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불변의 법칙, 마케팅은 불편한 법칙
자연과학과 브랜드의 교차로에서 발견한 브랜딩 성공 패턴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22(하) Vol.22(하) 인문학적 브랜드 (2012년 01월 발행)

왜 인간은 브랜드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떤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태양의 흑점이 폭발할 때 많이 팔리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브랜드는 인간의 창조론과 진화론 중에 어떤 이론을 지지할까? 인지도와 충성도는 뇌에서 어떤 질량을 가졌을까? 빛의 속도가 빠를까 아니면 구매 결정 속도가 빠를까? 그리고 물리학의 법칙을 이용해서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우주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또 만들 수 있을까? 질문에 의해서 질문을 받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면 이런 질문을 받는(상상할 수 있는) 브랜드는 단지 상품과 상표는 아닐 것이라 상상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받는 브랜드에 관한 새로운 융합지식이 필요하다.

법칙을 깨는 법칙

 

‘법칙’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다. 예를 들어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뉴턴은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인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 법칙은 사과와 지구의 관계를 넘어 지구와 태양의 관계까지 설명하는 법칙으로까지 발전했다(물론 후대에 이 법칙이 갖는 몇몇 오류가 제기되긴 했지만 여전히 효력이 있다).

 

그래서 수학자들에게 법칙이라는 개념은 ‘정답’을 찾는 합리적 공식이고, 물리학자들에게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볼 수 있는 밑그림과도 같다. 반면 경영학에서 ‘법칙’이란 단어는 미사여구로 사용된다. ‘대박 법칙’, ‘런칭의 성공 법칙’, ‘불변의 성공 법칙’… 문제는 그 누구도 이런 법칙이라 불리는 것들을 확신하지 않으며, 그것을 법칙이라 말한 사람조차 완벽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누군가 그 법칙을 따랐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법칙을 만든 사람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지탄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암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초부터 마케팅에는 법칙이 없으며 그 단어는 광고 카피 수준의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마케팅 법칙만 지켜도 성공할 수 있다면 왜 대기업은 풍부한 자본과 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불변의 법칙을 적용해 성공하지 못할까?

 

“이번 가을 마케팅 전략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 3, 5, 9, 11번 항목을 적용했기에 성공률 76.4%를 예상합니다.” 지구상에 수천만 개의 브랜드가 있지만 마케팅 법칙 그대로 해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놀랍고 안타깝게도 그 반대가 더 많다.

 

마케팅 법칙이 있다고 믿는 사람(해당 도서의 저자를 포함해)들은 법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것에서 실패의 이유를 찾는다. 그런 책의 저자들을 보면 마케팅을 이론으로만 공부한 사람들이 많고 현장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직접 운영해 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의 주장대로 제대로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책의 사례처럼 제대로 적용해서 성공했다는 브랜드는 왜 계속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법칙을 똑같이 적용했는데 성공과 실패로 결과가 나뉘는 것일까? 만약 누군가 진짜 마케팅 성공의 법칙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직접 브랜드를 운영하지 왜 남들에게 그 비밀을 알려 줄까?

 

이렇게 말꼬리를 잡아채는 질문을 하면서 마케팅 법칙들을 전면적으로 무시하거나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확인도 할 수 없는 성공 사례들과 수년 전에나 들어맞던 성공 사례를 끼워 맞춰 만든 법칙이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칙’이라며 호도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마케팅에서는 불변의 법칙이 없을까? 마켓(market, 시장)에서는 법칙이 없다. 오히려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시장의 1등 브랜드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깨는 변칙만이 진정한 법칙이다. 그렇게 법칙을 깨는 변칙을 경영에서는 ‘혁신’이라고 부른다. 누군가 시장에서 나름의 법칙을 만들면 그것을 반드시 깨야만 또 다른 성공이 보장되기에 정확히 말하면 불변의 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다.

 

브랜드와 마케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자연과학자들과 비슷하다. 이들의 주장은 사례가 없으면 말하지 못하고 검증하지 못하면 그저 궤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브랜딩 법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물리학자들처럼 오직 우연으로 진리를 발견하고 비슷한 패턴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즉, 애플을 연구하면서 애플만 가지고 다른 브랜드가 따라야 할 브랜드 십계명을 골라 순위를 매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란 의미다. 애플의 성공은 애플에게만 적용되는(재현 불가능한) 조건과 환경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애플의 성공 법칙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한 브랜드 성공 방정식이라며 다른 브랜드에 이를 대입하려는 것은 엉뚱하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고 또 다시 애플과 같은 성공 사례가 필요하다며 그런 브랜드를 기다리는 것은 마치 어느 천문학자가 75년에 한 번 오는 핼리혜성을 살아생전에 두 번 보겠다며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성공했다고 말하는 브랜드 사례를 찾아서 애플 사례와 병렬로 놓고 비슷한 요소를 모아 법칙 1, 2, 3, 4처럼 일반화시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성공했던(혹은 성공하고 있는) 브랜드들의 성공 수식은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조작해서 기업의 IR자료와 홍보 자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스스로 만든 성공 공식으로 계속 성공하는 브랜드도 극소수이기 때문에 수식을 만들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마케팅 성공 법칙은 성공한 브랜드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브랜드를 살펴보면 ‘브랜드가 브랜드 되는 불변의 패턴(pattern, 일정한 형태나 양식 또는 유형)’이 있긴 하다. 이는 법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귀납적 공통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이 브랜딩 불변의 패턴을 물리학 박사처럼 단순화시켜서 수식(세상과 우주의 공식을 찾는 학문은 물리학과 수학의 영역이 탁월하다)으로 표현해 보고 이 프레임이 혹시 다른 브랜드에도 적용되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브랜드와 인문학이 아닌 브랜드와 자연과학의 교차점에서 브랜드를 살펴보고자 한다. 브랜드와 자연과학의 융합은 어쩌면 비약이 있는 작위적인 실험이 되겠지만, 분명 브랜드를 포함한 이 모든 것은 우주를 움직이는 만유萬有의 법칙 안에서 작동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실험이다.

