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로 브랜드 바이탈리티를 만드는 로얄코펜하겐
브랜드 역사 속 트렌드 발자취를 따르다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남기령  고유주소 시즌2 / Vol.18 브랜드와 트렌드 (2010년 12월 발행)

만약 당신이 덴마크인을 만나 “덴마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을 세 가지만 꼽아 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선택할까? 대표적인 복지국가이자 안데르센과 같은 걸출한 작가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뱅앤울룹슨Bang & Olufsen, 프리츠한센Fritz Hansen, 레고LEGO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브랜드들의 모국이기도 한 덴마크. 그중에서도 특히 덴마크인에게 덴마크 왕실royal family과 같은 자부심으로 기억되는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요업窯業 브랜드인 로얄코펜하겐일 것이다. 로얄코펜하겐은 벌써 2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브랜드의 ‘바이탈리티vitality’를 유지해 왔다. 영어에서 바이탈리티는 생명, 활력, 활기, 생기, 지속력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그런 만큼 ‘브랜드 바이탈리티’라는 단어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다. 마케팅 서적들은 이를 자주 ‘브랜드 활력’이라고 해석하는데, 여기서는 브랜드 바이탈리티라는 원어를 그대로 살리려 한다. 중의적이지만 로얄코펜하겐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트렌드로 두 가지 브랜드 바이탈리티(브랜드의 생명, 동시에 브랜드의 활력)를 만들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 위함이다. 로얄코펜하겐을 통해 트렌드와 오랜 전통을 가진 브랜드 간에 어떤 교류가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당신도 트렌드를 다루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브랜드의 적(enemy)은 지루함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아니다. 그것은 생에 대한 권태다.”

우리에게는 《군주론》으로 유명한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최고로 공포스러운 대상은 다름아닌 권태였다고 한다. 의외다. 매일 가난과 걱정,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이게 웬 배부른 소린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추측하자면 마키아벨리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어떤 일에 시들해지고 지루해하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싫증, 지루함만 느껴진다면 누가 의욕과 즐거움,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결국 생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드는 지루함은 스스로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아닐 수 없다.

 

브랜드에게도 지루함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스스로 지루한 것도 문제지만 소비자의 지루함은 더 큰 문제다. 브랜드가 한번 잘 구축되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사랑해 주고, 끊임없이 수익이 발생하고 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흘러도 브랜드가 지루해지지 않고 한결같이 세련되고 멋진 이미지의 상징이 되어 준다면?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 속의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아라비안나이트》 속 세헤라자데(Scheherazade)가 되어 천일야화, 즉 매일 밤 ‘새롭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런칭과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브랜드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브랜드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만큼 그렇지 못한 것에 곧잘 싫증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 노엘 캐퍼러 역시 《뉴패러다임 브랜드 매니지먼트》에서 “시간의 대부분이 브랜드 노화를 만들어 낸다. 브랜드는 더 이상 그 시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자신의 내부 에너지를 잃는다. 브랜드의 재활성화는 이런 브랜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항상 기업들은 ‘오늘의 트렌드’를 찾으려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그래서 브랜드에 활력을 줄 만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해서다. 그래서인지 지금으로선 트렌드 사회학이나 리서치가 대부분 기업 활동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트렌드가 무엇이던가. 최근《파리를 떠난 마카롱》으로 주목 받고 있는 사회학자 기욤 에르네(Guillaume Erner, 그 역시 브랜드 런칭에 참여하는 사회학자다)는 트렌드를 ‘사람들의 욕망이 한 곳으로 집결되는 (희한한) 현상’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욕망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갖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 즉 지루하지 않음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는 브랜드가 곧 트렌디한, 트렌드를 잘 활용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브랜드들은 지루함이라는 가장 무서운 적과 싸우기 위해 트렌드라는 양날의 검을 찾아 헤맨다.

