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사용자의 브랜드, BLACK DIAMOND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5 / Vol.33 브랜드 경험 (2013년 10월 발행)

진정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조셉 파인은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TED 강연에서 이렇게 답했다. 내가 임한 경험은 모두 진정성 있는 것이라고. 그의 논지는 이렇다. 경험은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내가 행위했던 모든 과정과 그 가운데에서 내가 받는 모든 느낌을 포괄한다. 그것이 몸으로 일어났든, 머리로 일어났든 경험의 주체는 진정한 인간인 우리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경험은 진정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 경험도 진정할 수 있을까? 고객의 경험은 진정할 수 있겠으나, 브랜드 하나로만 생각했을 때 제공하려는 경험의 진정성은 장담할 수 없다. 브랜드는 인간의 경험을 일으키는 자극제다. 100% 자연스러운 자극제는 없다. 사람의 손을 탄 인공품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에 대한 개념을 생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위적인 자극을 만드는 생산자, 브랜드의 태도다. 태도의 진정성을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이 있다. 첫째, 브랜드가 말하는 바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으로서, 나에게 거짓 없이 정직한가. 둘째, 남을 향한 것으로서, 브랜드가 말하는 바가 그대로 상대에게 비치는가. 브랜드의 철학이 이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고 나서 빚은 브랜드 경험이야말로 진정성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되는 방법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간단하다. 브랜드가 브랜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면 된다. 이번에 만난 BLACK DIAMOND(이하 블랙다이아몬드)는 본인들의 모습을 ‘사용자’라고 규정하고, 진정한 사용자가 만드는 브랜드는 어떤 경험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The interview with 비디코퍼레이션 대표 정호진

 

 

블랙다이아몬드의 탄생

‘마땅하지 않네. 내가 만들어야겠다.’1957년, 등반을 좋아하던 18살 클라이머, 이본 취나드는 생각했다. 하고 싶은 등반을 해야겠다는 욕망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장비가 필요하다고 소년의 귀에 속삭였다.

 

클라이밍의 발상지는 유럽이지만 세계2차 대전이 끝난 후 무대는 미국으로 본격적으로 옮겨 오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유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화강 암벽들이 많았다. 이런 바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유럽 사람들의 테크닉, 등반 방식, 장비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대암벽을 너무 오르고 싶었던 클라이머 중 한 하나였던 이본 취나드는 쇠로된 자동차 스프링을 떼어다가 창고에서 맨손으로 해머와 모루로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 번 꽂으면 다시 뺄수 없는 유럽식의 연철 피톤과 다르게 여러 번 설치하고 회수할 수 있는 강철피톤을 만든 취나드는 요세미티 아래에서 팔기 시작했다. 블랙다이아몬드의 전신인 취나드 이큅먼트(Chouinard Equipment) 사가 설립되게 된 계기였다. 클라이밍 계에서 입소문이 빠르게 나긴 했지만, 애초에 취나드는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자기가 원하는 등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종전에 없던 장비가 필요했고, 그것을 스스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왼쪽) 기존의 클라이밍 장비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 이본 취나드는 직접 강철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이본 취나드는 요세미티 산자락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비를 판매했다.

 

취나드는 뛰어난 기량을 갖춘 클라이머이자, 이에 못지 않게 창의적인 머리를 가진 발명가였고 심미안을 갖춘 아티스트기도 했다. 그리고 창시자의 이런 철학은 그가 만든 제품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기능, 창의, 심미의 세 박자를 균형있게 지켜나가려는 창시자의 철학은 브랜드에도 그대로 투영되었고,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고 블랙다이아몬드의 정신적인 뿌리를 지탱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되었다.