 

법칙을 이해하는 또 다른 법칙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 속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에 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 케플러의 행성 운동의 세 가지 법칙, 그리고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이 그가 서 있던 거인의 어깨에 해당한다. 어떻게 이 세 가지 지식이 떨어지는 사과와 융합되어 통찰을 일으켰는지는 모르지만, 뉴턴은 우리에게 알파벳 네 글자와 아라비아숫자 두 개를 조합한 로고 타입(?)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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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칙으로 인해 세상은 무섭게(?) 변해 갔다.

 

뉴턴은 만유인력에 관한 논문의 제목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라고 붙였다. ‘자연철학.’ 자연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것도 수학으로.

 

1687년에 발표된 만유인력의 법칙은 218년이 지난 1905년 9월에 아인슈타인의 논문 「물체의 관성은 그 물체의 에너지 함량에 따라 달라지는가?」의 밑그림이 되었다. 비록 이 두 개의 법칙은 상호 모순되는 점을 가지고 있는, 완벽한 우주의 법칙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세상을 바라보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우리는 이 두 공식을 통해 보이는 것만 믿는 인간의 근시안을 교정 받았다. 시공간이 하나라는 아인슈타인의 교정 시력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수식인 E=mc2을 보여 주었지 않았는가.

 

 

아인슈타인의 E=mc2도 수많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멀리 내다본 통찰이었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에서 E, 에너지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의 발견이다. 그는 전기와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 에너지의 실체를 밝혀 냈고 에너지의 총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증명했다. m(질량)은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가 물질은 형태가 변하나 존재 자체가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 ‘질량보존의 법칙’을 근거로 한다. 빛의 속도를 말하는 c(광속)는 제임스 맥스웰(James Maxwell, 1831~1879)이 발견했다. 그는 빛은 물리적 실체이며 절대로 변하지 않는 값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전기력과 자기장이 모두 공간에서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파동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듯 결국 거인들의 증명과 그 증거를 따라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는 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통찰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빛에 관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공식이 논의될 무렵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원자핵을 발견했고 원소의 인공 전환을 연구, 중성자 중수소의 존재를 예상했다. 그 후 제임스 채드윅(James Chadwick, 1891~1974)은 핵 속의 중성자를 발견한다. 그로 인해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아인슈타인의 수식은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폭탄 제조의 공식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처럼 세상은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가공할 만한 무기로 사용하려고 했다. 세상이 무섭게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은 이것으로도 증명된 셈이다.

 

오토 한(Otto Hahn, 1879~1968)과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는 초우라늄 원소 탐색에 처음으로 착수했다. 1938년 오토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 1902~1980)이 중성자로 충격을 준 우라늄에서 바륨을 얻자 이를 핵분열이라 이름을 붙였다. 드디어 질량이 속도의 터널을 지나면 거대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수식에서 폭탄의 공식을 개발했고 독일은 비밀리에 원자폭탄 제조에 착수했다. 미국과 영국도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원자탄으로 바꾸는 연구를 시작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그렇게 개발된 원자폭탄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6분에 일본에 투하되었다. 중성자가 핵을 비틀어지게 만들고 중성자가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전 과정이 100만분의 1초 안에 끝이 나면서 질량이 엄청난 에너지로 바뀐다. 드디어 전 인류가 E=mc2이란 수식의 위용을 보게 된다. 물론 이 공식은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데도 사용됐다. 바로 세실리아 페인(Cecilia Payne, 1900~1979)이 태양이 E=mc2으로 일어나는 거대한 핵융합 에너지를 낸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이 공식이 전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주의 신비와 그 기원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그런 공식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상대성 이론, 그리고 원자탄과 태양의 핵융합까지 이토록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지식은 다른 지식의 영향을 받으며 완성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와 태양이 빛나는 이유가 계절과 시간의 단순 작동 때문이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공식과 서로 다르지만 만나게 되는 교차점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이 진리를 통해 원자탄을 만들 수도 있고 원자력 발전소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떨어지게 만든 원리가 중요하다(애플의 아이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애플 제품 너머로 본 세상이 중요하다).

 

그런데 만약 실험도 하지 않고 E=mc2이라는 개념을 만든 아인슈타인에게 브랜드 법칙이 담긴 수식을 부탁하면 어떤 조언을 할까? 아인슈타인은 항상 “셀 수 있다고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라고 모두 셀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놀랍게도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논리력이 아니라 상상력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사실과 이론이 맞지 않으면 사실을 바꾸라”고까지 조언했다. 또한 공식화에 대해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일단 문제가 공식화되면 풀기는 쉽다. 가장 어려운 것은 문제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현시대의 문제점은 현시대 사람이 풀지 못한다”라는 비관적 견해도 가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조언을 정리한다면 ‘먼저 이론을 세운 후 그것이 현재 눈에 보이지 않고 통용되는 사실과 다르다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진실이 있을 테니 우선 논리에 맞는다면 공식화한 후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라’일 것이다. 단, 그것은 현재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 또한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있다.”

