뒤를 돌아볼 수 없었고 옆자리에 앉은 아내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내는 나보다 더 막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 재치 있는(?) 대답으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아, 그 문제는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서 집에 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엄마가 너한테 할 말도 있고.”
이렇게 영리하게 피해 가는, 나의 순간적인 재치가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빠! 생리가 월경이지?”
이번에는 일곱 살 아들이 질문을 했다. 나와 아내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딸의 질문보다 더 당혹스러워 했다. 왜냐하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아들의 질문 공세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년 전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Why》라는 과학 만화책 전집을 중고로 사준 적이 있었다. 그 전집 안에는 아이들의 성교육을 위한 ‘사춘기’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우리는 미처 책의 구성을 살피지 못했다. 어느 날 여덟 살 딸이 ‘사춘기’ 시리즈를 읽는 것을 보고 순간 찜찜한 기분이 들어 읽던 책을 달라고 해 살펴보았다. 책은 성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여덟 살이 보기에는 민망하고 난해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압수하여 숨겨 두었다. 딸은 검열과 압수당한 이유를 물으며 다시 그 책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중에’ 보여 준다는 타협안으로 그때 역시 피해 갔다. 그렇게 덮어 두고 일은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1년의 시간이 지났다. 딸과 아들은 다른 집에서 피아노 개인레슨을 받다가 그집 서재에 내가 감추었던 ‘사춘기’ 책을 발견했다. 특히 딸은 왜 이런 내용을 알려 주지 않는지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피아노 연습이 끝나고 나를 기다리면서 부지런히 그 책을 탐독했다. 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야 딸의 눈빛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을 맞추어 보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게 되었다.

 

딸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딸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지식들은 딸이 자라면서 어디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는 딸의 입장이 되어서 궁금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기업과 학교에서 브랜드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아홉 살 딸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과 비슷한 난감함을 겪는다.

 

 

나는 기업과 학교에서 브랜드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아홉 살 딸에게 성교육을 하는 것과 비슷한 난감함을 겪는다. 특히 브랜드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브랜드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브랜드 전략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사과를 먹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의 맛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사과는 배처럼 맛이 시큼한 것도 있지만, 포도처럼 즙이 많고, 바나나랑은 맛이 완전히 다르고 그러니깐 딱딱한 파인애플 맛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사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는 난감함보다는 막막할 때가 더 많다. 그들에게 브랜드는 철학으로 그 중심을 잡고 자기다움을 끊임없이 연구해서 아이덴티티로 차별화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좋은 말이지’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브랜드 철학과 전략을 논하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말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내일이면 오늘보다 더 떨어지게 될 매출과 급락한 시장 점유율로 인해서 상관에게 깨질 판국에, 내가 강조하는 브랜드와 브랜딩은 그저 선비들이 글을 읽는 소리에 불과하다.

 

예전에 어떤 기업에서 ‘브랜드 비전 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강의를 하기 전에 교육 대상자 명단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주임과 대리들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브랜드 비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브랜드는 창업자의 철학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창업자의 가치 기준이 브랜드의 가치 기준이 되어야 하며, 창업자는 개인의 카리스마 리더십 대신에 브랜드의 가치에 헌신함으로써 브랜드 안에 모든 사람이 브랜드십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임과 대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때 나의 심정은 딸과 아들에게 그들이 땅에 나온 것을 황새가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잠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는 어려움과 같다.

 

브랜드를 공부하기 위해서 두꺼운 책들을 열어 보면 마치 브랜드에 관한 지식이 고차방정식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그림과 도표로 되어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고 낯선 개념들이기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이런 지식을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지식은 브랜드가 만들어진 다음에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서 나온 것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브랜드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지식이지 브랜드 창조 지식은 아니다. 만약에 그런 책을 읽고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누구나 성공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수많은 브랜드 교과서에서 다루는 다양한 브랜드 지식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 단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 외에 반드시 필요한 브랜드 지식은 이웃, 사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다.

