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당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5 / Vol.33 브랜드 경험 (2013년 10월 발행)

“시간 되면 거기서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자.” 언젠가 동생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였다. 무심코 흘린 많은 말이 그렇듯 그때 준수는 ‘거기’가 어딘지 굳이 묻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이상야릇한 식당의 이름을 검색하는데 꽤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세 글자라는 것, ‘당’으로 끝나는 한자(漢字)라는 것, 그리고 아주 작은 식당이라는 것 정도의 정보만으로 검색의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을 때, 그제야 문득 두 명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동생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아까부터 준수의 자조 섞인 푸념을 듣고 있던 조 주임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식당의 이름을 바로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1.

 

“시간 되면 거기서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자.”

언젠가 동생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였다. 무심코 흘린 많은 말이 그렇듯 그때 준수는 ‘거기’가 어딘지 굳이 묻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이상야릇한 식당의 이름을 검색하는데 꽤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세 글자라는 것, ‘당’으로 끝나는 한자(漢字)라는 것, 그리고 아주 작은 식당이라는 것 정도의 정보만으로 검색의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을 때, 그제야 문득 두 명 이상의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동생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아까부터 준수의 자조 섞인 푸념을 듣고 있던 조 주임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식당의 이름을 바로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구당.

그게 그 식당의 이름이었다.

번잡한 서울대입구역을 겨우 빠져나와 낯선 골목을 한참 올랐을 때, 그는 애초의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쉽게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가파른 언덕의 초입, 부동산의 노란색 네온 간판이 골목을 돌아 끝나는 그곳에 식당은 마치 건물의 숨겨진 뒷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90년대 일일 드라마에서 흔히 보곤 했던, 주인집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신혼부부를 위해 급조한 문처럼, 금방이라도 옹색한 옷차림의 새댁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그 문을 밀고 나올 법한 그곳이 식당의 입구였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나무문을 가린 소박한 군청색 차양에 흰색으로, 그것도 한자로 쓰인 ‘지구당’이라는 흰 글씨는 늦은 저녁, 가게를 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식당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길게 늘어선 행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수는 가능하면 혼자 온, 그리고 처음 온 티를 내지 않으려 예닐곱 명이 기다리는 행렬의 끝에 은근슬쩍 붙어 섰다. 이제 막 가을이 시작된 비탈진 골목 저쪽 위에서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식당 입구는 마치 그 골목의 스산한 풍경처럼 쓸쓸했다. 자못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이 마치 그 식당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때였다. 머쓱함과 의구심을 달래기 위해 식당 입구를 건들거리며 쳐다보던 준수의 눈에 식당 문에 아무렇게나 붙여진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 오는 친구들도 많고, 뭐 여러 가지 이유로 3명은 안 받는다. 미안하다.’

뭐지? 이 시건방진 시골 문방구 삼촌이 잠결에 흘린듯한 불친절한 응대는.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아도 경쾌하게 ‘다’ 자로 끝나는 반말의 문장이었다. 그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가 머리털이 난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개념 없이 반말을 함부로 하는 식당을 가본 적이 있었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이번엔 그다음 줄의 문장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지구당은 한국형과 일본 누나가 만들었다. 취재나 인터뷰 요청 같은 건 말아줘라. 싫다.’

흠. 당황스러운 첫 문장의 건방짐이 이상한 자신감으로 희석되고 있었다. 앞의 반말은 한국말이 서툰 일본 누나가 쓴 문장이었나? 하지만 한국말에 능숙한 한국형을 마다하고 굳이 우리말에 서툰 일본 누나가 이런 안내 문구를 쓸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두 번째 문장은 방송 출연 플래카드로 도배된 변두리 음식점의 카피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자신이 일간지나 잡지사의 기자라면 오히려 그 말 때문에 주머니 속 수첩이나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었을지도 모를 만큼. 그런데 그다음 말이 모호한 이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다.

‘음식만 팔고 있다. 친절은 안 된다. 없다. 그래도 괜찮다면…’

그리고 이 문장은 이렇게 끝이 났다.

‘어서 와.’

그리고 빨간색 형광펜으로 그려진 하트가 상황의 종료를 알리고 있었다.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픽’하고 쓴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늘 이렇게 말하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

 

“그냥 주는 대로 마셔.”

커피 주문을 기다리던 주인이 던진 말이었다.

준수는 놀란 눈을 하고 주인을 응시하다가 눈길을 돌려 옆자리에 앉은 동생에게 동의를 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동생은 의도적으로 그 시선을 피했다. 어쩌면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커피 맛도 모르면서.”