 

아마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인문학과 브랜드’ 특집에 웬 ‘자연과학과 브랜드’일까라고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법칙에 관한 교차점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시장을 상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이제 사과밭이 아니라 우주로 나가 보자.

 

보이지 않는 증거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BC 310~BC 230)다. 1,600여 년이 흐른 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음을 믿기 시작한 것은 겨우 50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만약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가 초속(시속이 아니다) 30㎞라면 믿을 수 있을까? 자전 속도가 초속 463m라면 믿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튕겨 나가지 않을까? 그렇게 빨리 회전하는데 말이다. 이 구절을 읽는 동안 지구는 벌써 150㎞ 이상을 움직였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지구와 우주,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태양이 짧아지고 가을이 되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는 상식이었지만 뉴턴은 그 순간 만유인력의 수식을 보았다. 시장에도 만유를 움직이는 그 어떤 수식이 있다는 긍정적 상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애플의 상품들과 애플에 열광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해 보자. 10만 대도 안 팔릴 것이라고 전망되던 아이폰은 한국에서 현재 2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똑같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애플의 이런 성공의 이유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이 통찰이든 예언이든 간에 우리는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발견한 수식으로 만들어진 애플 원자탄들이 터지는 것을 보았다. 인문학과 기술이 서로를 잡아당긴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떤 것이 만들어질까? 인문학과 브랜드도 서로를 잡아당긴다면 결국 어떤 수식이 만들어질까? 브랜드와 소비자 또한 인력(때로는 척력) 관계에 있다면 어떤 수식이 만들어질까? 그에 앞서, 가능한 이야기일까?

 

먼저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들어 보자. “우리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우리는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관점에서 제품은 직관적이고 사용하기에 쉽고 즐거워야 한다. 사용자가 제품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사용자에게 다가와야 한다. 기술과 인문학, 이 두 가지를 결합한 것이 애플이 일련의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노하우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 느낌, 혹은 행동 중에 어디서 나온 말일까, 하는 의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비유, 은유, 혹은 상징이거나 아니면 느낌만 있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었고 뭐라고 딱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상품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딱히 그것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지만 왠지 스티브 잡스가 언급한 그 교차점이 애플의 제품에 녹아든 느낌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인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광범위하고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단지 다른 뭔가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으로밖에는 해석할 방도가 없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그 자리에서 수식을 만든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도 인문학 위에 떨어지는 기술을 보고 수식을 발견해 아이폰을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수식을 만들고 오펜하이머가 그것을 이용해 원자탄을 만든 것처럼 스티브 잡스가 발견한 교차점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을 누군가 이해하고 또 다른 현상을 이해하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어쩌면 그 누군가는 벌써 잡스가 교차점에서 떨어뜨린 그 사과를 주웠을지도 모르겠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꿈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뛰어넘고 또 한 번 지구와 우주를 흔들만한 원자탄 브랜드를 만들지도 모른다.

 

애플의 수식

인문학과 기술이 서로 교감하면 애플이 나올까? 황당한 질문이지만 뉴턴이 살고 있던 그 시대에도 만물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말은 그야말로 제정신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을 살피면서 서로 끌어당김이 전혀 없음을 보고 뉴턴을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질량을 가진 것들 간의 인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사람과 사람 혹은 정신에 관해서는 강력한 인력引力과 인력人力이 존재했다.

 

‘왜 남녀가 한눈에 반해서 사랑을 하게 될까?’ 우리는 아직도 종족 번식과 영혼의 교제인 고전적 만인인력萬人引力인 ‘사랑’이 뭔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짝지은 예정된 운명 때문이라고 믿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구에 있는 포유류들의 보편적 발정 성향 때문이라고도 믿는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 조건에 따른 호르몬 분비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전생의 인연을 이유로 꼽는다.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한 질문도 논리와 통계보다는 믿음과 운명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특정 브랜드에 마음이 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여기서 자신이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비싼 것을 사는 사람들은 제외한다)? 애플의 아이폰처럼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집단에 몰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사람을 양성자, 브랜드를 전자,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을 중성자 등으로 정리해 보면 뭔가 수식이 나오지 않을까?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수식으로 발견되었을 때 그것이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가 죽은 지 수백 년이 지나고도 망원경과 우주선이 발명된 후에야 비로소 증명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애플의 성공 이유에 대한 명확한 이유와 그가 말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이 가진 힘이 증명되려면 뉴턴의 공식이 그랬듯이 많은 시간과 브랜드 사례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브랜드와 사람 사이의 ‘생산과 소비’를 떠난 ‘관계와 협력’이라는 인력引力의 존재다.