 

235년 된 브랜드와 트렌드

10년이 채 되지 않은 브랜드들도 재활성화를 고민하는데 하물며 235년 된 브랜드는 어떻겠는가. 로얄코펜하겐은 오랫동안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왔다. 로얄코펜하겐의 전통은 태생부터 덴마크 왕실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서 비롯된 강점으로 로얄코펜하겐은 덴마크 내에서 다른 브랜드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상징적 가치를 얻게 되었다.

 

시작부터 전통성이 담보되어 있던 브랜드. 여전히 입헌 군주국으로 다른 유럽 왕실에 비해 국민들의 높은 지지도를 얻고 있는 덴마크 왕실의 힘은 오랜 기간 로얄코펜하겐의 브랜드 파워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한국 로얄코펜하겐 남기령 대표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남기령(이하 ‘남’)  많은 소비자들이 로얄코펜하겐을 두 가지 관점, 즉 핸드 메이드, 핸드 페인팅으로 제작하는 장인(craftsman)의 정통(master)과 덴마크의 역사와 왕실과 연관된 전통(history)으로 기억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브랜드가 영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너무 예부터 지켜 오던 이런 것들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브랜드가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고객을 위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통과 전통도 중요하지만 새로움과 트렌드를 고려할 때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변화가 어렵다. 기존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크고 배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

모든 명품, 그중에서도 시장을 지배하는 명품은 세 가지의 명품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유니타스브랜드 Vol.3 p18 참고). 바로 정통과 전통, 그리고 트렌드다. 그러나 남 대표의 고민처럼 오랜 전통은 트렌드와 함께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바로 흡수하는 트렌드가 단순히 반짝하는 유행으로 전락하거나, 누구나 다 하는 흔한 방법으로 구사될 경우 오랫동안 쌓아 온 전통마저 해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 브랜드의 노화를 막으려다 브랜드가 가진 소중한 자산을 파괴하게 되는 격이다.

 

고민은 많았다지만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 로얄코펜하겐은 트렌드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때부터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위기 때의 해결책이나 성장 기회가 있을 때 적절한 도구로 잘 활용해 왔다. 그렇기에 이 브랜드의 역사(통시적 고찰)와 지역적 차이(공시적 고찰)를 살펴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브랜드가 어떻게 트렌드를 나름의 방법으로 소화해 낼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로얄코펜하겐은 브랜드 역사가 길기 때문에 시대마다 다른 트렌드와 그 영향을 한 브랜드를 통해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기에 소비의 관점에서 한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현 시대의 세계적인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볼 수도 있다. 따라서 두 가지 모두를 살펴보고 이를 종합해 트렌드가 어떻게 브랜드의 바이탈리티를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자기, 트렌드의 중심에 서다

