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번째 브랜드는 기억되지 않는다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김경필  고유주소 시즌1 / Vol.10 디자인 경영 (2009년 06월 발행)

국가브랜드 순위 33위의 Korea는 세계 ‘국민’이 아닌 세계 ‘고객’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반만 년의 역사, 김치, 태권도, 한글, IT 강국 등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기억하고, 나아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외국인(세계 국민)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객’으로서 Korea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그 결과는 암담하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선택하는 브랜드 중 그 어떤 것도 시장에서의 평가가 33위이기 때문에 구입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고객은 매장에서 브랜드를 기준으로 상품을 구매할 때 자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브랜드 서너 가지 중 하나를 구매한다. 반면 고려조차 필요치 않은 저관여 상품일 경우에는 특별한 고려 없이 아무것이나 집게 된다. 즉, 33위의 Korea 브랜드를 구매한 이유는 그냥 눈에 띈 제품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 시장에서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 Korea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브랜드 차원’의 제품은 많지 않다는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Made in Korea’는 사실 ‘아무거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브랜드라는 상품으로서는 현재 국가브랜딩 작업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국가브랜딩을 다루기 전에 기업에서 브랜드를 관리하고 브랜딩을 해온 마케터의 입장에서 한국의 국가브랜드 정책에 있어 의아하게 여겨지는 몇 가지를 먼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국가브랜딩에 대한 오해
“조선왕릉이 피라미드보다 작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국가브랜딩에 있어 브랜드 자산의 규모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당신이 얼마 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로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조선왕릉을 세계인에게 알리고 브랜딩을 해야하는 위치에 있다고 가정하자.

 

2톤이 넘는 230만 개의 정육각형 돌로 이루어진 높이 146m의 이집트 피라미드와, 평균 높이가 10m도 채 안 되는 조선왕릉은 왕의 무덤이라는 공통점 외에 규모 면에서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왕릉 자체로는 브랜딩이 힘들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이 일을 담당하는 브랜드 매니저라면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할까? 추측컨데, 스티브 잡스라면 그런 고민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면 3일만에 다시 짓겠다는 예수의 말처럼, 스티브 잡스가 요술을 부려서 하룻밤만에 조선왕릉을 피라미드보다 크게 만들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브랜딩 차원에서는 브랜드의 하드웨어인 제품의 크기는 크게 고려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브랜드에게 ‘크고’ ‘품질이 좋고’‘비싸고’라는 속성이 도움은 될지는 몰라도 사실 브랜딩의 성패와는 큰 관련이 없다.

“마케팅은 인식의 싸움이다.” -알 리스

 

알 리스의 말처럼 마케팅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인식 속에서의 싸움’이다. 품질 좋은 고가 롤렉스 시계가 시간이 잘 맞기 때문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간이 잘 맞는 것은 손목시계 기능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렇다면 롤렉스라는 휴대용 손목시계가 갖춰야 할 ‘다른 요소’는 무엇일까? 크기나 무게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지는 의문이다. 40만 원짜리 몽블랑 만년필이 사랑받는 이유도 몽블랑의 1/400 가격인 펜보다 400배 더 빨리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고객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좋은 기능적 속성 때문이 아니다.

 

롤렉스를 구매하는 것은 롤렉스가 ‘시계’여서가 아니라 누구나 살 수 없는 ‘고급보석’, 즉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몽블랑도 펜이 아닌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표상’이기 때문에 구매한다. 브랜드가 좋게 느껴지는 것은 브랜딩의 결과일 뿐 사실적인 속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로의 성공은 경쟁자와는 다른 ‘컨셉’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가능성이 높다. 남들보다 더 ‘좋은’ 시계와 펜이라고 이야기할 때 고객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 제품은 여타 제품과는 ‘다른’ 시계와 펜이라고 이야기할 때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조선왕릉을 브랜딩하기 위해서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클 필요는 전혀 없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조선왕릉을 세계에서 (예를 들면) 33번째로 큰 규모라고 브랜딩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장 큰 왕릉으로 만들기 위해 증축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라미드가 주목받는 이유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피라미드는 230만 개의 어마어마한 개수의 돌덩어리가 146m까지 치솟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고고학자라면 모를까 피라미드를 본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황량한 사막에서 있는 구조물에 감동하기보다는 실망감을 갖는다.

