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브랜딩의 보완 솔루션, 도시 브랜딩
도시를 통한 국가브랜딩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김우형  고유주소 시즌1 / Vol.10 디자인 경영 (2009년 06월 발행)

2000년대 이후에 세계적으로 국가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진행 중에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국가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것인가? 통제 불가능한 부정적인 요소에 신경 쓰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해답은 아닐 것이고, 국가의 현재 강점을 극대화하고 잠재적인 강점 요소는 뚜렷이 드러나도록 발굴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성이 될 것이다. 물론 말은 쉬운 듯 보이나 실제로 국가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국가브랜드를 이루는 요소에는 상당히 여러 가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국가브랜딩의 여러 가지 보완 솔루션 중 도시를 통한 국가브랜딩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 한다. 미국을 뉴욕으로 기억할 수도 있고 시애틀로 기억할 수도 있으며, 중국을 베이징으로 기억할 수도 있고 상하이로 기억할 수 있듯이, 도시 브랜딩은 국가브랜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도시를 전략적으로 브랜딩 하는 것이 국가브랜딩의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 국가 이미지에 비하여 도시 이미지가 강력할 때의 도시 브랜딩 효과에 대해 살펴보고, 특히 스위스 바젤의 사례를 통하여 실제로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바라보고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도시 브랜딩의 벤치마킹 모델을 살펴보자.

국가브랜딩이 어려운 이유

국가브랜드 구축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국가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매우 광범위하고 복합적이며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단기간에 몇 가지 정책만으로 가치를 높이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가와 도시 브랜딩의 전문가인 사이몬 안홀트에 의하면 국가브랜드는 경제력(Exports), 정부의 통치방식(Governance), 문화(Culture), 사람(People), 관광(Tourism), 이주와 투자(Immigration & Investment)의 6가지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일 년에 한 번씩 발표되는 안홀트-GMI 국가브랜드 지수(NBI:Nation Brand Index)가 바로 이 여섯 가지 요소에 의해서 측정되며, 현재 한국은 33위에 위치해 있다. 여섯 가지 요소들을 들여다보면 외국인들이 갖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가운데 몇 가지만 바꾼다고 해서 국가브랜드가 쉽게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일단 경제력과 투명한 정부 운영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해외 관광객과 투자가들이 한국에서 관광하고 거주하고 사업하기에 매력적인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미지보다 먼저 국가의 실체가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특정 국가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이 단일하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국가차원에서 하나의 브랜드 메시지로 강력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집중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외국인은 단일한 메시지로 특정 국가를 인식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투입한 에너지에 비해 효과는 상당히 희석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국의 국가브랜드를 평가 한다고 할 때 미국 문화, 미국 사람, 미국에서의 관광, 미국에서의 사업 환경에 대해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보통 자신이 방문해 본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미국 전체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홀트가 말한 요소들 중 경제력, 정부의 통치 방식 요소에 대해서야 통일된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문화, 사람, 관광, 이주와 투자 요소에 대해서는 방문한 도시를 중심으로 인식을 형성해 가기 마련이다. 시카고의 문화와 사람, LA의 문화와 사람, 그리고 맨하탄의 문화와 사람, 마이애미의 문화와 사람은 다르기 마련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각 도시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 각기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가의 지역적 범위는 넓은 반면 외국인이 접하게 되는 물리적인 환경은 특정 도시에 제한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국가브랜딩이 어려운 이유는 국가를 브랜딩해야 할 뿐 아니라 핵심 도시 또한 동시에 브랜딩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국가 vs. 구체화된 도시

필자는 위의 두 번째 이유인 특정 국가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이 단일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경험한 도시를 중심으로 국가의 인식을 형성한다는 설명에 근거하여 국가브랜딩의 보완 솔루션으로서 도시브랜딩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국가브랜드를 구축하고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은 필수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국가의 핵심 도시에 대한 브랜딩 활동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강력한 국가브랜드가 구축될 수 있다. 외국인들의 실제적인 경험의 대상이 되는 최소 단위(Elementary Unit)가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소규모 국가 혹은 개발도상국가는 대부분의 국가 역량이 *종주 도시에 집중되기 때문에 종주 도시를 잘 브랜딩하는 것이 국가를 브랜딩하는 좋은 솔루션이 된다.