 

 

브랜드 교육

만약 아들이 대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브랜드 런칭을 하겠다고 하면, 나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브랜드에 관한 지식을 알려 줄까? 예전에 딸에게 브랜드 지식을 가르쳐 주는 마음으로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딸에게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면서 참으로 ‘친절하게’ 내용을 구성했던 것 같다. 특히 그림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 사진과 사례를 풍부하게 넣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만약 아들에게 브랜드 교육을 시킨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없는 방법으로 브랜드를 알려 주고 싶다. 먼저 고생하고, 브랜드를 몸으로 체험하고 그리고 자신의 지식을 현장에 적용해서 고정관념과 얇은 지식이 깨지면서 눈물로 브랜드 지혜를 얻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브랜드 런칭은 항상 돈으로 인해서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브랜드는 돈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가치를 추구하다가 결과로 얻게 되는 ‘덤’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한마디로 브랜드의 매출은 ‘덤’이다.

 

무엇이 브랜드 교육인가에 대한 답변은 어렵지만 어떻게 브랜드 교육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다. 경영학보다는 인류학, 마케팅보다는 철학 그리고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이다. 이 세 가지의 학문의 공통점이 있다면 ‘관계’다.

 

이런 공통점을 알게 된 것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내 친구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가 오선지에 있는 음표를 보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멜로디를 듣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경외롭게 보였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지휘자는 수십 개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상황에서 하나의 악기 소리가 잘못된 것을 잡아 낼 수 있지?”

어린 아이 같은 질문이었지만 친구의 대답은 매우 심오했다.

“작곡에서는 음표와 음표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지휘에서는 악기를 보거나 상상하면 들려.”

 

아쉽게도 해답을 들었다고 그런 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아마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이런 것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나에게는 악보를 보고 음악을 상상해서 듣는 것은 신비롭다. 그러나 만약에 작곡자이며 지휘자인 내 친구가 브랜드를 통해서 어떻게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브랜드로 보고, 사람과 브랜드 간의 관계를 이해하면 보이지 않았던 문화가 보여. 그리고 시장을 볼 때는 브랜드라는 렌즈로 보면 생태계도 보일 거야.”

 

브랜드를 아는 것은 단순히 상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브랜드를 통해서 그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브랜드 교육의 첫 번째 시작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부터 해야 한다.

 

 

브랜드는 저절로 만들어진 경우는 없고 바로 사람의 목적에 의해서 창조된다.
따라서 브랜드를 누가 왜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브랜드의 운명은 달라진다.

 

 

브랜드는 저절로 만들어진 경우는 없고 바로 사람의 목적에 의해서 창조된다. 따라서 브랜드를 누가 왜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브랜드의 운명(라이프사이클)은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브랜드에 의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의 운명도 달라진다. 돈을 벌기 위해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사업 자체에 흥미가 있어서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등 어떤 사람이 브랜드를 만드느냐에 따라서 브랜드의 결과는 달라진다.

 

브랜드 교육의 두 번째는 브랜드를 어떻게 보느냐이다. 예를 들어 식용돼지와 애완돼지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식용뱀과 애완뱀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예전에 집 마당에서 닭을 키우는 사람이 있어서 무심코 언제 먹을 거냐고 물어보았다가 ‘애완닭’이라고 대답해서 무안한 적이 있다. 원래부터 애완닭은 아니고 아들이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 와서 이름도 지어 주고 키우다가 그만 정이 들어서 지금은 애완닭이 되었다고 했다. 어찌되었든 가축과 반려동물의 차이점이 있다면 죽은 뒤에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다. 반려동물은 묘지에 묻어주지만 가축은 먹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 브랜드는 가축의 관점을 갖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그런 브랜드들을 Cash cow(젖소)라고 부른다. 젖소의 우유는 ‘돈’이다. 우유가 신선도를 중요하게 여기듯이 돈도 ‘시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바로 현금(現金)과 현찰(現札)이다. 브랜드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현재’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돈이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미래’에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갖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든 브랜드를 일명 식용 가축 브랜드인 Cash cow라고 부르는 것이다. 브랜드 관점에서 캐시카우 브랜드를 브랜드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하다. 그냥 ‘가격 대비 만족이 높은 탁월한 상품’ 혹은 시쳇말로 ‘대박 상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브랜드의 조건 중에 하나는 지속성을 넘는 영속성이다. 그래서 현재 얼마나 젖을 많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젖소들을 만들어 내는가가 브랜드의 관점이다. 관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지는 것처럼 브랜드를 젖소로 보면 브랜드의 목적과 기준을 젖(돈)으로만 보게 된다. 브랜드를 굳이 소로 이해하고 싶다면 젖소가 아닌 종자소(breeding ox, 씨소)에 더 가깝다. 브랜드는 종자소처럼 계열, 라인 혹은 상품 확장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씨를 전파한다. 브랜드 교육에 있어서 브랜드를 젖소 관점으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랜드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지만, 그것은 결과여야만 한다. 바로 이 생각이 브랜드의 기원이 되어야 브랜드의 시작과 결과가 좋아진다. 마치 인간이 명예를 좇지 않고 돈만 좇다가 모든 것을 잃는 형편과 비슷하다. 명예와 부를 동시에 갖기 위해서는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고 브랜드에서는 이런 것을 브랜딩이라고 한다.