주인이 망설임 없이 다음 말을 던졌다.

준수는 아무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많은 이들이 내뱉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어디 아저씨 좋은 대로 한 번 줘봐요.”

앙금 어린 한 마디를 보태면서.

“커피 맛 따위 알게 뭐야.”

그리고 동생의 옆구리를 찌르며 화제를 돌렸다.

“은행 일을 관두다니, 무슨 소리야?”

동생이 주인과 의미심장한 대화를 눈길로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귀는 준수를 향해 열어둔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야.”

“미쳤구나.”

“어떻게 알았지?”

장난기 가득한 동생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는.”

“아직.”

“허락하실 것 같아?”

“그럴 리가.”

준수는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해가 안 되네.”

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동생을 돌아다보았다.

동생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유람하듯, 그러나 뭔가를 찾기라도 하듯이 속속들이 가게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준수는 그런 동생을 보면서 딱한 마음과 안쓰러운 생각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동생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가 군대 있을 때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없지 않았으나, 누군가에게 그 상황을 설명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자책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곤 했었다. 동생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공부와 담을 쌓을 만큼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못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당시 그들 집안 형편을 아는 지인이나 친척이라면 그 이유를 더욱 쉽게 짐작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느닷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내리막을 향해 내닫던 때였다. 준수 역시 비교적 학비가 싼 대학을 찾아 들어간 상황이었는데도 쫓기듯 군대에 가야 할 만큼 절박한 때였다. 그때의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은 덤덤하게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그 덕에 쉽게 은행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흐뭇한 해피엔딩이었으나 준수는 내내 그 사실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래, 계획은 있고?”

“가게나 하려고.”

“가게?”

“언제까지 남의 돈만 만지고 살다 갈 순 없잖아. 안 그래?”

동생이 먼저 주문한 커피를 받았다. 금세 커피 향이 그들 사이에 가득해졌다.

“어떤 가게?”

“생각 중이야. 카페도 좋고, 조그만 식당도 좋고. 뭘 해도 밥은 먹고 살지 않겠어?”

문득 대학 시절 일이 생각났다. 인간성은 몰라도 수업 시간 하나만큼은 칼같이 지키던 여 교수가 있었다. 원래 그런 건지, 진한 화장 탓인지 불분명한 창백한 얼굴에 아무리 불가피한 휴강이 있을지라도 기어이 보강을 하고야 말았던 독한 교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열정을 높이 산 우리는 그 교수의 수업에 항상 최고의 평점을 주곤 했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여교수가 가끔 빈틈을 보일 때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동화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가 그랬다. 하루는 창밖을 바라보던 여교수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었다.

‘나 말이지. 정년이 끝나면 딸기밭이나 할까? 그것도 아니면 조그만 카페도 좋고.’

평소 우유에 탄 미숫가루로 끼니를 해결하는 여교수의 사생활과 식습관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독백이었다. 결국 우리 중 몇은 웃음을 참느라 엎드린 채 입을 막아야 했다.

물론 경우는 달랐다. 하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준수의 마음은 그때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이 얼마나 밀림처럼 치열한지 아는지 이 녀석이 알기는 알까? 정시 출근과 성실함으로 꼼꼼하게 무장한 동생이 하는 카페란, 식당이란 대체 어떤 곳일까? 어느 명절엔가 은행 관련 업무 매뉴얼로 가득한 동생의 책장에서 우연히 찾았던 ‘파이 이야기’라는 책의 한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동생은 그 책의 한 문장에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저 넥타이가 올가미고, 거꾸로이긴 해도 조심하지 않으면 목이 졸릴 거라는 것밖에.’

그때 카페 주인이 준수의 커피를 그들 앞에 내놓았다.

“뭐가 그리 심각해?”

함부로 잔을 내려놓는 바람에 둔탁한 소리가 정적을 깼다.

“거참, 그냥 대충 살아.”

대접처럼 큰 커피잔이, 그야말로 대충 만든 커피처럼 넉넉하고 촌스러웠다. 하지만 동생은 전혀 심각한 기색 없이 자리로 돌아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맑고 가벼운 바디의 커피를 즐기는 그에겐 어떤 도발같이 여겨지는 진한 색의 커피였다.

“터키식 커피야.”

동생이 무심하게 말했다.

“터키식?”

“응. 터키 사람들은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 조금 달라. 저기 보이는 게 이브리크라는 기구인데 저기에 넣고 물과 함께 끓이는 거야. 그래서 맛이 강하고 커피 가루도 많이 남지. 옛날에는 이렇게 커피를 마시고 남은 가루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고도 해.”