 

뉴턴의 만유인력을 알게 되었으므로 ‘사과는 왜 익으면 떨어질까?’라고 질문하면 ‘익으면’이라는 단어 때문에 순식간에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중력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다가 잘 붙어있다가 익어야 떨어지는 이유는 분명 익어감과 동시에 열매와 꼭지 부분이 열매의 무게(중력)를 견디지 못해서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떨어진 이유에는 ‘중력’이라는 엄청난 수식과 그것을 감추고 있는 ‘말라 버린 사과꼭지’가 겹쳐서 그 사과에 존재하고 있다. 그 사과에는 상식, 자연의 법칙, 그리고 우주의 법칙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브랜드 구매 과정에도 사과가 떨어지는 여러 가지 이유처럼 ‘필요와 욕망’, ‘자기를 위한 소비와 타인을 위한 소비’ 그리고 ‘소비와 관계’라는 이중적 그리고 상충적인 부분이 겹쳐 있다. 이런 요소들은 절묘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구분할 수 없고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이런 복잡한 변화를 마케팅에서는 굳이 설명하려고 한다.

 

마케팅은 소비자를 가운데 두고 경쟁자와 겨루는 일종의 ‘경쟁’이다. 따라서 법칙이라고 불리는 것을 살펴보면 주로 니치 마켓을 분석하라, 강점을 강화하라, 나의 강점을 경쟁사의 약점에 집중하라, 선점하라, 최초가 돼라 등이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면 어떻게 될까? 경쟁 상황 자체가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과 컨셉을 망친다.

 

그 외 《초우량 기업의 조건》에 나온 기업과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온 기업들의 다수가 업적비만 세우고 쓸쓸히 사라졌다. 혹시 닌텐도의 혁신을 기억하는가? 두바이의 기적도 아득한 기억 너머에 있다. 그들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우리의 마케팅 영웅이었다.

 

그런데 애플이 보여 준 10년의 브랜딩은 마케팅 법칙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애플의 아이팟이 처음부터 환영 받은 것은 아니었다. 누가 노래를 천 곡씩 들고 다닐 생각을 했을까? 누가 컴퓨터 같은 휴대폰을 원했을까? 누가 아이팟보다 큰 아이패드를 원했을까? 애플에서 나온 제품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모두가 어처구니없어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경쟁자가 없는 곳에서 ‘iKing’처럼 자신을 그대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보통 애플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와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식을 주장한다. 그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식으로 예측할 수 있는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수식으로 제2의 애플을 만들 수 있는가다.

 

E=mc2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 되어 버린 수식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가지고 원자탄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폭탄 제조에 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애플의 성공 수식이 나온다고 해도 핵심은 그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정교한 기술이다.

 

B αI Y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것이다. 이는 애플의 성공 수식이라기보다는 앞서 잠시 언급한, 여러 훌륭한 브랜드들의 연구에서 귀납적으로 발견한 공통점을 수식화한 것이다. 물론 이 공식도 아인슈타인의 공식처럼 모든 시장에서 브랜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에는 완벽하지 않고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브랜딩 패턴의 설명이 가능하다. 강력한 B(브랜드)값은 Y(You, 경쟁자와의 유사성)가 작을수록, I(Identity, 나다움)가 클수록 커진다(비례한다). 이 수식은 유니타스브랜드에서 계속 주장한 것처럼 ‘자기다움을 통한 남과 다름’을 구현할 때 브랜드(상표)가 브랜드 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브랜딩 수식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순서는 전혀 다르다. 마케팅에서는 ‘경쟁’의 차원에서 남보다 좋게, 싸고, 빠르게, 그리고 도드라지기 위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수시로 변형(변장)한다.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시장이 어디로 가는지에 더 관심이 크다. 타깃으로 정한 소비자의 구매율과 선호도, 그리고 경쟁사의 상품을 더 많이 신경 썼다. 땅따먹기 식의 마켓쉐어 확보라는 목표는 ‘규모의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결국 생존을 위한 몸집 부풀리기로 커지기만 하면서 차별성이 사라지고 만다. 결국 ‘나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과 다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차별화를 추구한다. 남과 다름은 처음에는 차별화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이끌어 가지만 다른 경쟁자에 의해서 비슷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마케팅에서 말하는 선도자의 법칙에 의해 1등 브랜드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브랜드가 그렇게 되듯 마켓쉐어 1등이라는 초신성 브랜드가 되어 거대한 시장을 남기고 사라진다. 무조건 남과 다르게 되었다고 자기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 시장, 그리고 경쟁자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비슷해질 뿐이지 결코 자기다움을 완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브랜드가 자기다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방법은 트렌드가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모터사이클 회사가 할리데이비슨처럼 만들어 팔 생각을 할까? 두 번째 방법은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철학이 브랜드의 디자인, 품질, 그리고 컨셉에 녹아들어 그 안에서 일관성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브랜드 스스로가 자기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해서 자기다움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분명하게 알고 다른 브랜드와의 미세한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소비자와 경쟁자뿐이다. 소비자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과 직관으로, 경쟁자는 카피할 수 없음을 경험하며 그 차이를 깨닫는다. 우리는 특정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브랜드를 구매(당긴다)하거나 묘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그 브랜드에 들어가서 보수를 받지 않더라도 일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필자는 허먼 밀러Herman Miller라는 가구 브랜드가 그렇게 당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공포 영화에서 아이들이 떨어뜨린 곰 인형을 주우려다 악당에 잡히는 일이 종종 있다.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는 봉제인형일 뿐인데 왜 아이들은 낡고 떨어진 그 인형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길까? 영화가 아니라 주변을 살펴보면 어린아이들이 무생물인 봉제 곰 인형과 특별한 교감과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수시로 로봇으로 변신한다. 얼핏 보기에 이런 것이 가을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처럼 대수롭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뭔가 모를 인력이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신기한 이런 현상이 초등학생이 된다고 퇴화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음을 어른들의 브랜드 구매행위에서 볼 수 있다. 브랜드를 과시하려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애인 심지어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을 보면 인간이 보이는 이런 특이 현상이 분명 존재함에도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을 수가 없다.