 

“아빠! 브랜드로 돈 많이 벌고 싶어요, 가르쳐 주세요.”
이런 질문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브랜드로 장사하고 싶은데 왜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죠?”
“돈을 벌기보다는 가치를 구축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냥 가르쳐 주고 싶지 않으면 그렇다고 말씀해 주세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성(Sex)과 돈(Money)은 다루기 힘든 인간의 욕망이다. 축복 받은 성의 결과물은 자식과 더불어 가정과 다음 세대를 이어 가는 매우 중요한 남녀간의 상호작용이다. 하지만 섹스가 오락으로 전락하는 순간 인간은 비참해지고 동물보다 더 천한 존재가 된다. 돈도 기능과 활용 면에서는 매우 지적인 시스템이지만 그 누군가의 권력으로 바뀌는 순간 모든 악을 동반한 욕망의 대상이 된다. 아쉽게도 이 극단의 두 모습을 깨닫는 사람과 순간은 매우 한정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성(Sex)과 돈(Money)에 관한 지식은 배운다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후회하고 아파야만 이것의 진실을 알 수 있다. 브랜드도 성(Sex)과 돈(Money)과 같은 계보에 있다. 브랜드는 욕망과 욕구의 대상이며, 허구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허영심과 계급의식을 만들어 낸다. 반면에 인문학적 가치로 사람들의 잠재력을 올려 주거나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브랜드 교육은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고, 인간을 알아가는 교육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브랜드의 B자를 Becoming으로 한 것은 사람은 사람으로 되어 가고, 브랜드도 브랜드로 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 이유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국어(모국어)를 따로 시간을 두고 공부하는 사람은 드물다. 글과 말이 직업인 사람을 제외하고 더 탁월한 모국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녹음기를 이용하여 발음 연습을 하거나, 국어사전을 보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어휘를 분석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작문 연습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내 주변에는 없다).

 

소비생활을 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도 역시 드물다. 비싼 디지털 전자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남이 쓴 사용후기는 보지만 전자 회로도를 공부하지는 않는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먹기 위해서 커피 함량을 공부하거나, 명품 가방의 원단과 품질을 공부하거나 아니면 물 브랜드에서 말하는 구성 성분을 연구하면서 사 먹지는 않는다. 시장에 가서 물건은 구매하는 것은 조국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습관적이고 직관적이며 충동적이다. 간혹 패션지를 보면서 트렌드 연구와 스타일 연구를 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것은 브랜드 교육이라기보다는 소비(멋 내는)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국어 문법을 처음 공부할 때 자음접변, 구개음화, 두음법칙, 자음동화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냥 평상시에 편하게 말하는 과정에서 이런 규칙적인 패턴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잠시 즐거웠을 뿐이지 그 문법을 알고 나의 모국어 실력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브랜드에 관한 지식을 처음 배울 때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재미있고 분별력 있게 브랜드를 관찰할 수 있지만 그 지식이 충동구매를 조절하지는 못한다.