 

 

기능, 창의, 심미
취나드 이큅먼트 사 초기에 만들어진 거의 모든 장비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별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이것은 제품에 진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능과 미를 동시에 충족하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취나드는 클라이밍의 역사를 바꿔놓을 만한 장비들을 창의적으로 발명해 나갔고, 블랙다이아몬드가 세운 최초의 기록이 많다. 1968년, 빙벽 등반 때 신는 아이젠인 크램폰(Crampon)을 개선하여 세계 최초로 리지드 크램폰(Rigid crampon)을 출시한다. 빙벽을 찰 때 발을 든든하게 지지해준다. 1969년에는 급경사 빙벽을 커팅할 뿐 아니라 사람을 지지할 수 있는 새로운 피크(Pick)를 개발한다. 피크의 한쪽 끝에 커브를 만든 구부러진 피크(Curved Pick)를 가진 아이스액스(Ice axe)를 만들었고 과거에는 엄두도 못내던 고난이도의 등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내구성, 실용성을 갖춘 장비들은 본래의 기능에 충실해 간결하게 디자인되었다. 블랙다이아몬드는 창의적이고 아름답고 튼튼한 장비를 만든다는 변치 않는 디자인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플릭락(FlickLock) 방식의 트랙킹폴이다. 대부분 나사식으로 길이를 조절하는 폴과 다르게, 클립을 열고 닫아 막대를 넣고 빼는 간결한 방식의 길이조절시스템을 적용했다. 지금은 특허가 풀려 여러 회사들이 블랙다이아몬드의 플릭락 방식의 트랙킹폴을 제작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 등지의 트랙킹폴 시장은 블랙다이아몬드가 1위를 선점하고 있다.

 

 

(왼쪽) 스팅거 크램폰
세계 최초의 리지드 크램폰을 계승, 개발한 제품. 빙벽화에 착용하는 아이젠.
 
(가운데) 울트라 마운틴 카본 Z폴
플릭락 방식을 적용한 트래킹폴. 사진 상으로 굽은 부분은 보관도 용이할 뿐더러, 고무팁과 카바이드팁으로 교체가 가능하다.
 
(오른쪽) 코브라 해머
구부러진 피크가 적용된 아이스액스. 초기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바위 및 빙벽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필수 장비다.

 

 

1970~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취나드 이큅먼트 사는 전환점을 맞는다. 취나드가 만든 안전벨트(Harness)를 차고 등반하던 사용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이다. 제품에는 결함이 없었지만, 사용자에게 등반장비에 내재된 위험요소와 사용 시 주의사항을 알리는 노력이 미흡해서 일어난 사고였다. 배상 소송에 걸린 취나드는 회사의 침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파산 신고를 선택한다. 하지만 본래 취나드 이큅먼트 사가 갖고 있던 철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989년 12월 1일, 취나드 이큅먼트 사의 직원들은 장비업계 최초로 직원들이 주인인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자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블랙다이아몬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Staff, more than Stuff

미국 본사와 합작해서 한국에서 블랙다이아몬드를 전개하고 있는 비디코퍼레이션의 정호진 대표는 1989년, 캘리포니아 벤츄라에 있던 취나드 이큅먼트 사를 방문했던 기억을 전해주었다. 블랙다이아몬드라는 브랜드가 생기기 전이었지만, 브랜드의 창립 멤버가 될 사람들은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정호진 대표(이하 생략) 1989년의 한국 회사가 어떨지 생각해봤나. 복장부터 보수적이다. 벤츄라의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복장에서부터 충격을 받았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방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책상도 의자도 없는 방에 친구들이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회의를 하는 것이라 했다. 눈을 자극하는 그 어떤 요소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었다.

 

아기자기하고 예쁠 줄 알았던 디자인실은 원단과 원자재들, 재봉틀, 장비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었다. 제일 놀랐던 것은 화단을 손질하고 있던 노인이었다. 알고 보니 취나드와 창업 동지인데 은퇴하고도 회사가 너무 좋아서 잡역부(handyman)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 가운데에 유치원이 있었다.

 

 

과거 취나드 이큅먼트 사의 직원들

 

 

마크 고베는 ‘똑똑한 디자인과 훌륭한 브랜딩은 절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 풍요로운 기업문화와 최고 경영진의 역동적인 참여, 그리고 혁신을 향한 열정에서 나오는 지원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회사 문화는 약 25년 전 정착되어 있었다.

