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되는 디자인, 사라지는 브랜드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김상규  고유주소 시즌1 / Vol.10 디자인 경영 (2009년 06월 발행)

“요즘 디자인은 그야말로 소비됩니다. 그리고 사라지죠.” 디자인과 소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잘 된 디자인은 소비를 만들고, 잘 팔리는 제품의 디자인은 널리 알려진다. 그러나 디자인이 정말로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 해보기 위해 만난 디자인 전문가들의 이 말은 다소 걱정스럽다.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브랜드를 원하는 기업이 왜 사라지는 디자인을 하는 것일까? 언제고 잊혀질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를, 소비자는 ‘진정’ 원하고 있는가.

The interview with 한국디자인문화재단 사무국장 김상규,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 기문주

 

 

“요즘 디자인은 그야말로 소비됩니다. 그리고 사라지죠.” 디자인과 소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잘 된 디자인은 소비를 만들고, 잘 팔리는 제품의 디자인은 널리 알려진다. 그러나 디자인이 정말로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 해보기 위해 만난 디자인 전문가들의 이 말은 다소 걱정스럽다. 사라지지 않을 불멸의 브랜드를 원하는 기업이 왜 사라지는 디자인을 하는 것일까? 언제고 잊혀질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를, 소비자는 ‘진정’ 원하고 있는가.

 

요즘은 ‘디자인’만큼 구입하기 쉬운 것이 없다. ‘디자인’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상의 모든 것이 디자인되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디자이너의 고민으로 창조된 물건들을 아주 쉽게 구입하고, 또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모든 제품과 브랜드 로고, 패키지, 심지어 쇼핑백 하나까지도 디자인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 역시 쉽게 소비되고, 쉽게 버려진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문학책에 나오던, 유씨 부인이 아끼던 바늘이 부러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지었다는 <조침문>이란 수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오래 사랑받는 물건, 수명이 긴 브랜드를 주위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디자인에 익숙해지고 디자인을 많이 경험할수록 이런 소비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소비 현상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대중과 디자인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전·현직 큐레이터를 만났다.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기문주 큐레이터는 “최근 기업들이 과거에 비해 제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시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문화마케팅 차원에서 진행하는 후원과 참여가 많아졌다”고 이야기한다.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의 김상규 사무국장 역시 “기업이 전략적으로 디자인을 활용하는 사실 자체는 반길 만한 일이며, 이로 인해 디자인이 사회적으로 더 주목받는 문화가 조성된 것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일반 기업들이 디자인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디자인을 소비하는 문화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체를 통해서 수없이 듣게 되는 ‘디자인(design)’이라는 단어와 슈퍼 디자이너들의 유명 작품들, 그리고 해외에서 보게 되는 유명 전시회들이 우리 ‘경험의 폭’을 넓혀주었기 때문에 디자인은 더이상 우리에게 낯선 문화가 아니며, ‘디자인’이라는 용어에서 우리가 느끼는 친근함과 가벼움만큼 조금은 편안하게 디자인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김상규 : 물론 대중이 모든 장르에 대해서 전문가적 지식을 가질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그만큼 훌륭한 디자인을 소비하면서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좀 더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너무 쉽게 선택, 소비되고 그냥 폐기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디자인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업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이전 것을 진부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략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기업은 해가 바뀌면 새로운 디자인의 새로운 모델들을 내놓고, 소비자들도 이미 그런 패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나오고 사라지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소비의 중심에는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고 보니 필요한’ 물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은 수명이 짧은 소비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간단한 매개가 되고 있다.

 

김상규 : 기업과 소비자는 서로 학습하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기업은 소비를 권유하고, 소비자들이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템포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서로 자극을 주고 받는다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니까, 기업이 제공하니까,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디자인이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기문주 : 어떤 디자인이건 이제 자극적이지 않으면 대중의 시선을 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슈퍼 디자이너의 이름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디자인, 그렇지만 항상 ‘새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디자인만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그래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는 디자인은 나쁘지 않다. 브랜드의 경우 이로 인해 런칭시 브랜드가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기업의 매출 신장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 그러나 많은 기업의 컨설턴트와 디자인 큐레이터들이 걱정하는 것은 다른 관점의 문제이다.

 

김상규 : 계속 변화하는 디자인이 자극제는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브랜드 중 어떤 것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휘발성’이 강한 디자인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컴퓨터의 휘발성 메모리처럼 잠깐 기억되었다가 사라져 버리고 존속되지 않는 것이죠.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이 이렇게 미봉책이나 화장술이 되어버리고 만다면 그것은 디자인 경영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피로도가 머릿속에 누적된 이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용어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때 디자인은 브랜드를 살아있게 유지하는 ‘전략’이 아니라 그저 ‘붐’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매력적이다. 속성상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브랜드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렇게 눈에 보이게 된 것은 사람들을 자극한다. 물론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탄생했을 때 열광적으로 환호한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디자인의 수명이 너무 짧고, 금방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다. 그래서 기업은 단순히 매출만 고려하기 이전에 브랜드라는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만 항상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실제로 매번 크게 다르지 않게 디자인을 하는 애플이나, 자신만의 색깔을 항상 유지하는 캠벨 수프, 심지어 거의 변화가 없는 앱솔루트 보드카와 코카콜라의 병 디자인에 대해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조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자인에 대해 “고객이 원해서” “자극적이지 않으면 팔리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브랜드와, 이들 브랜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지속적이고 일관성있게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들 브랜드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소비자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아 왔다. 그리고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계속 ‘변화’만 하고 있는 브랜드와는 다른 차원에서 앞으로도 사랑받게 될 것이다.

 

김상규 : 기업이 진지하게 디자인 경영을 하려 한다면 상품으로 내놓았던 것, 존재했던 디자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훌륭한 디자인이 ‘오래’ 사랑 받는 것은 예술과 다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요소들 중 디자인을 전략으로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가부는 기업이 결정할 문제이듯, 김상규 사무국장의 말처럼 디자인으로 ‘휘발하지 않는’ 브랜드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도 이제 기업이 신중하게 선택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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