 

이보다 좀 더 극적인 케이스도 있다. 대다수 국가의 경우 국가브랜딩과 도시 브랜딩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서로 시너지를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어떤 국가의 경우에는 도시 브랜딩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의 이미지가 다소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국가 내 특정 도시는 매우 긍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로 예를 들면 체코의 프라하, 폴란드의 크라코프, 인도의 방갈로르다.

 

 

빈약한 국가브랜드 체코, 강력한 도시 브랜드 프라하

안홀트-GMI가 발표한 국가브랜드 순위 31위, 국가경쟁력 순위 33위, 경제규모(GDP기준) 53위인 국가가 있다. 그런데 이 국가는 상당히 높은 브랜드 수준의 도시를 수도로 가지고 있다. 바로 체코의 프라하다. 일반적으로 체코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붕괴한 공산주의’ 외에 특별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반면 프라하는 ‘북쪽의 로마’ ‘유럽의 심장’ ‘흰 탑의 황금도시’로 불리며 관광객들에게 사랑 받는 도시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프라하를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도시’라고 했다.

 

이렇게 국가의 이미지와 그 국가의 특정 도시의 이미지 간에 차이가 클 때, 특히 국가 이미지보다 도시이미지가 긍정적일 때는 국가는 그 도시를 브랜딩 함으로써 도시 자체를 국가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다. 체코가 프라하를 중심으로 브랜딩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산 정권이 무너지기 전인 1998년에 체코를 찾은 방문객은 400만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매년 1억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 대국이 되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프라하에 방문하기 위해서 체코를 찾는다. 그 결과 체코 전체 인구의 12%가 사는 프라하는 전체 GDP의 25%를 생산해 내고 있으며, 대부분이 서비스업에서 나오고 있다.

 

프라하가 체코라는 국가브랜드가 가진 부정적인 요인, 혹은 빈약한 아이덴티티를 극복하고 국가 관광 수입의 50%를 벌어들이는 이유는 보유하고 있는 문화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구시가지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곳은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아르누보 등 고대 건축의 거의 모든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거대한 건축 박물관을 보는 듯하다.

 

반대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풍부하지는 않더라도, 전략적 접근을 통하여 도시 경쟁력을 키우고, 나아가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있다. 앞서 언급한 폴란드의 크라코프, 인도의 방갈로르이다. 크라코프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산에 정책지원이 뒷받침되었으며, 방갈로르는 국가의 이미지와 관계없이 리더십에 의해 전략적으로 계획된 도시이다.

 

 

쇠락한 폴란드, 유럽의 문화도시 크라코프

‘1978년 유네스코 최초로 세계 자연 및 문화유산 제1호로 선정된 소금광산이 있는 곳. 뼈아픈 2차 세계 대전의 현장, 아우슈비츠가 있는 곳.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고 아직까지도 중세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바로 폴란드의 옛 수도였던 크라코프이다. 크라코프는 소금광산이나, 중세의 모습, 그리고 지금도 폴란드 왕의 장례식과 즉위식이 거행되는 등 도시의 브랜드 자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돋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폴란드는 공산화 이후에 급격히 경제가 쇠락하며 다른 유럽 도시들에 관광객을 내주면서 유럽의 문화도시에서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기존의 자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민과 정부 그리고 EU의 니즈가 들어 맞으면서 전략적 성공을 이루었다.

 

계기는 EU 가입과 동시에 진행된 ‘유럽문화도시 2000’에서 유럽문화가 서유럽에 치우쳐져 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유럽의 9개 문화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페스티벌 크라코프 2000’이라는 5개년 계획을 통해서 크라코프의 문화가 서유럽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린 결과 관광객 수는 5년 전에 비하여 3배 늘어난 700만 명이 찾는 도시가 되었으며, 실업률은 2.5% 감소하였다. 구체적으로는 5년 동안 유럽연합과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1996년 폴란드 영화축제, 1997년 문학축제, 1998년 음악축제, 1999년 도시축제, 2000년 종합문화축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 ‘크라코프 2000’을 통해 5년 동안 121개의 프로젝트와 656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도시 경쟁력은 동유럽공산국가라는 이미지에 동유럽에서도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더 해주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교육 도시로서의 자긍심과 활력을 되찾고,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유대인의 거리에 화가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작업실과 갤러리가 들어서고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었다.