 

자기다움이 있는 브랜드

 

브랜드를 만드는(창조하는) 사람이 자기다움을 어떻게 브랜드에 투영시킬 수 있을까? 자신과 똑같이 만들면 된다. 이 말은 자신의 모습대로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로 변환된 자기답게 만들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발견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다음 질문에 정직한 답을 하면 된다. “당신은 왜 빵을 만드나요?”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든다고 말을 하면 자기다움이 아니라 자기 생존을 위함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빵을 만드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 대답 안에서 자기다움이 충만한 빵 브랜드를 볼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서전에서 그는 왜 애플을 경영했는지 이렇게 대답했다. “동기가 충만한 사람들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에 내 열정을 쏟아 왔다. 그밖에 다른 것은 모두 2순위였다.”

 

그럼 다시 빵 가게 주인에게 왜 빵을 만드는지 물어 보도록 하겠다.

 

“건강하고 정직한 음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위대한 빵을 만드는 영속적인 빵 가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이 빵에는 방부제가 들어갔을까? 이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밀가루를 사용할까? 여기서 먹는 빵은 어떤 맛일까? 이런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이것을 먹고 만족한 고객의 반응은 어떨까? 빵을 만드는 사람과 빵을 먹는 사람의 목적이 일치되면서 다른 빵 가게와 다른, 즉, 자기다움이 녹아든 빵 브랜드가 탄생할 것이다. 브랜드 창조자가 자기다움을 브랜드의 자기다움으로 녹여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왜 브랜드를 창조했는지를 정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이유가 돈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의 동기와 같기에 그들처럼 돈이 되는 빵만 만들어서 다른 빵집들과 닮아 가게 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만든 브랜드가 어떻게 되고 무엇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지가 명확해야만 자기다움이 충만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질문의 강도를 한 단계 더 올려 보자.

 

“내일 적자가 나서 망해도 오늘 이 브랜드를 하던 대로 계속할 것인가?”

 

일반적인 사람이 이 질문을 받으면 바로 마음속에서 ‘바보야! 내일 적자가 나면 이 일을 못하잖아?’라며 비웃는다. 이것은 대답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확인을 위한 질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돈 이외의 목적을 찾아야만 경쟁 시장의 공동 함몰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브랜드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자기다움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브랜드를 통해서 자기를 찾는 것이 바로 브랜드 인문학이다. 자기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아는 사람, 자기가 마침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자기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확신에 찬 사람… 이런 사람을 열거할 때 우리 마음에는 어떤 경영자가 떠오르는가?

 

 

인문학은 소비자와 경쟁자를 알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알기 위한 학문이다.
인문학은 감동을 유발하려는 기술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 그곳에서 돈이 되는 뭔가를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려서는 안 된다. 그곳은 자기를 찾는 곳이며 전혀 다른 전략, 기회, 그리고 혁신이 나오는 곳이다. 인문학은 소비자와 경쟁자를 알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알기 위한 학문이다. 인문학은 감동을 유발하려는 기술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자신의 브랜드가 돈보다 가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학문이다. 따라서 브랜드 인문학이란 자신을 알아 가며 더 자기답게 만드는 태도를 말한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서 작가와 마지막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만약 독자가 브랜드를 창조 혹은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이 죽은 후에도 당신의 브랜드에서 ‘그 무엇’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서 어쩌면 ‘그 무엇’이 바로 자기다움일 수 있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말하는 소비자와 시장에 있지 않고 바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그 깨달음에 있다. 마케팅의 법칙이라고 명명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몇몇 성공 브랜드들이 보인 비슷한 패턴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브랜딩이 아닌 마케팅) 성공 패턴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성공은 상대방의 성공 요인을 파괴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남을 보아서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할 법칙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 안에 있다. 그 법칙을 브랜딩 원칙이라고 말한다.

 

‘Think Different!’

 

마케팅 법칙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브랜딩 원칙처럼 들리는가?

 