그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것, 욕망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 페이지의 <그림 4>는 로얄코펜하겐이라는 브랜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과 덴마크의 역사적 사건과 로얄코펜하겐의 역사,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것들을 모아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역사적인 사실도 중요하지만 트렌드와 브랜드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시대상이 사람들에게 어떤 욕망을 일으켰을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유럽인들에게 *자기(porcelain)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기를 만드는 기술은 본래 중국인들만의 비밀이었다. 유럽인들은 13세기 초에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에 중국 자기를 가져와 소개하면서 처음 자기라는 것을 접했다. 그러나 자기는아무리 많은 수요가 있어도 중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귀한 것이었다. 14세기 즈음 원나라에서 청화백자 등을 대량 생산하여 유럽 등으로 수출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부족했던지 17세기에 들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가짜 중국 자기들도 만들어졌다고 한다(자기를 유럽 자체에서 생산해 보려고 했으나 그때까지 누구도 자기를 만드는 비밀을 풀지 못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중국 자기를 수집하는 고급 취미인 시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풍 혹은 중국 취미라는 뜻)가 유행했는데 이는 중국적인 예술 스타일로 의미가 확대되어 당시 유럽의 바로크나 로코코 양식과 결합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때마침 영국의 귀족 자제들이 유럽을 오랜 기간 가정교사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공부하는 그랜드 투어도 유행했다. 자기는 이런 귀족들의 이동을 따라 더 빨리 유럽 전역으로 전파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몇 세기에 걸쳐 자기로 상징되는 귀족 문화, 럭셔리, 고급 문화에 대한 욕망이 유럽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증폭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왜 이런 욕망이 증폭되었는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유럽 사회 전반에 귀족 문화를 소비하고자 하는 트렌드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자기가 마침 이 트렌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자기의 근원지인 중국의 왕실 문화 때문이었다. 비단과 자기는 특별한 원료와 기술이 필요한 고급품이었기에 중국에서도 왕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중국 왕실의 호화스런 문화가 곧 절대 권력을 가진 다른 유럽의 왕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물론 미적인 아름다움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나 러시아의 대제 예카테리나 2세도 대단한 중국 도자기 수집광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실의 관심은 트렌드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일종의 트렌드리더 혹은 트렌드세터의 역할을 한 것이다. 기욤 에르네와 같은 트렌드 사회학자들은 트렌드가 이들의 취향을 모방하고 확산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덴마크에서도 프란츠 하인리히 뮐러가 드디어 자기의 생산에 성공했고, 로얄코펜하겐이 만들어져 이 트렌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1. 트렌드가 만든 브랜드 생명(vitality)

로얄코펜하겐 고객들이 우리 브랜드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제품 이미지가 바로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 라인이다. 이 디자인이나 기술이 처음부터 독창적인 우리만의 것은 아니었다. 기술은 중국과 독일이 먼저고, 디자인의 경우는 18세기에 많이 쓰여지던 패턴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해서 접시에 전사(轉寫, 전사지에 그린 잉크를 평면에 그대로 옮기는 기술)가 가능해지자 비슷한 제품을 만들던 다른 경쟁 브랜드들은 대부분 그 기술로 옮겨 갔다. 그리고 대량 생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 편이 더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 독일의 마이센, 헝가리의 헤렌드 정도가 핸드페인팅을 고집했고, 우리는 블루 플루티드 라인을 주력 상품으로 지켜 냈다. 그 이유는 로얄코펜하겐이 그동안 주장해 온 장인 정신(craftsmanship)과 고급 문화를 반영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모두 이 속에 녹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당시 평범했던 디자인마저 로얄코펜하겐만의 상징으로 변했다. 이제는 디자인의 경우 몇몇 패턴에 대한 상표권 등록도 마친 상태다. 이런 고집들이 뚜렷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왔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로얄코펜하겐이 처음부터 전 세계적으로 지금처럼 고급문화의 상징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덴마크 왕실의 지원으로 모국에서는 그 상징성을 인정받았을 테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중국과 페르시아 같은 도자기 강국이 있었고, 유럽 자기로는 독일의 마이센이 최초였으며 프랑스의 세브르 역시 왕실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에, 세계적으로 고급 문화의 상징이자 명품 브랜드로서의 동일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 같은 로얄코펜하겐이 만들어졌을까? 그 이면에는 쉽사리 편리하고 쉬운 기술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뒤 필요한 것을 지켜 낸 고집이 있었다.

 

대중적인데다가 비교적 긴 시간이 증명해 낸 트렌드가 있다면 이를 파악하기는 쉬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소비자에게 비슷한 것을 제공해서 서로 구별이 안 되는 브랜드들이 이런 트렌드를 중심에 두고 많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미래에 어떤 브랜드가 될 것인지 결정하고 ‘고집할 만한 것’을 고집하는 일은 아무 브랜드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트렌드 뒤에는 또다른 트렌드가 생겨나고 사람들의 관심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철저한 계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로얄코펜하겐은 유럽 전역에서 한 시대를 살아낸 메가 트렌드 속에서 브랜드의 미래를 보았고,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 시대의 트렌드는 브랜드가 구축 단계였을 때 미래의 로얄코펜하겐만의 아이덴티티를 찾게 도와준, 일종의 ‘오래된 미래’이자 ‘브랜드 바이탈리티(생명)’였던 셈이다.