 

내가 출판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글을 쓰는 일이다. 대학 졸업 이후로 25년 동안 주로 읽은 책들이 번역된 해외 경영책이다. 그래서 나의 글은 영문법과 한글 문법이 혼용된 기괴한 번역체다. 모국어의 문법을 공부해서 띄어쓰기, 맞춤법까지 신경 쓰고, 조사와 부사의 위치까지 사전을 찾아가면서 글을 쓰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글을 쓰는 것이 마치 기계를 조립하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브랜드도 제대로 된 분석틀로서 하나씩 뜯어 보면 상당히 복잡한 연결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은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처럼 브랜드도 알면 알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과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은 공부하지 않고 본능과 습관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편하고 쉽게 사용하는 것을 분석하려면 대단히 방대하고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만약 물건을 구매한 어떤 사람에게 구매 이유를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절대로 그 사람은 ‘선호도 30%와 인지도 40% 그리고 충성도 30%에 의해서 구매를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답은 아마도 “그냥, 좋잖아” 혹은 “글쎄요”이거나 아니면 “예쁘잖아!”라고 말할 확률이 높다. 마케팅에서는 ‘그냥, 글쎄요 그리고 예쁘잖아’를 이후 구매 시나리오를 짜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구조틀을 이용해 이것을 최적화 수치로 보여준다. 그 누구도 구매를 할 때 이 그래프를 머리에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매우 복잡한 수식과 용어를 사용하면서 소비자들이 이런 식으로 구매하고 있다고 믿는다. 만약 이런 식으로 소비자의 행동을 맞힐 수 있다면 실패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브랜드 책에서 다루었던 지식대로 소비자가 브랜드를 구매하지 않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브랜드 책에서 다루었던 지식대로 소비자가 브랜드를 구매하지 않거나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더욱 공부를 안 하는 이유는 브랜드에 관한 책을 그대로 적용해서 똑같은 브랜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나이키의 사례로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를 조립(?)할 수 있다면 누가 브랜드 책을 읽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책은 이론책일 뿐 요리의 레시피처럼 따라하면 똑같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국어로 책을 제작하고 싶다면 모국어를 공부해야 되고,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브랜드의 구성을 알아야 한다. 모국어를 공부하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평가와 비평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브랜드를 공부하면서 구매하고 관찰한다면 시장에서 브랜드의 독특한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놀랍게도 브랜드를 가장 많이 알아야 할 사람들이 정작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다.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 대표적인 인물은 브랜드에 관해서 마지막 의사결정을 하는 최고 경영자들이다. 대부분의 최고 경영자들은 브랜드에 관한 지식을 마케터와 디자이너들이 협의해서 자신에게 올린 결재 서류를 보고 그들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들음으로써 겨우 ‘공부’한다.

 

더구나 그들은 브랜드에 관해서 직원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질문하는 것이 최고 경영자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자식 교육에 대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원 강사, 과외 교사, 학교 교사 그것도 아니면 교육부 장관? 브랜드의 방향이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좌우로 바뀜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최고 경영자들은 브랜드에 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브랜드에 관해서 질문하고, 확인하고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부하직원의 고유 업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결재할 때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마케팅 및 광고 대행사들과 함께 일한다. 그들은 클라이언트(브랜드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맡은 혹은 맡고 싶은 브랜드의 전략 계획 리포트를 제출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렇게 대행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리포트가 편집되어 최고 경영자에게 올라가 결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 리포트는 자신의 브랜드에게 최고였을까? 아니면 차선이었을까? 그 보고서의 출처가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진행했거나 제안했던 보고서라면 어떤 문제가 일어날까? 사실 이런 염려는 문제도 아니다. 대행사들은 절대로 매출과 관계없는 브랜드 5년 장기 전략을 가져 오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그들은 매체 대행비 혹은 매출 달성에 따른 성공 비용을 받기 때문에 그런 보고서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최고 경영자와 브랜드 관련 담당자들이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과 실천이 너무나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고 경영자들은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부하직원에게 맡기고, 부하직원들은 브랜드보다는 당장 밀려오는 현업과 성과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서 단기 행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행사가 진정한 브랜드 계획을 가져올지라도 그것이 당장 ‘돈’이 안 되면 진행될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자녀를 무조건 많은 학원에 보내면 자녀가 알아서 공부할 것이라고 믿는 학부모와 같다.