브랜딩의 핵융합 법칙

최근 유니타스브랜드는 인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그리고 인류학에서 보다 특별한 브랜드 융합 코드를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 원자핵공학 박사인 이재영 한동대 교수가 물리학의 법칙과 브랜드 법칙의 심벌이란 단어의 이종결합을 시도했다. 인터뷰는 아인슈타인이 즐겨 사용한 방법으로써 실험이 아닌 상상력으로만 가설을 세우고자 했다. 이번 ‘브랜드와 인문학’을 마치고 ‘브랜드와 자연과학’을 열기 위한 일종에 ‘위험한 융합‘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니타스브랜드(이하 UB) /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심벌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모으다’입니다. 좋은 브랜드일수록 그들의 심벌 안에 많은 연상 이미지와 키워드를 가지고 있죠. 일종의 함축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입니다. 브랜드 쪽에서는 이처럼 질량은 없지만 이미지가 많을수록 무거워진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미지가 많을수록 느낌의 질량이 높아진다는 개념이죠. 질량이 많이 나가면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시간이 왜곡된다고 봅니다. 마치 ‘현재로서는 이 브랜드가 내게 필요 없지만 미래에는 꼭 필요할 거야’ ‘지금은 내게 필요 없지만 왠지 당장 사야 할 것 같아!’ 이런 식의 미래 충동구매를 일으킵니다. 교수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리학에서는 이런 관점을 어떤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재영 교수 /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대한 해석은 질량이 클수록 시공간에 대한 왜곡을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질량이 없는 곳에서는 시공간이 평탄하여 어떠한 쏠림이나 경향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질량을 갖는 존재가 등장하면 시공간이 휘어지게 되고, 그 주변의 운동은 모두 영향을 받습니다. 일례로 태양계의 공전 역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도 설명이 되지만, 마치 평평한 천에 무거운 볼링 공을 놓으면 볼링 공 주변으로 천이 우묵해지고 그 주변에 동전을 굴리면 뱅뱅 도는 것과 같은 형식의 공전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이론은 수성 근처에서 빛이 휘어지는 것을 직접 관측함으로써 입증되었습니다. 빛은 직진하지만 공간이 휘어져 우리의 눈에 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상품의 이미지나 키워드가 강력하다면 이를 일종의 질량 개념으로 생각해 중력장에 적용해 본다면 분명 그 주변의 시공간이 왜곡되는 것이죠. 최근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다 보니 스티브 잡스가 화이트보드를 장악하고 설명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심각한 현실 왜곡장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서로 안 낚이려고 코를 쓰다듬거나 귀를 파는 등의 수신호를 보냈지만 결국은 거기에 넘어가고, 박수까지 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잡스가 나가고 나면 그들은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문제를 발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왜곡장은 바로 그 존재가 갖는 카리스마이거나 논리거나 일종의 중력장에서의 질량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비중 있게 다룬다는 말을 흔히 쓰는데, 비중이란 바로 질량이 크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리학에서는 힘이라는 것을 정의하여 세상에 일어나는 삼라만상의 현상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 힘에는 현재 네 개의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그리고 강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힘은 사실 장(field)의 휘어짐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장의 존재와 장의 휘어짐을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적 인식론이 장이론입니다. 그러므로 네가지의 힘에 모두 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모두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대통일장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입니다. 돌아가신 우리나라의 이휘소 박사는 이중에서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일하는 이론을 만들었고, 그의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은 안타까운 사연도 있답니다.

 

UB / 브랜드 쪽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법칙이 있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입니다. 브랜드는 관계 덩어리라고도 볼 수 있는데 만유인력이 관계에 관한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와 브랜드 간의 묘한 인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무겁고 충성도까지 높으면 그야말로 시장을 독점하는 힘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브랜드 만유인력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재영 교수 / 만유인력의 법칙은 사실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하늘의 달은 왜 안 떨어지는가, 하는 다소 모순적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사실 이 법칙을 알아낸 다음 뉴턴은 이를 절대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럽의 하늘에는 긴 꼬리를 가진 이상한 별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페스트pest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 시체 태우는 냄새와 연기가 자욱한 그야말로 성경의 종말을 연상하기에 아주 적절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법칙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발표 이후 모든 뒷감당을 하겠다는 당시 왕립천문대장의 격려와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천문대장의 이름은 핼리였고, 그 이상한 별은 오늘날도 가끔 찾아오는 핼리혜성입니다. 그는 왕실로부터 그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이 문제를 이미 풀어 놓았던 것이죠.

 

그의 만유인력 법칙은 두 개의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으로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합니다. 이 비례 관계의 계수, G는 중력상수로 우주를 지배하는 설계자가 결정한 것이 됩니다.

m1 m2
r2 F=G

 

이 방정식을 하늘의 별에 대하여 적용하면 다소 긴 계산을 해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케플러가 알아낸 타원 궤도운동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지구를 비롯한 위성들은 태양 주변을 타원 궤도로 도는 것이지요. 달도 지구 주변을 타원
궤도로 돌아야 합니다. 지구나 달의 경우는 거의 정원에 가까운 타원 궤도로 돕니다. 그러므로 지구와 달은 서로 상호작용 중에 있는 것입니다.

 

달의 입장에서는 지구가 자기 주변을 돌고 있다고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오랫동안 천동설을 지지하게 한 이유입니다. 지구에서 보면 모든 별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에 있는 사과는 어김 없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사과가 만드는 타원 궤도가 너무 짧아서 바로 지구와 충돌하는 것입니다. 사실 거의 수직하강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 사과에 비해 지구가 너무 커서 사과와 지구 사이의 거리는 거의 지구의 반경에 해당하게 되고, 지구의 질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변하지 않는 수를 모두 모으면 중력가속도g가 됩니다.

 

즉 9.8 ㎨.
m1 m2
r2 F=G GM =Mg 지구
R2지구

 

이렇게 보면 중력가속도는 지구에 어떤 물체가 접근하는 가속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질량과 무관하고 지구의 질량과 크기만의 함수입니다. 이런 관점을 브랜드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바로 중력가속도는 브랜드 파워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즉 가장 큰 중력가속도를 만들려면 바로 자신의 질량은 매우 크고, 자신의 크기는 매우 작아야 합니다.