  

 

결국 피라미드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를 소재로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간 마음 속에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피라미드의 존재를 마음대로 부풀려 상상하고 멋지게 그려오다가 실제로 보았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작고 황량한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화 <슈퍼맨>에서 그려진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본 사람들이 실제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해보고는 실망하는 이유와 같다. 결국 피라미드가 진짜 주목받는 이유는 피라미드에 관한 미스터리가 재미있는 스토리가 되었고, 이런 스토리 자체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쌓기 어려운 구조물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쌓았을까?’라는 의문들, 그것을 지키는 스핑크스에 얽힌 설화,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스핑크스의 코에 대포를 쏘아 코가 살아졌다는 등의 피라미드에 얽힌 여러 풀리지 않는 의문과 신화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 소재들이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각종 이야기와 심지어는 영화, 소설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피라미드에 실제 방문하고 싶은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실제 만나보면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은 돌덩어리들을 보게 되고 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오는 것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 결국 피라미드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를 소재로 재미있게 풀어낸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릉 브랜딩의 성패가 규모가 아닌 매력적인 ‘스토리로 만들어 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장에서는 이렇게 통념적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인 가격이나 품질, 혹은 크기 등의 속성 기준을 무너뜨리고 기존 경쟁자와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컨셉이라는 독특한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기존 제품을 진부하게 만든 브랜드들이 많이 존재한다.

 

1960~70년대 자동차 시장에서, 그것도 큰 사이즈가 미덕인 미국시장에서 좋은 자동차 브랜드의 기준은 ‘얼마만큼 크고 튼튼한가’였다. GM, 포드, 크라이슬러와 같은 업체들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빅 사이즈의 자동차를 만들어서 성공한 브랜드들이다. 이것은 미국시장에서 성공하려면 크고 품질 좋은 자동차를 좀 더 낮은 가격에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오히려 ‘자동차는 작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성공했다. 폭스바겐은 고객에게 작고 경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것들이 자동차 시장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설득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시장에서 포드와 GM이 쓰는 사고를 ‘더 좋은better 것’의 경제학이라고 하자. ‘더 좋은 것’의 경제학은 좀 더 크고, 좋고, 편리하고, 다양하고, 저렴한 상품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고이다. 실제로 고객들을 조사하면 고객 또한 똑같은 말을 한다. 고객들은 더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것을 다량으로 다양하게 구매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몽블랑 펜을 구매한 당신의 친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건 40만 원짜리 펜이지만, 필기감도 좋고 평생 쓸 수 있는 것이니 더 싼거야!”

 

과연 몽블랑 펜의 로고가 없어도 40만 원을 주고 펜을 살까? 실용적인 이유, 즉 ‘더 좋은 것’의 경제학으로 브랜드를 구매한다는 고객의 말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거짓말이다. 고객은 단지 자신이 구매한 이유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고객의 말을 충실히 믿어온 GM은 이제 자신들이 고객들의 말에 속아온 죄(?)에 대한 대가를 뼛속 깊숙이 느끼며 2009년 현재 파산에 직면해 있다. 고객들은 차별화된 브랜드에 이끌린 후 그것을 ‘좋다’라고 표현한다. 즉, 브랜드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때 구매하게 되고, 그 다음 그 브랜드가 더 좋은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국가브랜딩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한국적 자산을 물리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자산과 비교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경쟁국과는 다른 포지셔닝과 컨셉을 내세워 경쟁상대의 강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점을 만들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소중한 문화자산을 브랜딩하기 위해서 왕릉뿐만 아니라, 성, 각종 유적지와 유물 등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클 필요도 없거니와 크기는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니다.

 

“국가브랜딩에 있어서 북한이 그렇게도 큰 문제일까?”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대한민국 국가브랜딩의 큰 장애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이야기만 나오면 주가는 떨어지고 한국에 대한 투자심리는 급랭하며, 한국을 폭력집단으로 보는 외국의 보도를 보면, 물론 장애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브랜딩이 안 되는 것은 한국 자체의 문제이지 북한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저 우리가 가진 약점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가 북한이라는 약점을 가졌음에도 브랜딩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유는 브랜딩이란 강점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약점을 감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점을 감추는 것은 브랜딩에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성패에는 큰 연관이 없다. 그래서 브랜드 매니저 입장에서는 브랜드의 약점 때문에 거부하는 고객에 얽매이기보다는 차별화된 강점 때문에 자사 브랜드를 선택하는 고객에게 집중해야 한다.