 

 

거리에서 배우는 브랜드

브랜드 혹은 마케팅 책에서 소개하는 성공 사례 브랜드를 읽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브랜드가 성공 정점에 이를 때는 마치 펄떡이는 물고기 같지만, 막상 그 성공 사례로 책을 쓰고 발간될 시점에는 이미 브랜드는 상하고 있다. 혹시 글로벌 히트 상품이라고 불리던 닌텐도 게임기를 아직도 기억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가족 게임과 여성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면서 모든 산업과 사례에 성공 기준으로 등장했던 닌텐도 이야기는 2010~2011년에 사라졌다. 2011년 상반기에 1조 50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지금도 고전분투하고 있지만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한때 스마트폰의 지존이라고 불리던 블랙베리는 어떤가?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이런 고전을 겪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이 브랜드의 사이클이니 속단해선 안 된다.

 

브랜드의 기준이라고 불리는 애플, 할리데이비슨, 나이키, 샤넬 등 대부분의 브랜드는 라이프사이클에서 파도를 타며 오르락내리락거리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브랜딩은 오르막길이기에 절대로 속도를 내어서도 안 되고 속도가 떨어진다고 낙담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상하 편차가 너무나 뚜렷한 브랜드 사이클에서 어떻게 적용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성공 사례들로 구성된 브랜드 책을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성공 사례를 많이 읽되 정보를 그대로 믿거나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실패 원인은 성공의 원인과 같거나 성공의 결과이다.

 

브랜드가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면서 일어날 때는 브랜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브랜드의 성공이 진리의 대로인 것처럼 따라간다. 당장 따라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은 그 너머에 어떤 낭떠러지가 있는지는 관심도 없고 상상도 하지 않는다.

 

 

아이디어와 전략의 원천은 일상의 모습에서 새롭고 낯설게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한정된 성공 자료에 의한 근시성 관점은
브랜드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게 된다.

 

 

그렇다면 성공 사례가 왜 무서운 실패의 미끼인지 살펴보자. 브랜드 관련 저자들이 브랜드 사례를 쓰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한 그가 쓰는 대부분의 자료는 객관성을 갖기 위해서 기업 홍보 IR자료나 여러 사람이 만든 자료를 통합한 자료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남들도 다 알고 있는 자료이거나 자료를 위한 자료인 셈이다. 이런 책의 사례는 하나의 관점, 그러니깐 성공한 기분에 들떠서 성공의 선입견과 편견을 만든다. 대부분의 아이디어와 전략의 원천은 일상의 모습에서 새롭고 낯설게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한정된 성공 자료에 따른 근시성 관점은 브랜드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게 된다.

 

브랜드를 공부하기 위한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관찰인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 가지의 방법을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하나의 사례에 대해서 여러 관점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학력이 높고 저명하다는 사람이 얘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전부이며 진실이라고 믿으면 절대로 안 된다. 같은 사례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성공한 브랜드의 자기 칭찬과 설명보다는 경쟁사 혹은 성공한 브랜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아마도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같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직접 나가서 보고 만져 보고 경험하는 것이다. 브랜드의 실체는 ‘사용’보다는 ‘체험’이다. 도구를 사하는 사람은 상품을 구매한 것이고, 브랜드를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새로운 가치를 탐닉하고 싶은 사람이다. 따라서 거리에 나가 브랜드를 체험하고 싶으면 단순 사용자가 아니라 기존 자신의 취향을 포맷시키고 마니아가 되어서 직접 만져 봐야 한다. 책에서 나온 사례들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상상을 통해서 글로 나오지 않은 지식도 경험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브랜드 관련 업종의 사람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정보를 바탕으로 PPT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한다. 성공과 함께 몰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브랜드는 직관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직접 나가서 직관을 사용해서 느껴야 한다. 물론 브랜드에 관한 공부도 직관적으로 해야 한다. 먼저 리딩 브랜드와 유명 브랜드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만져보고 사용해 보고 그리고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브랜드 심벌에 관해서 연구하고 싶다면 책을 보지 말고 유명 심벌들만 계속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시각은 취향과 습관에 의해서 교정이 되기 때문에 좋은 브랜드를 많이 볼수록 브랜드 판단력이 향상된다.