 

 

인도, 그리고 IT 도시 방갈로르

인도의 방갈로르는 인도를 IT 강국의 이미지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한 도시이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친디아’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인도가 중국처럼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IT와 관련된 인프라와 인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얻는데 방갈로르라는 도시가 없었다면 인도가 지금만큼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도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도시 자체를 국가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브랜드 자산이다. 그렇지만 방갈로르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도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갈로르는 1970년까지만 해도 인구 100만 명의 소도시였다.

 

그러다 1985년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방갈로르 진출을 결정하면서 당시의 총리였던 바지파이는 ‘정보기술 입국’을 선언하고, “모든 지원을 총동원해 인도를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라고 선언한 후, 강력한 IT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했다. 시 정부의 전략적 차원의 개발로 현재는 인구 550만의 ‘인도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위’에 올랐으며, 뉴스위크 선정 ‘21세기를 이끌어갈 세계 10대 첨단과학기술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도라는 국가브랜드의 연상이미지는 ‘저렴한, 낙후된, 게으른, 방랑자, 여성 차별, 계급 사회’ 등과 같이 부정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떠오른다. 그렇지만 방갈로르라는 도시 하나를 보았을 때에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 최첨단, 200여 개의 글로벌기업, 쾌적한, 스마트’와 같은 상방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극과 극의 브랜드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방갈로르는 국가브랜드 자산 중 강력한 것을 선택하여 경쟁 요소로 삼을 수도 있지만, 관계가 크지 않은 요소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강력하게 추진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다. 게다가 기존의 국가 이미지와 새롭게 경쟁력을 갖게 된 도시 이미지가 상반된 가치를 갖게 됨으로써 의외성의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방갈로르를 일컬어 ‘인도의 재발견’ 혹은 ‘방갈로르 효과’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국가, 도시 브랜딩의 패턴

이상의 사례들은 국가브랜드가 다소 부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오히려 도시를 브랜딩함으로써 국가브랜드의 가치도 올라가는 경우들이었다. 또한 가지 유형은 이미 국가가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특정 도시를 새롭게 브랜딩함으로써 추가적인 상승 효과를 누리는 경우로 독일과 프라이부르크가 대표적이다.

 

 

국가브랜드 1위 독일, 시너지 도시 프라이부르크 

위의 프라하, 크라코프, 그리고 방갈로르는 모두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보다 높아서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 케이스들이다. 하지만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는 오히려 국가 경쟁력이 도시 경쟁력보다 높은 케이스이다.

 

독일은 국가브랜드 지수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세계 강대국이고,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 특색있는 도시를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 안에서 프라이부르크는 1990년대 독일 통일 전까지만 해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도시였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이라는 잘 구축된 국가브랜드 자산을 등에 업는 대신, 독일을 넘어선 ‘유럽의 환경도시’가 되기로 했다.

 

그 결과 독일이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가려지기 보다, 유럽 전체의 주목을 받았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 환경 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이미 잘 구축된 국가브랜드 자산을 가지고 있는 독일에 ‘환경 친화적인 도시를 가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자산을 하나 더 추가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정책적인 측면보다는 시민과 시민단체의 자발적 노력의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 중심의 전략들은 시정부의 협력을 통하여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되었다. 프라이부르크는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프랑스 군대가 주둔하다가 남기고 떠난 보병지구를 신도시로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필요’에 의해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 필요는 정책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보방포럼’이라는 시민 단체가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시정부가 보방포럼을 파트너로 맞으면서 전개되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쓰레기는 모두 재활용한다는 쓰레기 제로 운동, 자동차 추방, 태양열 도시 만들기 등의 약속을 만들고 지켰으며 이것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안들도 마련했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환경 교육이 생활화되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쓰레기 배출요령을 배우며, 학급에는 ‘절약팀장’이 존재한다. 또한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태양광 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솔라하우스를 만들고 이러한 환경 자체를 솔라투어리즘이라는 새로운 관광산업으로 개발했다.