 

‘Made in Italy’는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인가? 프라다, 아르마니와 같은 명품, 열정적인 최고 수준의 축구, 지중해의 와인, 찬란한 역사의 로마와 같은 긍정적 이미지도 있지만, 필자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이미지도 공존하고 있다. 비교적 안전한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이탈리아는 안전하지 않다. 나에게 이탈리아는 소매치기에 더욱 주의해야 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 실제로 유럽여행 도중 유일하게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나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매력적인 명품패션의 나라라는 이미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탈리아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이탈리아라는 국가브랜드가 약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약점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강점 때문이다. 브랜딩에서의 약점은 여전히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런 약점을 개의치 않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오히려 약점을 없애고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 할 때 브랜딩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하고 만다.

 

지금 내 손 안에는 날렵하게 잘 빠진 iPod이 있다. iPod에 대한 찬사도 많지만 고객 중에는 iPod의 약점 때문에 iPod을 사지 않는 고객들도 있을 것이다.

 

“음, 디자인이 너무 심심해…. 좀 화려하게 만들면 좋겠는데….”
“ 음악하고 동영상 보는 기능밖에 없잖아…. 카메라 기능도 있었으면….”
“좀 다양한 색깔은 안 되나….”
“가격이 너무 비싼데, 좀 싸게 만들지….”
“DMB나 네비게이션 기능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런 의견들은 모두 소비자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말한 ‘진실’이며, iPod도 많은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진정한 말에 고무되어 성실히(?) 카메라도 달고, DMB도 달고, 네비게이션도 넣고, 디자인도 화려하게 하고 컬러도 다양하게 하면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가의 부품으로 교체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필자는 이런 약점을 보완한 완벽한(?) 괴물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능케하는 제품은 꿈의 상품이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로 무장한 괴물로 변해버린다.

 

비슷한 예로 비네팅 효과로 독특한 색감을 자랑하는 필름카메라인 로모의 LC-A 모델을 선명한 화질을 위해 렌즈를 교체한다면, 할리데이비슨의 독특한 ‘엔진 음색’을 ‘비고객의 진실된 목소리’에 따라 ‘소음’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엔진을 교체한다면, 지금 두 브랜드가 받고 있는 ‘고객’의 사랑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국민은 평등을, 고객은 차별을 원한다”

사실 성공적인 국가는 지금껏 기업에서 행하는 브랜딩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브랜딩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국민 또는 다른 나라 국민에게 환영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일이다. 즉, 최고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어떠한 정책이든 남들과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껴진다면 국민은 반드시 불만을 표시하게 된다. 국민이 국가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안전’에의 욕구, 즉 외부의 불안정한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함이다. 그래서 국가가 엄연한 국민의 한 사람인 자신을 차별할 때 그 국민은 불만족을 넘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폭동과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시장논리는 이와는 정반대이다. 국가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로 포지셔닝되기로 했다면 그와 동시에 국민을 ‘고객’으로, 정책이 시행되는 영토를 ‘시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외교권을 행사하는 세계 역시 확장된 ‘시장’으로 봐야한다). 이처럼 일반 국민이 ‘고객’이 되는 순간 이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여 국가라는 ‘브랜드’에게 정반대의 것을 요구한다. 평등을 원했던 국민은 고객이 됨으로써 자발적으로 차별대우를 받기 원한다. 어느 누구도 브랜드를 ‘동질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은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지 옆 사람과 같음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사람들이 남들과 같은 옷을 입기 꺼려하는 것과 같다.