그러고 보니 커피 색이 어릴 적 보았던 탕약처럼 진했다. 호기심이 동한 준수는 눈길을 돌려 바리스타의 모습을 찾았다. 막 주인이 다른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그의 눈에 익숙한 다른 바리스타와는 사뭇 달랐다. 적어도 50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 주인은 양옆으로 풍성하게 삐져나온 파마머리 위로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키만 한 높이에서 가는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꽂힌 물줄기가 드리퍼 안에서 요란하게 넘쳐흘렀다. 커피를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준수도 처음 보는 독특한 드립 방식이었다. 동생이 눈치를 챈 듯 설명을 보탰다.

“물론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야. 원두도 많이 필요하고 추출방식도 불규칙하니까.”

준수는 동생과 종종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래서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정교하고 조심스러운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보기에 이 집의 커피 만드는 방식은 독특함을 넘어서 당황하게 하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00선을 떠올리게 하는 선곡도 조금씩 귀에 거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곳이 끌린단 말이지. 알 수 없는 연륜과 경험이 느껴지거든. 믿지 않겠지만 주인아저씨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커핑이야. 커피를 분쇄할 때부터 물에 녹아 식을 때까지 몇 번이고 살피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적이 있거든. 형도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선 커핑까지 신경 쓰는 곳은 드물잖아. 아무튼 찬 바람이 불면 유독 이 집이 떠올라. 그래서 오늘 형을 부른 거고.”

“곧 카페 내겠다. 너.”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라는 말이 있어.”

“그건 맞는 말이지 싶다.”

준수는 문득 자신의 처지를 꼬집힌 듯한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동생이 의도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은 주인아저씨한테 어느 카페의 커피가 제일 맛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

준수는 마치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인 양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맛있는 커피란 대체 어떤 기준일까? 기준이 모호하니 떠오르는 커피집도 없었다.

“취향의 문제래.”

“취향?”

뜻밖의 대답이었다. 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에 한해서는 여러 가지로 세세히 따지는 편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커피는 돈을 내고도 마시지 않았다. 은행원의 호사냐며 핀잔을 주어도 끝내 마시지 않았었다. 준수는 자신의 커피를 맛보았다. 아주 진하고 달았다. 터번을 쓴 채 함박웃음 짓는 검고 거친 피부의 터키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그가 터키 사람을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그럴 것 같았다.

“그런 질문 자체가 의미 없다는 뜻이겠지. 커피 맛이란, 아주 개인적인 감흥이니까.”

“그런 너는 어떤 취향이야?”

“글쎄….”

동생은 한참의 망설임 끝에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부터 찾아보려고.”

 

 

3.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로소 커플로 보이는 눈앞의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사라지고 준수가 첫 번째 대기자가 되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만큼의 사람이 늘어 줄의 길이는 변함이 없었다. 준수는 나름 여유로운 기분에 젖어 맞은편 가게의 열린 문과 창을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보지 못했었는데 놀랍게도 두 집의 메뉴가 비슷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준수가 줄을 선 가게 쪽이 규동과 오야꼬동의 단 두 가지 메뉴만을 요일별로 구분해 파는 반면, 맞은 편의 가게는 규모도 두세 배 큰데다 전반적인 일본식 가정집 메뉴 전반을 아우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작은 가게의 성공을 지켜본 어떤 이가 메뉴와 규모를 확장해 가게를 열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손님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문 옆 작은 창을 통해 오픈된 주방에서 말끔한 복장을 한 요리사가 수시로 준수 쪽의 긴 줄을 곁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한 번인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준수는 저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때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혼자이신가요?”

파란 두건에 남색 요리복을 입은 여자가 두 손으로 반쯤 문을 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한 여자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마치 이제 막 수녀가 된 소녀 하나가 오래된 고성의 수도원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모양새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쪽문을 열고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크게 두 번 뛰면 직사각형 형태의 가게 끝쪽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폭은 더욱 좁아서 한 손을 짚은 채 다른 손을 뻗으면 맞은 편 벽이 닿을 듯했다. 어두운 조명 탓에 화장기 없는 민낯을 연상케 하는 가게 안의 인테리어는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불필요한 장식이 모두 사라지고 꼭 필요한, 이를테면 스테인리스의 차가운 질감이 또렷이 느껴지는 조리기구와 선반들이 마치 자신의 위치와 임무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다는 냥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좁은 가게,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완벽하게 공개된 주방 때문에 준수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제공되는 단 하나의 메뉴인 규동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사실 규동은 잘 지은 밥 위에 고기와 달걀을 얹은 너무나 간단하고 소박한 덮밥 메뉴다. 따라서 자세히 지켜본다 한들 특별한 요리 비법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요리 자체보다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무언의 팀워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회사를 생각했다. 자신의 회사는, 그리고 자신은 지구당 쪽일까, 아니면 맞은편 집 쪽일까. 자신의 회사 역시 세 명의 친구가 마음을 합해서 지금껏 키워 온 소중한 회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한 가지 장점에 집중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시장이 바라는 메뉴들을 두서없이 내걸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장은,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치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단 한 가지 메뉴를 고집하는 이곳에 밀리는 맞은편 가게처럼.