 

그 결과 ‘생태환경도시’ ‘에너지 자립도시’ 그리고 태양광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재생 에너지로 살아가는 ‘태양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으며, 60여 개의 환경 NGO가 입주해 있는 볼거리와 배울거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국가브랜딩에 대한 시사점

국가를 브랜딩 하는 방법에는 국가 자체로 접근하는 방법, 원산지 효과, 즉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도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가능하면 세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며 전략적으로 핵심 도시를 동시에 브랜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많은 국가들이 브랜딩 작업을 진행할 때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핵심 도시와 함께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야말로 삶의 기초 단위가 되는 곳이고, 경험이 일어나고 인식이 구축되는 가장 구체적인 실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소규모 국가는 핵심 도시 브랜드 구축 작업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동시에 구축해 가야 하며, 이에 대해서는 프라하, 크라코프, 방갈로르가 좋은 참고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도시 강한 브랜딩, 스위스 바젤

연방국가인 스위스에는 많은 특색있는 도시들이 존재한다. 취리히, 제네바, 루체른, 인터라켄, 다보스. 모두 스위스의 도시이다. 스위스는 브랜드 강국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바젤은 서울 면적의 1/20의 면적에 1/50의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이지만, ‘아트 바젤’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문화와 예술로 가득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작은 도시가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 매년 3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바젤의 도시 마케팅 책임자 사빈느 호바스와 바젤 관광청의 책임자인 다니엘 에글로프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브랜드 마인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도시’라는 공공의 자원을 브랜드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전략을 실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위스라는 나라의 힘에서 찾을 수도 있다.

 

알프스라는 거대한 관광자원, 금융의 나라와 UBS, 시계산업과 스와치 그룹, 세계적인 브랜드 네슬레. 이 모든 것이 스위스의 것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강국인 스위스에서 브랜드적 관점으로 브랜딩 되고 있는 바젤의 도시 브랜딩 이야기를 들어본다.

 

바젤에 대한 이해

피카소가 노년 시절이었던 1967년, 한 시청으로부터 자신의 작품 두 점을 구입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피카소는 이 제안을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미술품은 주로 개인 수집가나 재단이 구입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때로는 정부 차원의 몰수나 기부 형태가 미술품 거래의 일반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시청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왜 시에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자신의 작품을 사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시청의 설명에 의하면 시민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모두 다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적 소유물 형태로 갖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도시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Basel)이었다. 도시의 시민들은 주민 투표를 통해서 세금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6백만 스위스 프랑에 피카소의 두 작품이 바젤에 팔렸고, 바젤 시민의 미술에 대한 열정에 감동을 받은 피카소는 작품 두 점을 더 시에 기부했다. 피카소를 감동시킨 것은 아름다운 여인이나 위대한 작품이 아니라 바젤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이었던 것이다.

 

바젤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애정은 바젤의 독특한 지리적 위치와 그에 따른 복합 문화적인 요소에 의해 생겨났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의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에 혼란이 생기면 현실에 염증을 느낀 인재들, 특히 예술가들이 바젤을 임시 거처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라인 강을 통로로 해서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융화되면서 새로운 모습의 독특한 문화 그리고 예술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젤을 설명하는 한 단어로 ‘예술’ ‘아트(art)’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바젤은 라인 강을 옆에 두고 있는 지리적 환경 때문에 전통적으로 물류, 상업, 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고, 섬유, 시계, 화학, 제약 산업이 발달한 산업 도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바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 보석 박람회를 개최하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산업 도시에서 예술은 하나의 취미 생활이나 부가적인 삶의 가치 정도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트’라는 단어가 바젤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 십 여 년도 되지 않았다. 바젤이 예술에 대한 진정성과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아트를 바젤의 핵심 컨셉 중 하나로 만든 것은 바젤시 당국의 통찰력과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바젤 도시 마케팅의 시작

바젤의 도시 마케팅은 대단한 전략적 의사 결정이나 도시에 대한 원대한 비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문제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었던 1998년 아이스하키 세계 챔피언십 대회가 바젤에서 열렸다.