 

 

2. 트렌드가 만든 브랜드 활력(vitality)

 앞서 트렌드가 브랜드의 생명이었다면, 활력은 어떨까? 이야기의 서두에 언급된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브랜드의 재활성화를 위한 바이탈리티 말이다.

 

19세기는 로얄코펜하겐 제품이 진화하고 성장하는 시기였다.’ 이것은 로얄코펜하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디자이너 아놀드 크로그(Arnold Krog)가 영입된 후 작업한 White Half Lace 라인에 대한 설명의 첫머리다. 19세기는 로얄코펜하겐의 역사상 가장 큰 위기이자 기회의 시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있고 난 후 유럽의 절대 왕정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덴마크도 그 영향을 받아 1849년 결국 왕정이 끝나고 입헌군주제(왕실은 존재하나 통치하지 않는다)가 시작되었다. 왕실의 지지를 받던 로얄코펜하겐으로선 동요하는 국민의 감정과 이에 따라 움직이는 새로운 욕망은 위기였을 것이다. 게다가 입헌군주제가 되면서 해외에서 자기를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자기 생산자를 지정했던 법이 철폐됨에 따라 로얄코펜하겐의 독점적 입지도 좁아졌다. 더군다나 이미 70년 이상 보호받으며 성장하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제품으로 한결같이 표현되는 것도 지루해질 무렵이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놀드 크로그는 순수 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디자이너였는데 1885년 로얄코펜하겐의 총감독으로 영입되면서 한 가지 미션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전통을 재해석하고 이를 제일 잘 반영하는 블루 플루티드 라인의 재런칭이었다. 그가 디자인한 새로운 라인들은 모두 로얄코펜하겐의 전통에 기반을 둔 디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의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것인데 브랜드가 탄생한 약 100년 전에 비해 화려함을 줄이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귀족 중심의 계급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나고 이것이 혁명을 기반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평등한 새 시대에 맞는 수수하고 합리적인 것, 그런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19세기 중반까지 불던 *범스칸디나비아주의(Pan-Scandinavism)의 적지 않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아놀드 크로그는 이에 발맞추어 전통은 지키되 이전처럼 왕실의 화려함을 연상시키기보다는 단순함을 통한 다른 차원의 고급스러움을 제품으로 표현해 냈다(<그림 5> 참고).

 

또한 로얄코펜하겐은 귀족 위주의 자기 소비를 대다수 국민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스트리트 레벨(street level)의 샵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물론 질을 떨어뜨리고, 가격을 디스카운트해서 매출을 신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왕실에 갇혀 있던 자기를 소비자에게 더 가깝게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자기의 전시에도 힘을 쏟아 왕실과 구분된 고급스러운 문화로서의 로얄코펜하겐을 많이 알렸다.

 

만약 아놀드 크로그가 로얄코펜하겐의 전통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의 디자인 트렌드만을 따라 움직였다면 어땠을까? 제품을 통해 외부로 보여지는 것이 많은 브랜드의 경우 트렌드를 적용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 브랜드다운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더라도 우선은) 유행하는 디자인’을 선택하자는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트렌드가 양날의 검이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트렌드의 한쪽 날로 고루한 적들을 헤치고 전진하는 동안, 반대편 날에 자신이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로얄코펜하겐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트렌드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문화를 만드는 형태로 트렌드를 현명하게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브랜드에 신선한 활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가장 최근에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바로 2000년, 디자인 학과 학생이던 카렌 크젤가드-라슨(Karen Kjældgård-Larsen)이 디자인한 블루 플루티드 메가(Blue Fluted Mega) 라인 이야기다.