 

거리에서 하는 브랜드 교육은 가급적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로고만 보고, 일주일 동안 심벌만 보기, 일주일 동안 컬러만 보기 등 거리에 돌아다니면서 오직 하나의 주제만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브랜드를 수없이 ‘체험’해야만 알 수 있다. 사랑, 심리, 행복을 수많은 책을 읽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처럼 ‘브랜드’도 읽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브랜드는 체험의 영역이다.

 

 

브랜드 중의 브랜드 만들기

좋은 브랜드와 나쁜 브랜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브랜드와 진짜 브랜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들 간에 차이는 별로(거의) 없다. 짝퉁과 진품 사이에서 품질적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좋은 브랜드와 나쁜 브랜드 그리고 진짜와 가짜는 육안 식별이 어렵다. 비록 차이를 구별할 수 없어도 짝퉁과 진품이 차원이 다른 것처럼 그들은 다른 차원에 있는 브랜드다.

 

기업에서 상품에 상표를 붙여서 비싼 가격을 책정하여 백화점에 팔고 있다고 브랜드가 아니다. 더욱이 특정 상위 계층들이 선호한다고 그것이 진짜 브랜드라고 말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대박상품은 ‘일시적 유행’을 보여 주는 유행 상품이지 브랜드가 아니다. 단지 ‘구별되다’라는 고대 기준을 따른다면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구별된다고 진짜 브랜드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서 ‘가격 대비 품질과 성능’을 강조한다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차이’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반면에 ‘가치 대비 아이덴티티와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면 다른 브랜드와 서로 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비교가 명확하지만 가치는 상대적이다. 따라서 브랜드가 브랜드되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다. ‘브랜드는 이것이다’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

 

 

반면에 ‘가치 대비 아이덴티티와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면
다른 브랜드와 서로 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으며 경쟁과 모방 브랜드가 인정하는 탁월한 브랜드들의 공통분모에서 브랜드의 기준과 수준은 찾을 수 있다. 먼저 ‘정통성’이다. 그들은 품질에서는 탁월함을, 상품에서는 진정성을 주장한다. 두 번째는 일관성이라고 불리는 ‘전통성’이다. 이것은 브랜드의 뿌리(기원)를 말하는 것이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자기 가치성을 말한다. 세 번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트렌드라고 부르는 ‘시대성’이다. 이것은 유행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말한다. 정통성, 전통성 그리고 시대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로서 품질과 기능을 뛰어넘는 차별화를 만들어준다.

 

이 세 가지의 기준이 ‘브랜드 중에 브랜드’라는 자격을 갖는 절대 조건은 아니다.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진짜 브랜드임을 증명하는(브랜드 중에 브랜드임을 증명하는) ‘명품 브랜드’라는 작위가 있다. 고대 라틴어의 풍부함과 빛의 어원을 가지고 있는 럭셔리(Luxury) 브랜드다.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는 ‘소장 가치’에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상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행에 뒤처지고 품질이 떨어져서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골동품이 된다.

 

브랜드 중의 브랜드가 되기 위한 네 가지의 기준에 따르면 전자제품은 브랜드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비싸도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떨어져서 사용되지 못하는 제품은 브랜드 중의 브랜드가 되지 못했다. 명품 브랜드는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소장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전자제품은 특별한 골동품 수집가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1976년에 만들어진 666달러짜리 애플I 컴퓨터가 2011년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21만 달러에 팔렸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1970~1980년대 구형 모델들이 그 당시 판매가보다 높게 거래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장비 브랜드도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네 가지의 브랜드 조건은 할리데이비슨은 설명할 수 있어도 스타벅스는 말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말한 브랜드 조건이 브랜드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의 전부가 아니다.