 

인구 19만 명밖에 되지 않는 도시에 열리는 대회치고는 매우 큰 대회이고 도시 전체가 들썩거릴 만한 큰 이벤트이자 축제가 될 만 했다. 하지만 시 공무원들이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스하키 세계 대회가 바젤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관련된 활동도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갈 일이었는데 당시 바젤 시에는 이 일을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젤을 스위스의 작은 도시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도시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젤 시는 1999년 바젤 도시 마케팅의 컨셉을 잡기 위한 대대적인 설문 조사를 시작했고, 그 해 11월 ‘바젤의 도시 마케팅을 위한 첫걸음(City Marketing for Basel–the first steps)’이라는 프로젝트가 승인되었다.

 

5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2005년 1월 바젤의 경제 사회 정책 부서(the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of the Canton of Basel-Stadt) 내에 도시 마케팅 부서가 신설되기에 이른다.

 

바젤 시는 도시 마케팅(City Marketing), 정확한 현지 명칭으로 말하자면 지역 마케팅(Location Marketing)의 책임자로 어떤 사람을 선택했을까? 시청에서 오래 근무해서 바젤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바젤의 행정 시스템과 지역 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어서 일 처리를 순조롭게 해 낼 수 있는 사람을 세우지 않았을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베테랑 공무원을 선택하지 않고 민간의 전문 마케터를 도시 마케팅의 책임자로 선택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젤의 도시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리더는 사빈느 호바스(Sabine Horvath)인데 그녀는 이전에 저널리스트, PR 컨설턴트를 거쳐 여행 잡지 편집장을 역임한 ‘통합 마케팅’주의자이다.

 

바젤의 포지셔닝 도출

그녀와 그녀의 팀은 “바젤이라는 도시의 컨셉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젤의 컨셉을 어떤 방법으로 도출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의 답을 해 주었다. 그녀는 바젤을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한 문장 대신 네 개의 문장을 사용해서 바젤의 컨셉을 설명해 주었다.

 

1) 바젤은 연구 개발, 과학 그리고 교육의 도시이다
2) 바젤은 순수 미술의 중심지로 유럽 최고 도시들 가운데 자리매김된다
3) 바젤 시민들은 세련된 예절을 즐기며, 방문객들과 삶의 질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4) 바젤은 평균 이상의 경제 성장률과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경제 도시이다

 

순간 인터뷰를 진행하던 필자에게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왜 포지셔닝 진술문(Statement)이 하나가 아니고 네 개인가?’ 마케팅에서 말하는 포지셔닝 진술문이란 하나의 키워드나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상호 연관성이 떨어지는 듯한 문장이 네 개나 등장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사빈느 호바스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바로 그 점이 비즈니스에서 말하는 포지셔닝과 도시 포지셔닝의 차이점입니다. 비즈니스에서는 보통 고객이 유사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한 부류의 고객이 있고, 그에 따른 포지셔닝이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는 여러 종류의 고객이 있죠. 다양한 고객의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한다면 포지셔닝 진술문을 하나로 하는 것보다는 각 고객에 맞게 여러 가지로 정의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물론 특정 고객 입장에서 보면 한 두 가지의 포지셔닝 진술문을 접하게 될 것이고요.”

 

바젤이라는 도시의 고객은 첫째 도시 주민이나 잠재 이주 주민, 둘째 관광객 특히 해외 관광객, 셋째 투자를 원하는 기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형 이벤트 업체들이다. 모두 바젤이라는 도시와 연관된 고객층이지만 전혀 다른 니즈와 목적을 갖고 있는 상이한 고객들이다. 도시 주민은 쾌적한 삶과 경제 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관광객은 볼거리와 즐길거리 제공, 투자자들은 세제 혜택과 인력 등 투자 환경 제공, 그리고 이벤트 업체들은 편리한 컨벤션 시설과 행정 기관 협조에 의한 효과적인 이벤트 진행 등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 고객층이 도시를 인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바젤 시의 마케팅을 책임지는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각 고객에게 바젤의 차별점을 호소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컨셉을 만들어가는 것이 적절해 보였다. 바로 이 점이 비즈니스의 브랜딩과 도시 브랜딩의 중요한 차이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 브랜딩과 비즈니스 브랜딩의 차이점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그것은 의사결정 관계자의 수와 의사결정 절차의 복잡성이다. 비즈니스 브랜딩에서는 컨셉을 결정하는 사람이 보통 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색깔을 분명하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은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 즉 대주주나 경영자가 전적인 통제권을 갖고 컨셉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 도시의 이해 관계자 그룹에는 일반 시민, 비영리 단체, 언론, 정치권, 행정부, 기업체 등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며 그들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반영되어야만 의사 결정이 진행될 수 있고 향후 문제 발생의 소지를 막을 수 있다.