 

기업은 이러한 차별성에 대한 개념을 체질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업은 이러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고 고객을 차별화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도 그것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하면 안 된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되는 순간 브랜드는 그 생명력을 잃는다. 그래서 브랜드가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할지라도 모든 세계인을 만족시키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일부 차별화된(혹은 선별된) 고객들을 상대로 브랜딩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가 수행해온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국가는 소위 공공의 이익(차별화되지 않은 고객)을 위해 사업을 수행해오는 것에 익숙하다. 생각해보라. 국가가 소유한 공기업에서 가슴 떨리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적이 있는지를. 공기업에서 품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는 나올 수 있어도 가슴 떨리는 브랜드는 나올 수 없다. 필자는 서울시에서 생산하는 아리수 수돗물을 마실 수밖에 없어서 마시는 것이지 사랑하거나 애착의 대상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산 생수인 에비앙은 다르다. 에비앙을 사랑해서 마시는 고객은 전 세계에 수없이 많지만 모든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에비앙을 갈망해서 마시는 것이지 필요에 의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에비앙은 나의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살리고 싶은 욕망의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 ‘선택’된다.

 

경쟁자도 없고 모든 국민을 만족시켜야 하는 아리수의 성공 방정식은 명확하다. 품질 좋고 안전한 물을 가능하면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수가 국민에게 사랑받는 물이 아닌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려 한다면 아리수는 이제까지의 성공 법칙을 버리고 시장에서 통하는 법칙을 익혀야 한다. 고객을 차별화해야 하고 자신을 차별화해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도 국민과 세계국민에게 ‘인정받는 국가’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브랜드를 이해하자!”

결국, 국가브랜딩에 대한 오해와 그로 인한 실행이 부진한 것은 국가브랜딩 수준이 낮다기보다는 ‘국가’가 갖는 체질상의 문제이다. 기업은 체질상 본능적으로 알고 넘어가는 브랜딩 전략을 국가이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거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는 브랜딩의 본질을 국민이 아닌 고객을 다루어본 기업의 관점에서 이해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브랜드brand라는 단어의 어원은 ‘낙인찍다burn’의 의미를 가진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혹은 게르만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축의 소유주를 구별differ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생산자나 생산지를 표시하여 소비자에게 구분되는 상품으로 보여주는 것은 브랜드의 가장 원초적인 기능이다. 특히 한 카테고리 내에서 경쟁자가 적어서 고객이 브랜드를 기억하기 쉽거나, 제품의 속성상 차별화가 쉬운 경우 이러한 기능은 시장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지금도 기업들은 자신의 상품에 상표나 이름을 낙인찍음으로써 경쟁자와 구별되게 한다. 그러나 경쟁자도 많고 제품의 수준이 비슷한 지금, 단순히 브랜드의 이름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고객에게 ‘옆의 제품은 35등인데 나는 33등이기 때문에 더 낫다’라고 호소하는 것과 같다. 결국 지금의 브랜드는 제품에 낙인을 찍는 것만으로는 브랜딩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제 브랜딩이란 제품은 물론 ‘고객의 인식’에 확실한 낙인을 찍는 것이다. 그것은 브랜드가 고객의 기억 가운데 독특하고 차별화된 어떤 것으로 남을 수 있어야 시장에서의 경쟁을 이기고 구매나 선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즉, 브랜딩의 대상은 ‘고객의 기억’이지 제품이 아니다.

 

고객의 기억에 남는 브랜딩 기술을 살펴보자. 요사이 초고층 빌딩의 사업 추진이 눈부시다.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은 경제 활성화 수단인 동시에 고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가는 것에 비해 고객의 인식 가운데 확실히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초고층 경쟁은 시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 마치 TV업계의 화면 크기 경쟁과 같다. 세계 최대의 TV는 고객의 머릿속에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소재이지만 문제는 삼성, LG, 소니의 순위가 계속 바뀜으로 인해 아무도 세계 최고의 대형 TV 생산 브랜드라는 포지셔닝을 선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계속 1등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최고층 빌딩 분야에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세계 최고의 빌딩이라는 포지셔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나의 인식 속에서 정서적으로 세계 최고의 빌딩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어린 시절 영화 속에서 킹콩이 전투기의 공격을 피해 올라간 빌딩의 강렬한 이미지는 어떤 빌딩도 가져갈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결국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긴 하지만 누구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제품 경쟁은 브랜딩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며 고객의 정서적 인식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넘어설 수도 없게 된다.