 

            

 

2000년은 우리 브랜드가 설립된 지 225주년이 되던 해였다. 큰 행사가 덴마크 본사에서 열렸는데 그때 디자인 공모전도 함께 진행되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카렌의 디자인이 대상을 받아 제품으로 개발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블루 플루티드 메가 라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라인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친구가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전통적인 블루 플루티드 라인의 디자인을 아주 크게 확대해 패턴을 만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사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재해석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는 것이다. 이 라인은 상품으로 제작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로얄코펜하겐의 톱 셀링(top selling)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고객들이 어떤 로얄코펜하겐을 원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전통과 트렌드를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같은 시대, 다른 트렌드의 발생과 순환

로얄코펜하겐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변화가 필요한 위기의 순간(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귀족 문화에 대한 사상의 변화, 독점이 가능하던 법이 바뀐 것, 현대에는 브랜드 이미지의 노후 등)마다 트렌드를 적절하게 흡수하고 반영함으로써(아놀드 크로그 등의 디자인 컨설턴트 영입, 스트리트 레벨의 샵 오픈,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한 디자인 트렌드의 흡수 등) 브랜드의 바이탈리티를 살려 왔다. 그런데 이러한 브랜드의 트렌드 활용이 공시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전 세계에 같은 시간에 동일한 고객 반응으로 이어질까? 그것은 아닌 듯하다.

 

 

현재 신상품이 개발 되면 지사들 중에서도
아시아와 유럽 팀이 괸장히 다른 결정을 한다.
 
 
로얄코펜하겐은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의 성향이나 니즈가 비슷한 편인가?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지만 똑같지는 않은 것 같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은 이미 로얄코펜하겐이 소개된 지 2세기가 훌쩍 지난 셈이다. 그렇다 보니 (특히 덴마크의 경우에) 집에 로얄코펜하겐이 없다거나, 아니면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 부자라서 로얄코펜하겐을 사 모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워낙 오래되다 보니 할머니 때부터 선물을 받아서라도 한 세트는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는 할머니 때부터 봐 오던 오래된 접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전통’이 가지는 본래 가치가 상실될 수도 있다. 동양권보다 더 브랜드 이미지가 고루해지고 소비자들이 지루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신상품이 개발 되면 지사들 중에서도 아시아와 유럽 팀이 굉장히 다른 결정을 한다.


 

 

‘다른 결정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욕구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 반응과 톱 셀링이 다르므로 유통에 차이를 둔다는 의미다. 현재 유럽 쪽에서는 스칸디나비아 문화를 적극 반영한 신제품 라인이 오히려 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라인들은 사람들이 로얄코펜하겐을 떠올렸을 때 흔히 생각하는 푸른빛의 자기들보다는 모던하고 심플하다. 그들의 자연친화적이고 실용적이며 담백한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게 트렌드를 반영하여 변형시킨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아직도 고전미가 있는 블루 플루티드 라인이 제일 반응이 좋다. 아직은 유럽에 비해 로얄코펜하겐이 제대로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거에 쌓아 둔 유럽의 전통적 상징에 대한 소비가 구입의 큰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나도 실패를 통해서 이를 배운 적이 있다. 스칸디나비아 트렌드가 반영된 신제품들을 많이 들여 왔는데 생각보다 성과가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역별로 지금과는 또 다른 트렌드가 한 브랜드 내에서도 돌고 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정말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는 시장은 거울 속에 들어 있는 시장에 불과한 것 같다. 극히 일부만 보고, 단편적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모습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취향은 시장의 그것과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브랜더의 취향만 믿으면 안 된다. 그래서 실패 이후에는 시장에서 소비자를 접하고 있는 매장 매니저들과 미팅을 자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어떤 욕망이 있는지 큰 그림을 잡아 가고 있다.