준수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딱히 한 곳에 눈길을 두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요리사 중 하나가 나무로 된 명패 같은 걸 하나 내밀었다. 이번엔 무언가 싶어 들여다보니 규동에 얹을 달걀을 넣을지 말지 택하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순간 ‘이걸 왜 굳이’ 하는 짜증이 일었다. 주문을 받거나 계산할 때 외에는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종업원의 반응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준수의 의사를 확인한 직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동선으로 돌아갔다. 직원은 모두 셋이었다. 남색 두건을 쓴 남자 직원이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여직원 둘은 요리 재료의 준비 및 계산과 손님 접대, 설거지 등의 나머지 일을 돌아가며 하는 듯했다. 준수는 두툼한 흰색 컵에 물을 따르려다가 또 하나의 쪽지에 쓰인 메시지에 눈길이 멈췄다.

‘영업 중 스태프는 손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세 명의 직원은 심지어 그들끼리도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하나의 시계를 완성하는 시침과 분침, 초침처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물 흐르듯 움직이고 있었다. 침묵 수행 중인 수도원의 사제나 산속 깊은 절, 스님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덕분에 손님들은 오직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눌린 탓인지 일행을 지어 온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비로소 이 식당이 일반적인 다른 식당들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가 준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생이 왜 굳이 이런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자고 했던 것인지의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문득 동생에게 있었던 일련의 변화들을 떠올렸다. 동생은 자신의 말대로 은행을 그만두었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남겨두지 못한 셈이었다. 그리고 10년 간 일한 퇴직금을 모두 털어 넣어 동네에 조그만 카페를 하나 열었다. 가장 큰 투자는 ‘라마르조꼬’ 와 ‘매저 로버’ 였다.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에스프레소 머신과 커피 그라인더였다. 하지만 그가 머신에 관심을 둔 이유는 기계 자체에 있지 않았다. 동생이 생각하기에 한 잔의 커피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무엇보다도 생두 자체였다. 어느 날 동생이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형, 혹시 떼루와라고 들어본 적 있어?”

“떼루와?”

“원두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누구에 의해 길러졌는지 같은 것들을 말해주는 일종의 이력 같은 거야. 요즘 미국의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업체들은 더는 경매로 커피 원두를 구매하지 않아. 대신 산지 농장이나 협동조합들 찾아다니면서 직거래를 하지. 생두가 가진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게 그들의 가장 강력한 차별화의 원천이라는 것도.”

실제로 동생이 회사를 그만둔 후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곳은 커피 원산지를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이미 동생의 커피 내리는 기술이 나름의 경지에 오른 후의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생은 전국 곳곳의 커피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로스팅 기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맛의 차이는 로스팅이나 드립 같은 과정에서 나는 것 아닐까?”

동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로스팅은 결코 신비한 일이 아니야. 없는 맛을 창조하는 게 아니란 거지. 그래서 생두가 가장 중요한 거야. 손맛에서 오는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재료만큼 크진 않아. 커피 하는 사람은 오직 커피로 말하면 돼.”

반면 동생은 인테리어와 같은 커피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심했다. 예를 들어 간판은 이전 가게의 가게 명만 떼어내고 그대로 두었다. 건물 내벽은 대형 마트의 천정처럼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게 둔 채, 알음알음 미술을 하는 친구들을 수소문해

기증받은 그림들을 걸었다.

“내추럴이 컨셉이야.”

오픈 첫날, 준수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고 동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그의 앞에 놓였다.

음식은 예상대로 평범했다. 잘 지은 밥 위에 놓인 고소한 양념의 소고기, 그리고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크고 싱싱한 달걀 한 알, 그것이 전부였다. 함께 놓인 미소 된장 역시 특별한 맛은 없었다. 나무로 된 수저와 젓가락 역시 여느 일식집처럼 정갈할 뿐이었다.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안내판의 설명대로 반숙 달걀을 비비지 않고 조심스럽게 골고루 펼쳐 놓았다.