 

블랙다이아몬드가 생기고 나서 직원들은 이런 문화와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제 2의 도약을 위해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한다. 기능, 창의, 심미에 충실한 최고의 클라이밍 장비와 스키 장비를 디자인 하려는 역량을 새로운 공간에서 결집시킨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블랙다이아몬드의 본사가 위치한 솔트레이크시티는 주변이 백컨트리스킹, 암벽등반, 빙벽등반, 마운틴바이크, 카누 등 아웃도어의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미국 블랙다이아몬드 본사 직원들

 

블랙다이아몬드 직원들은 겨울이 되면 함께 모여 스키를 한바탕타고 나서 출근한다. ‘퇴근하고 산 타러 갈래?’라는 말은 블랙다이아몬드의 직원들에게 일상이다. 그래서 *블랙다이아몬드의 혁신적인 장비는 직원들 자신이 클라이머이며 스키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블랙다이아몬드는 스스로 ‘사용자의 회사’라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블랙다이아몬드의 혁신적인 장비
이본 취나드의 손을 떠난 후에도 블랙다이아몬드의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와이어 게이트 카라비너(Wire gate karabiner)나 더블 액슬 SLCD가 그렇다. 카라비너는 암벽 등반의 필수 장치 중 하나로, 등반 중 확보를 할 때나 확보지점에 로프를 통과시키고 오를 때 쓰는 쇠고리다. 1910년 독일의 오토 헤르조그라는 사람이 개발한 카라비너의 형태는 게이트 부분이 금속으로 되어 있었지만, 블랙다이아몬드는 이 클립 부분을 철사로 만들어서 사용이 더욱 쉽고 안전하게 고안했다. 2013년에는 카라비너에 최초로 자석을 적용해서 등반 중 장치가 쉽게 열리지 않도록 만들었다. SLCD(Spring Loaded Camming Device)란, 역시 암벽 등반의 필수 장비 중 하나로서 바위 틈새를 확보해 클라이머가 바위 면에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인공 확보물 장치다. 기존의 싱글 액슬(Single Axle)의 SLCD보다 다양한 폭의 바위 크랙에 적용할 수 있는 더블 액슬 SLCD를 개발했다.

 

(왼쪽) 블랙다이아몬드의 마그네트론 그리드락 카라비너.
검은색 부분이 자석을 활용한 잠금장치다.
 
(오른쪽) 캐머롯X4
등반가들의 친구로 불리는 캐머롯. 클라이머가 바위틈을 확보해 지탱할 수 있는 장치다.

 

 

블랙다이아몬드의 직원들은 장비 그 이상이다. 사용자인 직원들이 하나의 제품 사이클을 만들고 있다. 사용자들의 회사라는 철학이 우리의 경험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Use, Design, Engineer, Build, Repeat’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일단 사용(Use)해보고, 구상(Design)한다. 엔지니어(Engineer)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소재를 구하고, 소재에 필요한 공법을 생각해내고, 생산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금형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을 지칭한다. Build는 엔지니어를 통한 제조다. 드디어 만든 다음에 이 사이클을 되풀이 하는 것이 Repeat이다. 이것이 기능, 심미, 창의의 정신을 계승한 현재의 블랙다이아몬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이다.
 
직원들도 자신들이 이런 브랜드의 사이클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만큼 체질화가 되어 있다. 이것이 자기네들이 사는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각자 담당하는 분야가 달라도 매우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클라이밍과 스킹이 일이기도 하고 놀이이기도 한 것이다.