 

그렇다면 본사에서도 이 같이 다른 아시아의 트렌드를 인지하고 있나?
그렇다. 이미 아시아 시장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한국, 대만이 가장 큰 소비 국가다. 이제는 아시아 쪽 제품 개발 미팅은 따로 하려고 하는 정도다. 전통에 대한 연결 고리는 절대 끊지 않겠지만 아시아의 문화나 생활양식의 변화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트렌드들은 적극 반영하려 하고 있다.
오랜 역사가 있지만 같은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 재활성화의 시기도 지역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역사적 사건들(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 등)이 그 근방 사람들의 극적인 욕망 변화를 이끌어 냈으나 아시아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 만큼 일부 트렌드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트렌드를 고객이 유행(fashion)처럼 소비하고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네트워크의 발달로 그 변화의 속도는 과거에 비해 매우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여행 자유화로 인해 생활양식과 관계없이 다른 국가에서 발견한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려는 욕망 또한 크게 증가하리라는 예측은 데오도르 레빗 교수가 이미 한 바 있다. 현재까지는 한 가지 트렌드도 지역에 따라 시기가 다를 뿐 유럽에서 아시아로, 혹은 반대로 순환되는 경우도 많기에 큰 시각으로 정세를 살펴야 하겠다.


 

 

 

Trend, ‘Creating moments’ for the future
여러 가지 시도를 해서인지 고객들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있다. 한국만 해도 예전에는 주 고객층이 50대 중반 이후였는데 최근에는 30대 초반 고객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어 주 고객층 평균 연령도 30~40대로 내려왔다. 그리고 의외겠지만 남자 고객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브랜드가 더 젊은 고객들을 맞고 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고객을 만나고 있다는 것은 브랜드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항상 미래의 소비자에게 매력적이어야 한다.” 설사 브랜드의 타깃 고객층이 높다 하더라도 젊은 고객과의 접촉을 잃지 않는 것, 그래서 항상 미래의 소비자에게조차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캐퍼러 교수의 주장이다. 나이 든 고객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선택하는 브랜드조차 노화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 젊은 것, 다수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관심 거리다. 브랜드가 트렌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로얄코펜하겐의 평균 고객층이 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브랜드가 예전보다 더 젊은 고객들, 미래의 고객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은 전통에 묻혀 노화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그저 브랜드의 전통을 존중(respect)하기만 하는 것과 이를 활용해 브랜드를 발전(cultivate)시키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해를 끼칠까봐, 혹은 아직 과거의 영광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브랜드 노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브랜드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창조하는, 즉 시대에 맞는 제안을 고객에게 할 수 있어야 트렌드를 지혜롭게 활용했다 할 것이다.

 

남 - ‘Creating moments’는 2005년에 로얄코펜하겐의 새로운 슬로건이 되었다. 매 순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요소는 잃지 않되, 그것을 가지고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변형하고 응용하겠다는 의미다. 브랜드는 ‘제품’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브랜드는 새로운 가치나 문화를 함께 전달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훌륭한 제품 못지 않게 훌륭한 (원래 주문화에 가까우나 영역을 넓혀) 식문화까지 알리고 정착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로얄코펜하겐은 그릇 파는 회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된다. 그렇게 끝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마케팅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로얄코펜하겐은 트렌드를 활용해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할 수 있었고, 또 시기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트렌드(소비자들의 욕망이 집결되는 곳)를 주시함으로써 브랜드 노화를 막고 브랜드 활력을 찾고 있다.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에는 브랜드의 한 순간을 만드는 일이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브랜드의 역사가 되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되고, 결국 브랜드의 미래가 될 것이다.
 

 


 

 

*자기
도자기는 크게 토기, 석기, 도기, 자기의 네 종류로 구분되는데 자기는 고령토로 그릇을 빚은 다음, 1300 ℃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이며 도자기 중 질적으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그릇과 달리 희고 단단하며 가볍고 두드렸을 때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범스칸디나비아주의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북유럽 3국(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영향을 주고받았다.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국(小國)에 속하는 이 나라들의 국가 안보와 나라의 안정을 위해 이런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이후 낭만적인 민족주의가 생겨남에 따라 다소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연환경이 워낙 비슷한 탓에 흡사한 라이프스타일이 나타나 현재까지도 크게 ‘스칸디나비아 문화’로 분류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디자인 트렌드가 이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외형적으로 심플하고 수수한 것이 특징이다.
 