 

결국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바젤의 컨셉은 네 가지 문장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고, 컨셉을 도출하기 위해 몇 년에 걸친 연구 조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Made in Swiss or Cross-Cultural City

바젤 시가 도시의 포지셔닝을 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 가지 고민했던 이슈는 ‘Made in Swiss’라는 국가 원산지 효과를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Made in Swiss’는 ‘세계적인 품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젤 입장에서는 불리할 것이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관점 혹은 바젤에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 관점에서는 바젤이 스위스의 한 도시이고, ‘Made in Swiss’에 포함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거주주민, 관광객, 이벤트 업체의 관점에서 ‘Made in Swiss’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바젤이 ‘Cross-Cultural City’라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인 포인트였다. 글의 서두에 설명한 것처럼 바젤은 스위스이기는 하지만, 스위스, 독일, 프랑스의 접경 지대에 있으며 3개국의 문화가 융화되고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창출해 내는 곳이었다.

 

차별화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삶의 신선함과 새로운 시각을 원하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형화된 유럽의 문화가 아닌 새로운 유럽 속에서 살아가고픈 사람들에게 바젤은 최적의 장소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젤 시는 타깃 고객층에 따라서 Made in Swiss와 Cross-Cultural City라는 컨셉을 구별하여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바젤 시의 로고를 보면 ‘Basel’이라는 도시 명 옆에서 스위스 국기가 표시되어 바젤의 Made in Swiss로서의 속성을 분명하고 보여주고 있으며, 바젤 관광청의 로고를 보면 시의 로고 아래 쪽에 ‘Culture Unlimited’라는 슬로건을 크게 노출하여 바젤의 Cross-Culture적인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객별 마케팅 전략의 개발

사빈느 호바스는 각 고객 그룹에게 호소할 수 있는 바젤의 컨셉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고, 각 고객 그룹 별로 어떻게 마케팅 활동을 진행할 것인지를 설정하기 위해 전략적인 목표를 개발하였다. 크게 6단계에 걸쳐 개발된 전략 목표는 네 개의 고객 그룹과 매칭시키면서 세부 마케팅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6단계의 전략 목표 중 바젤 시에서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첫 번째 단계인 ‘바젤을 지도에서 보이게 한다(Put Basel on the map)’이다. 물론 단순히 바젤이라는 이름을 노출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바젤의 네 가지 컨셉을 타깃 고객 그룹에게 적절하게 노출시키는 것을 말한다. 바젤은 런던, 파리, 밀라노 등 유럽의 최고 도시들처럼 잘 알려진 대형 도시가 아니므로 일단 바젤만의 차별화된 컨셉을 많이 노출시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한 것이다. 인지가 되어야 충성도도 생긴다는 마케팅의 기본 원리를 따랐다.

 

타깃 고객 그룹 별로 바젤을 그들의 가시권 내로 넣기 위해 진행한 활동은 아래의 표에 정리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도구의 공통/고객 그룹 별로 나누어 제작하였고, 최대한 국제 사회에서 바젤을 노출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징이라면 다른 해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 또한 지역적으로 확장하여 미국 마이애미에서 아트 바젤을 전개하며 ‘끌어 들이는 마케팅’이 아니라 ‘찾아가는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어차피 작은 도시인 바젤에서 다양한 랜드마크를 만들고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젤을 찾아오고 바젤을 알게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 하에 해외의 유명 행사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바젤을 인지시키기로 했다. 이것이 작은 도시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는 것이 바젤 시의 설명이었다.