 

블랙다이아몬드의 회장이자 설립자인 피터 맥칼프 역시 유명한 클라이머 출신이자 이본 취나드를 멘토로 삼고 있다. 1980년대에 알래스카의 험한 산 중 하나로 꼽히는 헌터에 자기만의 루트를 개척한 사람인 만큼, 클라이밍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정호진 대표 역시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나드의 장비를 사용하면서 꿈을 키워온 클라이머다. 블랙다이아몬드 미국 본사는 이런 정호진 대표를 알아보고 1년에 걸쳐 한국의 합작회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대표님 역시 블랙다이아몬드의 사용자 중 한 분이시다. 클라이머 출신이기도 하고, 블랙다이아몬드를 한국에서 시작하기 전부터 클라이머랑 같이 일하신 걸로 알고 있다. 장비를 직접 만드는 것도 아닌데 클라이머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완전히 블랙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영업을 하건, 관리를 하건, 내가 직접 사용해보지 않고 애정을 갖고 있지 않으면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예전에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아웃도어회사에서 직원 교육을 보낸다. 세일즈맨, MD,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이 오는데, 이 사람들은 회사에서 가라니까 오는 거지, 등산을 하기가 싫은 거다. 사실 등산이 힘들지 않나. 내가 마음에 없는데 클라이밍을 하라는 것만큼 고역이 없다. 그래서 난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디자인, 상품기획, 마케팅, 영업을 가르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저기 창고에서 물류 담당하는 친구에게는 우리 회사의 장비들이 물건이 아니라 장난감이다. 어떤 물류창고 직원이 화물이 들어오는데 좋아가지고 장난감 다루듯 하겠나. 이 친구는 작년 5월에 맥칼프 회장이 올랐던 헌터라는 산에 새로운 루트로 올라갔다. 영업을 하는 사람도 이걸 어떻게 팔지를 고뇌하는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탄만 할 뿐이다. 장비를 실제 써보지도 않은 사람이 전달하는 내용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 클라이머 출신들하고만 일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직원이 직접 장비를 사용하면서 겪은 경험의 충만함은 그 어떤 설계된 브랜드 경험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자산이라 생각한다.

 

 

영업을 하건, 관리를 하건,
내가 직접 사용해보지 않고 애정을 갖고 있지 않으면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맥락에 충실한 브랜드 경험

좋은 사용자 경험이 언제나 좋은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가 사용되는 맥락에 충실한 경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블랙다이아몬드의 제품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사용자 경험이지만, 이런 경험이 좋은 브랜드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블랙다이아몬드의 제품이 사용되는 맥락을 먼저 고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등반(Climbing), 그 자체다.

 

블랙다이아몬드의 브랜드 경험은 곧 올바른 등반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이라는 등반사의 시대사조와 맥을 같이 한다. 오난 제이 고트(Onan J. Goat)라는 클라이머는 이렇게 토로했다. “25년동안 암벽등반을 하면서 바위에 피톤을 박을 만큼 박아봤다. 하지만 당시에 사용했던 설치물들이 정말 환경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바위에 확보물을 박는 것이 실제로 문제가 없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행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을 속이지는 않은 건지? 만일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면 옳지 않은 것이다.”

 

바위틈에 박았다 빼는 피톤은 처음에 등반하기엔 편리했지만, 결국 바위를 훼손시켰다. 천연의 형태를 훼손하는 건 옳지 않은 데다가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만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하면서 더그 로빈슨(Doug Rob-inson)은 1972년, 《취나드 카탈로그(Chouinard Cata-log)》의 ‘The Whole Natural Art of Protection’이라는 기사에서 클린 클라이밍이라는 개념을 전파한다. 이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로빈슨이 기고한 이 아티클을 통해 클라이머들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산을 오르는 방법보다, 어떻게 오르는가를 숙고하게 된 것이다. 클린 클라이밍에 이어 1980년대에는 프리클라이밍(Free Climbing)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자기 멋대로 하는 등반이 아닌 결코 자유롭지 않은 등반으로, 오히려 기어프리(Gear-free)라는 말과 비슷하다. 장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것은 곧 블랙다이아몬드의‘Keep it clean’이라는 정신으로 이어졌다. 등반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이다.