 

다른 예로 청계천이 서울시에 미친 영향은 환경적인 면이나 그것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서울 시민에게 매우 성공적인 사업이다. 그러나 청계천이 서울시민이 아닌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로서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청계천을 대표 관광지나 국가브랜드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세계 고객의 입장에서는 청계천이 당분간 차별화된 브랜드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브랜드란 연상이미지나 그것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떠올라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아직 ‘환경 친화적 국가’라는 코드는 부족하여 청계천과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청계천이 한국에서는 최초의 환경사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국내 고객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만 세계 고객의 입장에서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 수도 없고 다른 환경적 기념물에 비하여 영향력도 적은 사업이어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확실한 낙인을 찍을 수가 없다. 그래서 국가브랜딩 또한 하드웨어가 아니라 고객의 기억에 집중해서 브랜딩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브랜딩을 위해서 고객의 기억 가운데 낙인을 찍는 과정은 브랜드의 독특한 상징을 만드는 것이지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하드웨어는 상징에 도움이 되고 형상화하는데 도움이 될 때 비로소 브랜드 가치에 도움이 된다. 그래도 ‘하드웨어적인 제품이나 형상이 소비자의 인식 속에 결정적인 역할이 되지 않을까?’하는 미심적인 의문을 보내는 분들을 위해 증거를 하나 더 들겠다.

 

대표적인 환경 기업의 메인 컬러가 초록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표적인 환경기업으로 국내에서는 유한킴벌리를, 해외에서는 영국의 석유 기업인 bp를 꼽을 수 있다. 유한킴벌리는 나무심기 운동을 수십 년간 주도해 왔으며, 깨끗한 기업 이미지로 늘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여겨지는 데에도 한몫을 했다. bp 또한 지속적으로 친환경 운동을 후원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기업이다. ‘메사 페트롤리엄’의 설립자로 평생 석유 사업가로 살아온 bp 캐피털 회장인 티 분 피켄스(T. Boone Pickens)역시 친환경 활동 전도사로 변신했다. 2008년 초 대체 에너지의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한 웹사이트(www.pickensplan.com)를 개설하는가 하면, 예상 건설비용만도 약 6~10조 원에 달하는 풍력발전소 건설사업을 미 텍사스 지역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한킴벌리는 대표적인 환경오염사업인 제지산업에 속해있고, bp 또한 석유화학을 기본으로 한 에너지 사업을 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어떤 기업보다도 환경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고객의 인식 속에는 이와는 반대로 환경을 아끼고 사랑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이는 두 기업 모두 초록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은 그들의 노력은 자사의 로고나 제품 패키지는 물론 소비자 접점의 매장, 소개되는 매체 등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노력의 결과로 두 기업은 자신이 가진 제품의 실제가 아닌 ‘상징’으로 고객들의 인식에 자리잡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자신이 가진 하드웨어와는 전혀 다른 실체를 고객의 인식 가운데 낙인찍는 것에 성공하였고, 이는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국가브랜딩 또한 자국이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 자체보다는 세계 고객의 인식 속에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독특한 차별성을 첨예하게 준비하여 모든 접점에서 그러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 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브랜딩의 핵심은 무엇인가?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라”

고객의 인식 속에 자리잡은 일관되고 차별화된 상징은 좋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요건인데, 그러한 상징을 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학원생 시절 애용하던 학교 앞의 오래된 피자 가게의 피자는 식사시간은 물론이거니와 밤 늦게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식사용으로는 물론 출출할 때 먹는 야식용으로 쉴새 없이 팔려나갔다. 그런데 매장은 매우 비좁았으며 인테리어 역시 엉망이었다.

 