 

 

 

 

바젤 브랜딩의 강점, 통합과 일관

그들의 마케팅 활동의 종류나 규모만 놓고 봤을 때는 대도시들에 비해 빈약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젤은 작은 도시이고 예산이나 인력도 소규모일 테니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바젤은 그들의 예산이 적은 만큼 그 예산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즉, 타깃 그룹 별로 통합되고 정렬된 마케팅 활동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브랜딩의 핵심 원칙인 ‘통합과 일관’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포지셔닝 진술문의 두 번째에 나와있는 ‘바젤은 순수 미술의 중심지로서 유럽 최고 도시들 가운데 자리매김된다’는 컨셉에의해 정렬된 다양한 활동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예술art’ 혹은 ‘순수 미술’ 도시로서의 컨셉을 강화하고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아트 바젤Art Basel’이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미술 박람회를 개최하고, 최근에는 미국의 마이애미로 건너 가서 ‘Art Basel Miami Beach’를 진행하는 것이다. 미국 뉴스위크 지에서는 아트 바젤을 일컬어 ‘현대 예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품평회’라고 칭했을 정도이다.
 


물론 이런 거창한 행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 전체에 걸쳐 30여 개의 박물관, 50여 개의 갤러리, 그리고 20여 개의 소극장이 있으며, 한 해 박물관 방문객만 130만 명을 넘는다. 도시 안내도에는 예술 시설에 대한 상세한 안내가 제공되고 있으며, 관광 안내소에서 만 원 정도의 ‘바젤 카드(Basel Card)’를 구입하면 웬만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혹은 대폭 할인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 우수 갤러리에는 바나나 모양의 심볼이 입구에 그려져 있어 쉽게 취사선택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도시의 대형 컨벤션 센터, 관광 안내소, 심지어는 작은 갤러리에서도 ‘아트 도시 바젤’에 대한 동일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바젤 시에 열리는 예술 관련 행사나 아트 바젤 관련 문의에 대해서도 통일된 하나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대로변 바로 뒷골목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을 겸한 매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공방의 작업가들은 손님을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예술 후원자로 생각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싶은 공방에 한 번 들어가면 바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손님을 후원자로 대하는 예술가들의 너무나 진실되고 친절한 작품 설명을 차마 뿌리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도시 내부와 외부, 그리고 일상적인 삶과 큰 이벤트가 모두 ‘예술’이라는 컨셉 속에 녹아나며 융화되고 있다.

 

또한 바젤의 컨셉과 그것을 구현하는 활동을 들여다보면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있고, 진정성을 잘 느낄 수 있게끔 통합되고 정렬되어 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예술과 미술’이라는 컨셉은 바젤 시민들의 일상이자 삶의 보편적인 가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세금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구입하자고 결정했던 시민들, 그리고 박물관과 갤러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예술을 즐기는 시민들, 그들의 가치가 도시의 컨셉으로 연결되고 아트 바젤이라는 세계적 행사로 확장되었기에 바젤의 컨셉은 강력한 것이다. 또한 바젤의 예술에 대한 진정성이 시 차원에서 잘 발굴되고 스토리화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강력해 질 수 있었다. 산업 도시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바젤 시민의 예술적 감성과 진정성을 새로운 아트 바젤로 재해석 낼 수 있었던 힘 또한 진정성을 느끼게 해 주는 중요한 이유였다.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인 조직 운영

바젤의 브랜딩을 보다 강력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도시의 브랜딩 활동을 운영하는 조직의 탄탄함이다. 바젤 시의 Location Marketing 팀이 도시 마케팅의 실무를 책임지며 전반적인 활동을 조정해 가는 역할을 하고 있고, 타깃 고객 중 관광객을 대상으로는 바젤 관광청이, 비즈니스 투자자를 대상으로는 BaselArea가, 그리고 새로운 거주 시민을 위해서는 Residential Promotion팀이, 그리고 이벤트업체를 대상으로는 Event Services 팀과 바젤 관광청이 협력하도록 역할이 분담되어 있다. 도시의 포지셔닝 작업을 하면서 구분한 고객 그룹별로 담당 팀이 나누어져 있으며, 각 팀 별로 어떤 활동은 공동으로 진행하고, 어떤 활동은 각기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가 체계적으로 업무 분담이 되어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고객 별로 조직화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경영 구루 마이클 해머는 《리엔지니어링 기업혁명》에서 기존의 일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효율적으로 혁신하는 리엔지니어링에 대해 말하면서 그 핵심을 고객 중심의 프로세스 재설계로 인식하였고, 상당수의 기업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기능별로 프로세스가 설계되어 있으면 기능간 이기주의가 생기고, 기능내 에서는 최적화가 일어나지만 전체 프로세스에서는 일반적으로 비효율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어 결국 고객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프로세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바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순서대로 프로세스를 분석하여 재설계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마이클 해머가 말한 리엔지니어링의 핵심이다. 바젤 조직과 업무 방식의 특징이 바로 마이클 해머가 말한 고객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은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특정 부류의 고객이 누구와 접촉해서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바젤에 투자를 원하는 기업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하나의 부서만 접촉하면 모든 일이 풀리게 되어있다.