 

또 하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람이 단순 소비자인가 아니면 충성 마니아인가에 따라 브랜드의 위상이 달라진다. 상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고객이 만든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최근 웹 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의 정보이동과 커뮤니티가 자유로워졌고 이에 따라 고객의 영향력은 더 막강해졌다. 그래서 상품은 고객의 리더십에 따라서 브랜드 파워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팅의 구루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자신의 저서인 《전략3.0》에서 브랜드의 브랜드됨을 이렇게 말했다. “신제품은 경쟁 시장에서 고객들을 통해 입증될 때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다시 말해 제품이 고객에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소비자 사이에서 긍정적이고 확실한 이미지로 자리잡을 때 제품은 비로소 브랜드로 정립된다.” 장 노엘 캐퍼러 교수도 자신의 저서인 《뉴패러다임 브랜드 매니지먼트 전략》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품이 트렌드를 선도하는 부족이나 마이크로 그룹을 만들지 못하면 단지 또 하나의 슈퍼마켓 브랜드로 전락할 수 있다.”

 

브랜드의 기준, 격차, 순위, 등급 등 이런 모든 조건들은 계속 발견되고 응용되기 때문에 단정지으면 안 된다. 브랜드가 브랜드되기 위한 기준으로서 ‘마니아’는 최근에 나온 것이다. 여러 브랜드의 출현으로 인해 인간에게 있어서 브랜드의 숨은 역할과 기능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마치 브랜드의 염색체지도가 그려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밝혀낸 브랜드의 기준 중에서 ‘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덴티티다. Brand의 B자가 Becoming인 이유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Identity: 브랜드가 추구하는 동일체)가 엔티티(Entity: 실체)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

마케팅은 기업이 ‘경쟁’이라는 장에서 생존과 성장을 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시쳇말로 한다면 팔기 위한(돈을 벌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다. 기업의 목적인 생존과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의 전략은 ‘남과 다르기 위한 자기다움 구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자기다움은 ‘남들과의 차별화’를 말한다. 따라서 ‘마케팅=차별화=전략’이 가장 일반적인 마케팅 일차방정식이다.

 

그러나 암흑의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카피 전략도 있다. 바로 ‘남과 같아지기 위한 자기다움’이다. 이것을 무임승차 혹은 모방자의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변종으로 ‘남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서 자기다움’ ‘남과 헷갈리기 위해서 자기다움’ ‘오히려 자신이 더 남의 것처럼 보이기 위한 자기다움’도 있다.

 

 

Brand의 B자가 Becoming인 이유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Identity: 브랜드가 추구하는 동일체)가
엔티티(Entity: 실체)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기가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개가 있다면 우리는 그 개를 어떤 개라고 부를까? 이런 불법들이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변태가 아닌 변칙으로 시장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런 개념들이 나온 이유는 근본적으로 전략의 기준이 ‘남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마케팅은 ‘남과 달라지기 위해서’ 혹은 ‘남의 마켓셰어를 확보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원래 군사 용어에서 나온 ‘전략’이라는 단어는 적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기에, 태생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남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브랜드에서 말하는 브랜딩은 마케팅에서 말하는 차별화와 결과는 같지만 순서는 다르다. ‘남과 다르기 위해서 자기다움’이 아니라 ‘자기다움으로 인해서 남과 다름’이다. 마케팅에서는 남과 다르기 위해서 가격, 디자인, 제품, 품질을 다르게 한다면, 브랜드에서는 자기다움(Identity)을 구축함으로 인해서 가격, 디자인, 제품과 품질이 남들과 달라진다. 이것을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스타일은 원래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Stilus’라는 필기구의 이름이었다. 이 필기구로 글을 쓰면 누구나 비슷한 글자체가 나와서 이때부터 문체라는 말로 대신 쓰게 되었다. 어찌 보면 제록스라는 브랜드 이름이 복사기라는 고유명사가 된 것과 같다. 이처럼 브랜드가 진짜 브랜드로서 가치를 가질 때 소비자는 브랜드를 보지 않고도 브랜드를 알아차려야 한다.