종업원들도 그리 친절한 편이 아니었다.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었다. 배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붐비는 것은 나름 독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큼지막하게 썰어넣은 신선한 야채와 햄, 고기 덩어리들은 일정한 모양이라기보다는 매니저의 기분에 따라 아무렇게나 올려 놓은 듯 보이고 오븐도 기분에 따라 작동시켜 일정치 못하게 부풀어 오른 밀가루 반죽이 피자를 더욱 못생기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피자를 ‘와삭’ 하고 먹는 순간 그러한 부정적이었던 인상은 모두 사라진다. 잘 부풀어오른 밀가루의 고소한 맛과 풍부한 치즈, 야채, 그리고 고기 맛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전화를 하면 40분 만에 어김없이 똑같은 모양의 피자를 들고 달려오는 도미노 피자보다 학교 앞 못난이 피자가 훨씬 재미있고 맛있었다. 열악한 인테리어와 딱딱한 종업원은 불쾌하다기 보다는 못난이 피자 하나에만 열정을 쏟는, 프로의 냉랭함으로 여겨져 독특한 느낌을 더했다. 결국 내가 도미노 피자보다 학교 앞, 이름도 생소한 그 피자집에 빠져든 이유는 기가 막힌 맛과 프로의 냉랭함이 담긴 ‘독특한 분위기라는 경험’에 취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피자를 팔든, 호텔의 룸 서비스를 팔든, 자동차를 팔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고객의 인식 속에 바로 낙인을 찍게 되고 반복적인 구매로 이어지게 된다. 즉, 독특한 경험이 가장 효과적인 브랜딩의 시작인 것이다.

 

국가도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경험을 주는 것이 관건인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문화 유산, 기업의 제품, 국민성, 국가 홍보자료, 글로벌 스포츠 행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의 국민에게 독특한 경험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브랜딩을 할 때 우리는 못난이 피자집의 사장이 겪지 못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미리 조금만 말하자면 바로 장소와 관계가 있다). 이것은 실제로 국가나 도시를 브랜딩하는 실무담당자들이 아주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브랜드 전문가들도 적절한 대답을 못해주는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브랜드의 대가인 데이비드 아커 강연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마케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도시브랜딩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기업 브랜딩과의 차이점을 물었다. 그런데 아커 교수는 차이점이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브랜드 구루의 말에 모두들 이견이 없는 듯 보였으나 실제 이를 담당하는 용감한(?) 질문자는 짜증스럽게 교수님을 가르치듯 “죄송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교수님의 말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이렇듯 현장에서는 브랜딩의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줄 사람은 아직 없는 듯하다. 그래서 아커 교수와 같은 고수도 풀지 못한 문제이기에 조심스럽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한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전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작은 한국을 경험하게 하라”

위에서 말했듯 브랜딩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사람에게 어떻게 한국을 ‘체험’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곳 한국까지 날아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방법이 묘연해 보인다. 국가브랜딩이나 도시브랜딩 실행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시공간의 제약’ 따른 ‘체험 불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브랜드가 브랜딩을 할 때에는 네 가지 관점에서 브랜딩 전략을 고민하게 된다. 그 유명한 4P Mix(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이다. 즉, 못난이 피자는 4P 중 ‘상품’과 ‘매장’ 측면에서 독특한 경험을 준다. 독특한 맛의 피자라는 상품을, 비좁지만 활기차고 독특한 매장에서, 차가운 종업원들의 태도로 브랜딩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브랜딩의 경우 고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의 국민들에게 경복궁을 체험시키려면 한국까지 오게 해야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럴 때에 한국의 제품력 등 한국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삼성이나 현대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통한 국가브랜딩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글로벌 브랜드의 반열에 오른 기업들이 굳이 낮은 국가 이미지를 가진 한국과의 연계 브랜딩 전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느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브랜드에게 마이너스가 될 위험을 안고 있어 쉽게 협력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과의 연계성도 높으면서도 직접적인 체험 요소를 제공할 수 있는 브랜딩 소재를 찾는 것이 국가브랜딩에 있어 가장 필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권도가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딩에 미친 영향은 고무적이다. 2008년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일반 국민이 한국에 대해 갖는 호감도는 27%이다. 그러나 태권도 수련생의 그것은 86%로 훨씬 높고 이들은 한국 제품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전 세계 7천만 명이 즐기는 태권도는 한국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상승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외국인들이 한국과 함께 떠올리는 이미지 중 태권도를 꼽는 수치가 많다는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리서치 결과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태권도를 통해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인지하게 되었고 태권도를 체험함으로써 호감도 또한 높아졌다는 것이다. 태권도의 성공은 대한민국 국가브랜딩의 대안을 말해준다. 태권도라는 한국 고유의 자산을 이용한 브랜딩은 그 어떤 마케팅 툴보다도 고객의 ‘체험’과 ‘차별화 포인트’ 창출에 있어 브랜딩하기에 용이한 이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태권도가 외국인들에게 마케팅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살펴보자.