 

로얄코펜하겐의 전통
 
 
로얄코펜하겐은 자기(瓷器, porcelain) 그릇이 무척이나 귀하던 시절인 1775년에 덴마크의 줄리안 마리(Juliane Marie)여왕과 왕실의 지원을 받아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왕실 도자기 공장(The Royal Chartered Porcelain Factory)’이라는 이름이었다. 본래 이곳에서 만들어진 그릇들은 모두 왕실에서 사용되거나 왕실의 증정품(혹은 답례품)으로만 사용되었다. 시작부터 왕실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었기에 로얄코펜하겐은 로고나 이름뿐만 아니라(<그림 1> 참고) 브랜드 역사 곳곳에서 덴마크의 역사와 귀족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 한 예로, 현재까지도 주문 제작 형태로만 판매되고 있는 로얄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 라인은 18세기 덴마크 왕인 크리스티앙 7세가 당시 대단한 위세를 떨치던 러시아의 대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선물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플로라 다니카’는 원래 덴마크 고유의 식물 도감인데 이를 요한 크리스토프 베이어라는 페인터가 그릇에 하나씩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1790년에 시작해 1803년까지 무려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러나 막상 선물을 받아야 할 예카테리나 2세는 1799년에 사망했기에 무려 1,802점에 달하는 첫 번째 플로라 다니카는 덴마크 왕실의 소유가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덴마크에서는 2004년 왕세자 프레드릭이 결혼할 때도 플로라 다니카의 디너 세트를 웨딩 선물로 선택했고, 그 외에도 왕실의 경사, 생일, 외교 사절의 방문과 같은 특별한 덴마크의 역사에 로얄코펜하겐을 빠뜨리지 않고 함께 등장시켰다.

 

브랜드 바이탈리티와 재활성화
브랜드 바이탈리티와 재활성화에 대한 장 노엘 캐퍼러의 견해는 브랜드에 트렌드를 활용하여 지루함을 없애고 활력을 주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먼저 당신의 브랜드가 노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가 제시한 몇 가지 조건을 토대로 작성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 보자.
1. 당신의 브랜드는 시장 변화에 대한 예상 없이 기존 고객의 요구만 따르고 있는가?
2. 당신의 브랜드는 새로운 수요를 포착할 준비 없이 역사적인 제품을 통해서만 브랜드를 생각하는가?
3. 당신의 브랜드는 브랜드 일관성의 과도한 견지로 브랜드의 확장을 제한하고 있는가?
4. 당신의 브랜드에 대해서 ‘적당히 만족했다’고 대답하는 고객이 늘고 있지는 않은가?
5. 당신의 브랜드는 고객을 놀라게 하려는 욕망이 부족하지 않은가?
6. 마지막으로, 당신의 브랜드는 혹시 브랜드의 사명을 잊지 않았나?
브랜드 바이탈리티를 생각한다면 제발 당신의 모든 대답이 No이길 바란다. 만약 Yes가 하나라도 있다면 제품적인 측면에서 브랜드에 바이탈리티를 주기 위해 해야 하는 3가지 이니셔티브를 주목해 보자. 특히 이 이니셔티브는 로얄코펜하겐의 사례와 거의 일치하는 부분이 많으니 비교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1. 브랜드는 계속 ‘원형(prototype)’을 현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니베아의 니베아 소프트 런칭, 라코스테의 정기적인 폴로셔츠 향상, 로얄코펜하겐의 주력 상품의 재해석 라인 런칭)
2. 브랜드는 또한 그 원형을 재창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니베아의 스프레이형 로션 개발, 라코스테의 라이크라 셔츠 개발, 로얄코펜하겐의 스칸디나비아 문화가 반영된 라인 개발)
3. 브랜드는 미래를 지배할 소비자의 트렌드와 행동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제 숙제다. 위의 브랜드들은, 그리고 당신의 브랜드는 미래를 위해 어떤 트렌드를 흡수하고 반영해야 할까?)
참고 : 뉴패러다임 브랜드 매니지먼트 (장 노엘 캐퍼러, 김앤김북스)