 

g = GM지구
R2지구

 

불랙홀이 그것입니다. 이 경우 크기는 엄청 작으나 무게는 어머어마해서 모든 것을 잡아당기는 것이죠. 만일 이것을 브랜드 파워 즉 브랜드가 소비자를 잡아당기는 가속도로 정의한다면 말입니다.

 

g = GM브랜드의 고유 가치
R2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

 

결국 자신의 질량을 키우고 상대방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브랜딩 가속도를 키우는 방법입니다. 물론 중력상수 G를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이므로 시장 전체를 왜곡하는 독과점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UB / 저희는 박사님이 제안하는 공식과 다른 방향에서 공식이 그려집니다. 같은 맥락으로 중력가속도를 대신할 ‘브랜딩 가속도’ 공식은 어떨까요?

 

Mc MB
r2 FB=G FB :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인력
G : 브랜드와 소비자간의 인력상수
Mc : 고객의 (해당 브랜드에 대한 생각)질량
MB: 브랜드의(이미지 자산)질량 r2: 브랜드와 고객 간의 인력
GMB
r2 gB= gB : 브랜딩 가속도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1) G 즉,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인력상수는 일정한 값을 가질까? 브랜드마다 다르지 않을까?
2) r값을 측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인지도일까?
3) MB는 과연 모든 소비자에게 같은 값을 가질까?

 

일단 이번 인터뷰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이니까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마케팅에서는 소비자를 타깃이라고 부릅니다.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일종의 과녁이죠.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핵융합 박사님으로서 교수님의 시각에서는 브랜드가 전자인가요? 아니면 소비자가 전자인가요?

 

이재영 교수 / 원자 모델은 종종 많은 영감을 줍니다. 사실 사람들이 원자가 가운데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양의 전하를 띤 무거운 핵이 있고, 주변을 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태양계와 유사함에 많이 놀랐습니다. 주변의 전자는 태양계의 혹성들처럼 도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종의 파동으로 공간에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핵 주변을 춤추며 휘감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얼핏 보면 브랜드가 핵이고 소비자가 전자여서 브랜드 주위를 맴도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특정 브랜드에 매우 복종하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을 보면 그렇게도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브랜드가 전자이고, 소비자가 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브랜드가 핵이 만든 에너지 준위에 접근하여 존재함으로써 원자를 구성하는 것이지요. 핵과 전자 사이에는 일정한 에너지 준위가 있어서 그 준위에 전자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다른 원자와 상호작용을 일으킵니다. 만일 원자핵에서 멀리 떨어진 전자가 있다면 그 전자는 흥분한 상태입니다. 낮은 에너지 준위로 위치를 바꾸고자 하면 일정한 에너지를 방출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종류의 에너지 교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한 생각이 일천하여 지금 현재로서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다양한 브랜드가 소비자를 향해 접근하고 그 멤버가 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브랜드는 소비자 주변에서 춤추며 그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UB / 그렇다면 교수님이 보시기에 사람들, 특히 마니아가 많은 애플을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영 교수 / 저는 앞서 말씀드린 브랜드 가속도에서 분모에 해당하는 정신적 거리에 주목합니다. 애플은 제품을 넘어서 일종의 정신적 공동체를 형성한 상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과 이들 소비자 간의 마음의 거리는 매우 가깝습니다. 일종의 가족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가속도의 법칙을 생각하면 매우 큰 가속도를 갖는 것이지요. 애플이라는 브랜드는 이들 소비자에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가속도를 갖게 됩니다.

 

UB / 그렇다면 지구와 태양, 원자와 전자 그리고 브랜드와 사람 등 매우 복잡한 관계도 어쩌면 몇몇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은 이런 관계의 법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재영 교수 / 저는 자연과학도로서 제가 아는 자연과학의 법칙이 세상의 법칙에도 좋은 길잡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중력의 법칙이 있는데, 그러면 전 우주가 다 모여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제 인류가 간신히 알게 된 사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주의 팽창력과 만유인력이 현재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주가 팽창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빛나는 별들로 우리는 밤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밤이 되면 어두워지고 우리는 곤한 잠을 자게 됩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거리, 그런 거리를 생각해 보면 우주는 거의 무한한 진공에 외로운 존재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독한 존재들을 엮어서 우리는 가을 하늘을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고운 단풍잎을 보면서 감탄하게 됩니다. 단풍이 든 잎사귀는 지구와 중력으로 상호작용하는 중이고, 잎사귀 안에 있는 분자들은 이제 아름다운 붉은색을 내는 화학물질에 주도권을 내준 상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화학물질 안에는 원자핵과 전자가 알콩달콩하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죠. 우리는 단풍잎이 허공에 그리는 아름다운 궤적과 가을의 푸른 하늘과 붉은 잎의 보색 관계에 감탄할 것입니다. 그 감탄의 한가운데에 브랜드가 있겠지요.

 

결국 존재의 크기와 타자와의 거리, 그리고 그 상호작용하는 양식 이것이 물리학이고, 그런 관점은 사회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존재를 최대화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크기를 줄이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줄이면 없음 즉 무가 될 것입니다. 자아를 죽이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수행자에게는 이것이 좋을 것이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종교인들의 삶은 분명 역학적인 정당성을 갖는다고 봅니다.