 

예를 들어 트렌드에 민감한 백화점 숙녀복 코너에 가서 간판을 보지 않고도 브랜드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자신만의 강력한 스타일을 구축한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작은 사은품과 광고 배경 음악에서도 자신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브랜드 이름 뒤에 ‘스럽다’라는 말을 붙인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어떤 모토사이클이 지나가는데 브랜드 이름을 보지 못해도 소리와 운전자의 패션 그리고 지나가는 도로에 따라서 순간적으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할리데이비슨스럽다.” 이처럼 눈을 감고 뒤에 앉아 있어도 소리만 듣고 자신이 어떤 모토사이클을 탔는지 알 수 있다. 소리에도 브랜드 스타일이 있다. 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우리는 매장에 들어가면 스타벅스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느낌에서도 브랜드 스타일이 있다. 눈을 감고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만지면 그것이 애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촉감에도 브랜드 스타일이 있다. 수많은 옷 브랜드가 있지만 멀리 보아도 폴로 매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느낌에도 스타일이 있다.

 

 

승승장구하는 브랜드와 장차 성공할 브랜드는 창조를 갈망하고 변화를 추구한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소비자를 이끄는 더 강력한 형태의 차별화가 있다.

 

 

페라리의 빨강, 코카콜라의 빨강, 라이카의 빨강, 샤넬의 빨강 중에 어떤 빨강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가? 이처럼 브랜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색깔 외에도 소리, 단어, 감촉, 분위기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함을 자신만의 특별함으로 바꾼다. 그것이 바로 ‘자기다움’이다. 브랜드가 자기다워지기 위한 일련의 모든 행위를 브랜딩이라고 말한다.

 

존 거제마는 자신의 저서 《브랜드 버블》에서 브랜드가 브랜딩(브랜드다워지는)되는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알아낸 바, 승승장구하는 브랜드와 장차 성공할 브랜드는 창조를 갈망하고 변화를 추구한다.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소비자를 이끄는 더 강력한 형태의 차별화가 있다. 우리는 여기에 충전된 차별화(Energized Differentiat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마 앞 장에서 스콧 베드버리(Scott Bedbury)가 브랜드에 대해서 “수년간 마음속에 쌓인 살아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 바를 기억할 것이다. 브랜드는 이처럼 누적되고 충전되어서 잘 익은 과일처럼 브랜드로 되어가는(Becoming) 것이다.

 

이제 3부에서 소개할 지식은 브랜드가 브랜드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이다. 3부에서는 컨셉, 전략, 쇼윈도, 간판 등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개념들을 Brand의 B를 ‘맛본다’는 수준에서 다루었다. 그렇기에 각각의 개념들이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것을 요약본 혹은 핵심정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3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브랜드를 이루는 다양한 지식에 대한 통찰이다. 최소한 이런 개념을 알고 세상에 가득 찬 브랜드를 보면 패턴을 읽을 수 있고, 그 패턴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

 

예전에 ‘낚시꾼’이라고 불리는 친구와 낚시를 하면서 진정한 ‘꾼’의 힘을 본 적이 있다. 낚싯대에서 전해 오는 물고기의 힘만으로 종류와 무게를 90%는 알아맞혔다. 친구에게 그 놀라운 능력의 원천을 물어보니 오랜 경험과 물때를 이해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문이지만 그림을 정말로 잘 그리는 친구에게도 그 비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많이 그리면 이렇게 그린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이 싱겁고 성의 없게 들렸지만 달인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능력에 대해서 비슷하게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오랫 동안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능력은 지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 이제 만나볼 3부에서는 브랜드가 브랜드되는 가장 대표적이고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필수 개념을 소개한다. 이런 것들을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나가 브랜드를 보면서 익히게 되면 앞서 말한 달인처럼 지식이 지혜로 몸에 배게 된다. 학습된 직관을 통찰력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배우고 알게 된 것을 거리에 나가서 대입하고 체험을 할 때는 ‘브랜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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