평소 같으면 시간에 쫓기거나 혹은 누군가의 수다에 맞장구치느라 허겁지겁 먹었을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수도사의 기도만큼은 아니더라도, 음식을 뜨고 씹는 과정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고 따라서 느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먹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거나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먹는 것의 즐거움이 무언지를 생각해볼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곳이 동생의 그 가게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식당이 ‘요리’라는 본질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 친절이나 인테리어 같은 외적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버렸듯이 동생도 같은 생각으로 카페를 시작한 셈이었다. 동생이 거의 모든 인테리어들을 철저히 기존의 가게의 것으로 재활용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오픈 첫날 카페를 나오면서 준수는 동생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그는 동생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찾았던 ‘좋은 커피’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커피가 뭐라고 생각해?”

“좋은 음식이지. 훌륭한 요리이고.”

동생은 좋은 음식, 그 한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미처 지키지 못했다.

 

 

4.

 

“의사가 뭐래?”

준수는 동생의 시선을 피하며 말없이 그 옆에 앉았다. 동생은 바로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역시, 그렇구나.”

두 사람은 그렇게 불길한 예감을 말없이 현실로 받아들였다. 준수는 무심코 물고 있던 담배를 꺼내 구두 뒷발로 비벼 껐다.

“형도 담배 좀 줄여.”

준수는 대답 대신 아직 담배가 남아 있는 케이스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입구 모서리에 맞은 담뱃갑이 꽁초가 무성한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준수는 그걸 다시 주워 담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회사는?”

“내일 사표를 내려고.”

“그래. 뭐 형이라면 많이 생각해봤을 테니까.”

“야 인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 그럼 형한테 중요한 건 뭐야?”

동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동생은 어쩌면 자신이 살아 있을 날이 길어야 반년이라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준수는 화가 났다.

“일도 회사도 다시 시작하면 돼. 하지만.”

준수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생은 모든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보이는 회색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따라 안개가 짙게 낀 병원 밖의 풍경은 더할 수 없이 스산했다.

“있지, 형. 나 어릴 적에 그런 적이 있었어.”

그새 동생의 얼굴은 야위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픈 환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밤새 커피를 볶다가 아침 일찍 가게를 들른 자신을 쳐다보던, 피곤하지만 생기 넘치던 동생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살던 곳에 안개가 유독 많았잖아. 심할 때는 10미터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제로 그랬다.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마을은 일교차가 심한 새벽이면 길 건넛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안개가 피어오르곤 했다.

“그러면 나는 반대쪽 마을을 향해 달려가곤 했어. 왠지 그러면 안갯속에 완전히 숨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면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어 보였다는 거야.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면 이제는 내가 뛰기 시작했던 그곳이 안개로 가득 덮여 있곤 했지. 그래서 왔던 곳으로 달려가면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그게 참 화가 났었는데.”

동생이 그 말을 하고 준수를 바라보았다. 안갯속을 달리는 동생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졌다.

“한참 후에야 알았지. 안개는 솜과 다르다는 걸. 물론 정말로 안개가 진한 곳이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산다는 게 언제나 그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인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 하지만 열심히 뛰어가면 모호한 환경들이 걷히고 비로소 그 주위를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지. 문제는 내가 달려온 그곳 역시 안갯속에 묻혀 버릴 수 있다는 거야. 초심을 잃어버린달까.”

그 말을 마친 동생은 힘이 드는지 잠시 숨을 골랐다. 작은 숨소리가 안갯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 주변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거지. 나는 말이야.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뿐 아니라 커피 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함께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어. 내가 커피 가게를 시작한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야. 내가 좋은 커피를 뽑는 그 순간의 기쁨만큼이나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순 없을까? 그런 고민이 은행을 나와 이 일을 시작하게 했던 거야. 형도 그런거지? 그래서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려고 도전하는 거지?” 동생의 숨이 조금 가빠오는 게 느껴졌다. 준수는 말없이 동생을 휠체어에 태웠다. 동생의 몸이 솜처럼, 아니 안개처럼 가볍다고 생각했다.

“형, 혹시 그 집 가봤어?”

“어디?”

준수는 애써 짧게 답했다. 곧 목이 멜 것 같아서였다.

“지구당.”

“어제 다녀왔어.”

“그랬구나. 언제 한 번 같이 가보려고 했는데. 거기 가면 말이야.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 그래서 참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아. 내가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카페를 하다가 힘이 들 때면 종종 찾아가서 새 힘을 얻어 나오곤 했어.”

준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동생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 치료받고 나아지면 그땐 같이 한 번 가자.”

준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반드시 그래야지 하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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