 

뉴저지 주의 중산층인 45세 브라운 여사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전형적인 싸커맘(한국의 ‘강남엄마’처럼 열성적으로 축구 교육을 시키는 엄마)이다. 큰아들 빌은 명문 펜실베니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15세의 막내아들 빅터는 늘 브라운 여사의 고민이다. 모범적인 큰아들과 달리 빅터는 술 문제와 친구들과의 잦은 싸움으로 말썽을 일으켰는데, 그나마 마약에 손을 안 대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브라운 여사의 동생 에이미가 빅터 문제로 찾아왔다.

 

에이미 : 언니, 빅터에게 운동을 시켜보면 어때? 빌도 원래는 내성적이었는데 운동한 이후로 성격도 밝아지고 성적도 올랐잖아.
브라운 : 시켜 봤지. 빌이 운동했던 뉴저지 유스 싸커클럽에 빅터를 가입시켰는데, 빅터 그 녀석이 팀에 들어간지 일주일 만에 싸움질을 해서 한 놈을 무지막지하게 때렸어. 그래서 그 집 부모가 빅터를 팀에서 내보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해서 코치가 나한테 사정을 하더라구. 제발 빅터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에이미 : 그런 평범한 운동 말고!
브라운 : 무슨 말이야?
에이미 : 지금 빅터는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운동이 필요해.
브라운 : 그런 게 있을까?
에이미 : 우리집 막내 리치도 빅터 못지않게 말썽쟁이였잖아!
브라운 : 그렇지….
에이미 : 그런데 그 녀석이 태권도를 한 다음부터 몰라보게 달라지더라고. 지난번에 학부모 참관회에 갔었는데, 난 평생 리치에게서 그렇게 늠름한 모습을 보게 될 줄 몰랐어. 절제된 동작과 함께 운동하는 내내 몸은 물론 정신까지 건강해 보이더라고.그리고 리치 입에서 “Yes, Sir!”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너무 놀랐지! 존대말을 쓰는 것을 처음 봤거든. 말썽만 부리던 아이가 사범님 말씀이라면 바로 듣더라구. 수십 명의 아이들이 절제된 동작으로 운동을 하는데 웨스트 포인트의 군인들보다 더 절도 있었어!
브라운 : 그 사범이라는 사람이 대단한가 보구나.
에이미 : 그게 아니라 태권도라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한국에서 유래된 전통 무예인데 이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자기를 수양하는 일종의 ‘도道’라고 하더라고. 동양사상 말이야!
브라운 : 한국에 그렇게 좋은 게 있었다니. 얘, 당장 등록하러 가자. 너는 그렇게 좋은 걸 왜 이제 말하니!

 

 

어차피 태권도는 메이저 스포츠와 경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태권도를 ‘스포츠가 아닌 자기수양이 가능한,
스포츠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차별화할 때
고객의 인식 속에 새로운 포지셔닝이 가능 해지는 것이다.

 

 

브라운 여사에게 축구, 야구, 수영, 농구는 단지 평범한 운동일 뿐이지만 자기수양이 가능한 태권도는 다른 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스포츠 이상의 그 무엇이 된다. 즉, 마케팅 관점에서 유리한 브랜딩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태권도는 메이저 스포츠와 경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태권도를 ‘스포츠가 아닌 자기수양이 가능한, 스포츠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차별화할 때 고객의 인식 속에 새로운 포지셔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태권도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태권도장에서의 실질적 체험을 통해 확고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차별화된 스포츠 컨셉과 체험은 태권도의 속성으로 한국의 브랜드 연상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태권도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은 높으며, 동시에 국가브랜딩과의 연관성도 아주 높다.
그러나 태권도가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발은 많이 되지않은 상태이다.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도 퇴출될 위기에 있으며, 태권도의 문화를 충분히 체험할 요소들도 충분하지 않다.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브랜드 문화나 철학을 고객들이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상품, 매장, 서비스, 광고 이외에 독특한 것을 제공한다. 뉴욕에 있는 ‘나이키 타운’은 나이키의 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나이키 박물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이키가 지향하는 ‘승리’를 체험시키기 위해 나이키의 영웅(스포츠 스타)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패션 브랜드들이 흔히 자신의 브랜드 철학을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전략’이다. 브랜드는 그곳이 단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문화를 보여주는 곳임을 알려주고, 고객은 직접 체험을 통하여 그 브랜드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필자 또한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는 제주도의 ‘오설록 차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 밭 한가운데 위치한 차 박물관(차의 역사와 신기한 차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을 경험하고서는 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차를 마실 때마다 그때의 고요함과 엄숙함, 그리고 정갈함을 느낀다. 오히려 그 감정을 되새기기 위해 일부러 차를 마시는 경우도 있다. 그전까지 필자에게 차는 ‘노인들의 음료’로 포지셔닝되어 있었지만 그 체험 이후로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순수한 천연 신경 안정제와 같은 음료’가 된 것이다. 이것은 제주도 차박물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차를 마셨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막대한 투자비를 들여 자신의 브랜드 철학을 체험시키기 위해 플래그십 스토어를 박물관처럼 만들고 이를 성지처럼 신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마니아 고객은 이러한 성지를 종교인들이 경배하듯 정기적으로 순례한다.