 

 

 

 

프리클라이밍을 가능하게 하려면 취나드 이큅먼트 사가 시작했을 때와는 또 다른 스마트한 장비들이 필요하다. 장비 자체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두 손을 다 쓰고 망치질을 해서는 프리클라이밍을 할 수가 없다. 어딘가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다이아몬드의 장비들은 프리클라이밍이 가능하게끔 뒷받침했다. Keep it Clean 이라는 정신에서 장비를 만들고 있다. 프리클라이밍은 다양하고 안전한 확보물을 클라이머들이 절제하게 만든다. 등반의 어려움은 늘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제한된 상황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창의성들이 발현된다. 보다 어려운 루트를 추구하고 남이 안 간 곳을 선한 방식으로 오르길 원하는 등반의 정신과 굉장히 유사하다. 안 되면 계속해서 시도해서 결국엔 나오는 게 혁신적인 장비들이다. 혁신을 이루되, 장비로서의 본질적인 역할은 다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직접 만드는 만큼 100% 완벽한 제품이다. 블랙다이아몬드가 내건 광고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는 “We trust what we make(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을 믿는다)”였다.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등반이나 스키라는 활동은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에서 제시하는 품질 기준은 법적으로 요구하는 기준보다 1.5배 이상 높다.

 

 

좋은 사용자 경험이
언제나 좋은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지만,
맥락에 충실한 경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블랙다이아몬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장비의 본질은 무엇일까.
풍뎅이나 사슴벌레를 보면 굉장히 아름답지 않은가? 그 아름다움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치장을 한 게 아니라 그 모습 자체로서 생존하는 기능에서 나온다. 오직 기능만을 위해 저절로 아름다워진 거다. 장비들도 마찬가지다. 맥락 속에서 딱 필요한 요소를 넣으면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아무 기능도 모르면서, 아무 의미도 모르면서 이것저것 덧붙이면 장비가 추해진다.
 
내가 감동받은 브랜드 체험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Patagonia)다. 지금은 모든 브랜드들이 스스로 에코프렌들리라고 이야기하지만, 파타고니아는 앞서 실천했다. 1980년대에 페트병을 분해해서 그걸로 옷을 만들었다. 파타고니아를 보면서 ‘브랜드 하나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브랜드의 옷을 입으면 내 자신이 고양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장 좋은 브랜드 경험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 브랜드를 쓰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필요를 넘어서서 문화와 라이프사이클에 함께 참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클라이머로서 블랙다이아몬드는 비즈니스 이상의 의미가 있는 브랜드다. 블랙다이아몬드의 철학을 알고 나서, 그 진정성에 공감했다. 많은 아웃도어브랜드들을 한국에서 전개해왔지만 이제는 블랙다이아몬드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모든 역량을 블랙다이아몬드가 가진 진정성과 아웃도어의 본질을 전파하는데 쓰고 싶다.

 

 

 

 

우리가 브랜드가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그 브랜드가 사용되는 환경에 잘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블랙다이아몬드는 등반이라는 상황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등반에는 재미도 있지만, 사람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이 주는 자극은 튀지 않고 상황에 녹아 들어 하나의 맥락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사람이 디자인했음에도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좋은 브랜드 경험은 내가 처한 상황이 브랜드로 하여금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과 365일, 24시간 함께 일하고 노는 사용자들은 그들의 장비는 어떤 형태여야 하고, 장비가 있어야 할 환경까지 고려했다. 그들의 철학은 곧 블랙다이아몬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들로 처한 상황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블랙다이아몬드가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경험이다. 경험의 산물로서의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드가 경험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블랙다이아몬드는 단순히 암벽등반장비를 만드는 그런 기업은 아니다.
블랙다이아몬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쳐 우리가 영위하는 스포츠에 깃든 정신,
그것의 가치와 목적을 지지하고 지켜나가는 회사다.
1957년 이래 우리의 혁신적인 장비 디자인은 셀 수 없이 많은 분야에서 이정표를 세웠다.
이것은 놀라운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 개발팀의 헌신과 열정,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이 클라이머이며 스키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블랙다이아몬드는 사용자들의 회사다.
우리가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제품의 성능이 얼마나 진화할 수 있는지 원대한 꿈을 꾸는 몽상가이며,
현재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장 무자비한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다이아몬드에서의 신제품, 신기술 개발 과정은 끝이 없다.
지금 블랙다이아몬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며 몰입되어 있다.
- 블랙다이아몬드 공식 홈페이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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