 

조직상 또 하나의 특징은 바젤의 관광청이 주식회사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지방 자치 제도가 발달한 유럽의 다수 도시들이 선택하고 있으며 뉴욕시가 NYC & Co.를 통해서 운영하고 있는 모델이기도 한 관광청의 민간화 모델이 바젤에도 적용되고 있다. 도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시 정부 소속이지만, 바젤 시의 관광청은 민간 회사로 움직이고 있다. 관광청의 디렉터인 다니엘 에글로프(Daniel Egloff)씨는 자신을 Basel Tourism의 CEO라고 소개하는데, 그는 2,000명의 주주가 있는 엄연한 기업의 경영자이다. 관광청에는 9명의 이사회 멤버가 있으며, 이사회에서 경영자를 선출한다.

 

관광청이 민간 기업이기는 하지만 예산의 25% 정도를 시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재정 지원을 받는 예산은 관광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도시 안내 책자나 무료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광안내소를 운영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 즉, 바젤 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시에서 지원을 하고, 나머지 일체에 대해서는 관광청이 자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수익의 1/3은 관광객으로부터 걷어들이는 세금, 1/3은 호텔, 레스토랑, 공항 등에서 받는 수수료, 그리고 나머지 1/3은 관광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얻는다.

 

 엄밀히 말하면 바젤 관광청은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스위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유사한 예로 뉴욕 관광청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뉴욕의 관광청은 NYC & Co. 라는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 단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NYC & Co.의 대표 또한 CEO로 불리고 있다. 관광이라는 활동을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라 운영하여 그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유도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 브랜딩에 대한 시사점

최근 많은 아시아의 중소도시에서는 도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랜드마크를 만들고 도시를 홍보하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랜드마크를 통해 도시 경관이 개선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도시 브랜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랜드마크 건립은 비용 대비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브랜딩이란 차별화(Differentiation)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도시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곳으로 구축해가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도시가 어떤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를 정의하는 일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젤이 첫 단계로 삼았던 포지셔닝 진술문 개발 과정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사실 도시의 포지셔닝을 개발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왜냐하면 포지셔닝 개발 과정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컨셉을 개발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도시의 다양한 고객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이 과정을 뛰어넘게 되면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건물들이 지어지게 되고, 이 건물에는 어떠한 철학이나 컨텐츠 혹은 스토리도 첨가되기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철학, 컨텐츠, 스토리는 모두 가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바젤 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시사점은 도시의 ‘고객’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고객 별로 포지셔닝 개발, 커뮤니케이션 전략 개발, 조직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에서 ‘고객’이라는 실체는 이미 사업의 기반으로 인식되고 있는 핵심 존재이지만, 아직 도시나 국가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도시 행정이나 국가 행정에서는 오히려 고객이라는 용어보다는 이해 관계자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도시를 브랜딩하기 위해서는 ‘누가 고객인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바젤의 전략과 전술을 보면 네 가지 부류의 고객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으며 고객에 정렬되도록 모든 실행 계획이 수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민간과 공공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 도시 마케팅 조직 운영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공공 기관에서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을 결정하고 조정하지만 민간의 전문성을 이용하고 민간과 협력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민간 위원을 팀에 한두 명 포함하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 마케팅의 책임자를 민간 마케팅 전문가로 세워 전문성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바젤 시의 노력, 그리고 관광청을 민영화하여 활발한 관광 지원 활동이 일어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그들의 시도는 아시아의 중소도시들이 참고할 만한 정책이라 생각된다.

 

* 맞춤여행 전문회사인 유로코트래블의 서태원 대표의 현지 코디네이팅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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