 

Creating Moments! 브랜드를 경험으로, 경험을 트렌드로, 트렌드를 영원으로, 글로벌 로얄코펜하겐

로얄코펜하겐을 취재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다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토르 거리, 로얄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에 위치한 ‘더 로얄 카페(the Royal Cafe)’를 방문한 뒤 이 브랜드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카페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차, 커피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담아내는 모든 식기가 로얄코펜하겐이다.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이 고가의 식기들을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데,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로얄코펜하겐의 제품을 둘러본 뒤라면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로얄코펜하겐 본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페가 아니다. 본래 이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로얄코펜하겐이 운영하는 티라운지(tea lounge)가 있었는데 2007년 이 건물을 레노베이션 하면서 티라운지가 사라지고 그해 4월에 1층 매장과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더 로얄 카페가 생겼다고 한다. 경영은 다른 전문가들이 하고 있지만 그들의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자리잡고 있고, 그들의 식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로얄코펜하겐은 더 로얄 카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성공적으로 상생하고 있다. 물론 이곳은 로얄코펜하겐의 식기뿐만 아니라 홀메가르(Holmegaard), 크바드라(Kvadrat),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프리츠 한센(Fritz Hansen)과 같은 덴마크의 상징적인 브랜드들이 제공한 특별한 설비와 부품들로 채워졌다(덴마크다움을 고객들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 이 카페의 목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성공을 거둔 뒤 더 로얄 카페는 최근 도쿄 긴자에 두 번째 지점을 오픈했다.
그렇다면 덴마크 이외의 지역에서 로얄코펜하겐은 어떨까? 도쿄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에 있는 로얄코펜하겐 티라운지는 일본 로얄코펜하겐(지사)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일본 로얄코펜하겐은 아시아 지사들 중에서도 매출이나 인지도 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아시아 지역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도자기와 왕실 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아 이곳에서 브랜드를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그 외 싱가포르 다카시마야 백화점에도 로얄코펜하겐의 티라운지가 있다).
브랜드 ‘빚은’을 소개하면서 최근 비즈니스 트렌드로 나타나는 ‘카페라이제이션(p65 참고)’을 간략히 소개한 바 있다. 사실 이 추세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여러 브랜드의 리더들이 트렌드를 이야기하며 지적했던 부분이다. 남 대표 역시 “해외 출장 때 이곳 저곳을 많이 둘러보는데 최근 복합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을 눈여겨 보고 있다. 우리도 그릇을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들에게 식문화를 포함한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카페를 연다든가 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다”라고 말했다. 삶에서 결핍된 휴식을 얻고자 하는 욕구 속에 로얄코펜하겐이라는 브랜드를 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모든 브랜드들이 카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얄코펜하겐은 카페가 자신의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일뿐만 아니라 식문화의 전파라는 비전과도 맞았기 때문에 브랜드에 맞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카페라이제이션이라는 트렌드만 눈여겨 본다면 오히려 고객이 자신의 브랜드에 대해 좋은 경험이 아니라 나쁜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브랜드가 트렌드를 활용해 소비자와의 색다른 접촉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 접촉 면적을 넓히는 것은 브랜드 바이탈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긍정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브랜드가 고객을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로얄코펜하겐의 새로운 슬로건처럼 브랜드가 (의미 있는) 순간을 창조하는(Creating Moments)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순간을 창조했다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그 ‘순간’을 어떻게 ‘영원’으로 가져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영원은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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