 

‘태권도=한국’이라는 등식은 이미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브랜딩 입장에서 태권도가 세계 국민에게 차별화된 브랜드로서 인식될 차례이다. 태권도가 종교와 같은 강력한 브랜드 힘을 가지려면 양적 팽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태권도 문화를 충분히 체험할 공간이 필요하다. 실제적으로 박물관의 모습은 나이키의 브랜딩 전략을 참고할 수 있다. 나이키는 ‘승리’라는 그들의 브랜드 철학이자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 위해서 1등 스타들을 섭외하여 나이키 운동화와 유니폼을 입힌다. 사실 스포츠 스타들이 1등이기 때문에 나이키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나이키는 고객에게 ‘나이키를 사용하기 때문에 스타들이 1등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소비자들은 스포츠 영웅들에 열광하고 그들의 신화적 스토리와 경기력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의 영웅이 사용하는 나이키를 사용함으로써 영웅들과 일체가 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브랜드 마니아들의 행동양식은 신실한 종교적 신도의 그것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든 브랜드를 느끼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브랜드에서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호의적으로 구매한다.

 

태권도에는 나이키와 같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부족하다. 그들에게 영웅은 여전히 자신을 가르친 사범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이나 골프의 타이거 우즈처럼 태권도에도 영웅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는 단순히 경기력이 뛰어난 차원을 넘어선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스토리와 태권도 전반에 관한 문화를 충분히 느낄만한 박물관(혹은 플래그십 스토어)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태권도의 풍성한 이야기는 물론, 함께 보고 만지고 느낄만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전 세계 7천만 태권도인을 만족시킬 태권도 용품 브랜드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하고 유니크한 태권도 브랜드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태권도 문화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의 앞단은 우선 태권도에 대한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일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태권도를 알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일본이 ‘스시 문화’를 알렸던 것처럼 관련 박람회를 개최하거나 좀 더 스포츠 중심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전 세계 IT기술 관련 박람회나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기업과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해당 기술 시현을 태권도 동작이나 문화에 적용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만약 A라는 모션 센서 기술 개발 업체가 움직임을 감지하여 컴퓨터 화면에 반응을 그려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면, 그 기술 시현에 태권도의 움직임을 접목시킬 수도 있고 화면에서 보여지는 비주얼을 태권도 관련 이미지로 꾸밀 수도 있는 것이다.

 

이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만약 태권도를 소재로 한 헐리우드 영화가 만들어지거나 주인공의 주된 기술로 태권도를 사용하고 도복을 입고 등장한다면 어떠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게 될까? 아마도 태권도를 위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좀 더 발전하면 태권도 소품을 이용한(도복을 가지고 다니는 가방 조차도 제품이 될 수 있다) 브랜드를 만들기 훨씬 수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활동들이 국가적 차원의 지원 아래 진행된다면, 에이미가 브라운 여사에게 들려주는 초보적인 태권도 이야기에서 벗어나, 10대 아이들이 닮고 싶은 좀 더 쿨한 태권도 롤모델이나 영웅이 태권도를 강력한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한국의 강력한 국가브랜딩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과욕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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