 

UB / 교수님은 과학자로서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재영 교수 / 고유성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의 데모크리투스 이후로 원자론을 신봉하는 현대 과학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유성은 물질로 말하자면 원소에 해당합니다. 이 고유성을 혼합할 때 다양한 삼라만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어떤 현상도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일례로 잉크를 봅시다. 서구인들이 오래 사용하던 오징어 먹물이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잉크는 화학물질입니다. 고분자 화학물이지요.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먹물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바로 탄소라는 원소로 구성된 물질입니다. 원소는 변하지 않고 영속합니다. 탄소로 쓰여진 글씨는 천 년을 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가는 기업이 위대한 기업이라는 최근의 몇몇 책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위대함의 조건으로 장수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분명 원소적 성격, 즉 고유성을 지녔기에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개인으로 치면 자아가 될 것이고요, 제품으로 치면 아이덴티티가 되겠지요.

 

UB / 그러면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애플과 애플이 말하는 기술과 인문학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나요?

 

이재영 교수 / 저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을 키워 낸 실리콘밸리를 존경합니다. 학교 교육을 넘어선 교육을 하는 위대한 장소지요. 학원가에서 문제만 푸는 우리 아이들과 달리 잡스는 그곳에서 막 발전하는 전자산업의 전문가들과 함께 호흡하여 성장하게 되었지요. 그가 히피 문화에 빠지고, 당시에 유행하던 선불교에 심취한 점은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히피들 중에서도 조금 더 나간 히피였던 것 같습니다. 채식을 하므로 자기 몸에서는 냄새가 안 날 것이라면서 목욕을 잘 하지 않은 것 등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론적인 비현실적 인간인지 알 수 있지요. 그런 그가 대학을 자퇴하고 서예수업을 듣고 인도 여행을 다녀온 것은 일종의 인문학적 세례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도 뼛속까지 엔지니어의 피가 흐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애플에서 쫓겨나와 픽사에 갔을 때 그가 주력했던 것은 전문가만 쓸 수 있는 최고의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명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전략은 항상 그의 인생에 붙어 다니던 것이었으니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3차원의 컴퓨터 그래픽을 아무나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잡스의 지극히 사업적인 발상이 마침내 이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게 하고, 마침내 ‘토이스토리’로 공전의 히트를 치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났을 때 진정한 명품이 탄생하는 것을 체험했고, 이후 애플로 돌아온 그의 개발 방향을 결정한 큰 사건이 되었다고 봅니다.
 

 

스티브 잡스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이 만나야 소비자의 가슴을 뛰게 한다는 통찰력을 얻은 것이지요. 통찰력은 사람의 마음속 거문고(심금)를 울립니다. 스티브의 통찰력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산업계가 공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혜라고 봅니다.

 

핵융합 에너지, 브랜드

 

이재영 박사의 인터뷰 내용은 더 많지만 여기에는 일부만 실었다. 아마 그 모든 내용을 그대로 쓰게 되면 아티클의 주제가 ‘브랜드와 자연과학’이 아니라 ‘브랜드 연금술’로 넘어갈 것 같아서다. 스티브 잡스도 다음 세대는 ‘기술과 인문학’에서 ‘생물학과 인문학’으로 넘어간다고 말한 것처럼, 브랜드도 단순히 인문학이 아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브랜드는 인공적인 상품의 개념을 넘어서 자연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만났을 때 기자들이 만남이 어땠는지 질문했다. 아인슈타인은 “매우 흥미로웠고 우리는 서로 같은 것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들이 연구했던 것은 모두 인간과 기원에 관한 것이었다.

 

브랜드도 인간과 기원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고등 질문들이 뒤따른다. 왜 인간은 브랜드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떤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태양의 흑점이 폭발할 때 많이 팔리는 브랜드는 무엇일까? 브랜드는 인간의 창조론과 진화론 중에 어떤 이론을 지지할까? 인지도와 충성도는 뇌에서 어떤 질량을 가졌을까? 빛의 속도가 빠를까 아니면 구매 결정 속도가 빠를까? 그리고 물리학의 법칙을 이용해서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우주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또 만들 수 있을까? 질문에 의해서 질문을 받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면 이런 질문을 받는(상상할 수 있는) 브랜드는 단지 상품과 상표는 아닐 것이라 상상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받는 브랜드에 관한 새로운 융합지식이 필요하다.

 

이런 융합지식으로 최근에 ‘인문학’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왜 각광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문학과 브랜드가 융합되는지는 이제 ‘인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인문학과 브랜드가 조합을 맞춘다고 만족할 때가 아니다. 인문학 뒤에 또 거대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과학이다. 인문학이 브랜드의 개념에 대한 이해라고 한다면 자연과학은 브랜드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구조를 누군가 수식으로 정립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브랜드를 통해서 우주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의 질량과 브랜드의 질량

 

‘왜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땅에 떨어지지 않을까?’ 뉴턴의 만유인력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 결국 법칙을 찾아냈다.

 


‘광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뉴턴의 만유인력은 정말로 만유의 법칙일까?’ 아인슈타인도 이런 질문을 통해서 상대성 우주론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이후로도 초끈 이론을 비롯해 수많은 가설과 법칙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법칙을 듣고 있노라면 엄청난 지식의 크기에 압도당한 나머지 어쩐지 우리의 지식은 이내 초라해지고 만다. 하지만 그런 모든 우주의 법칙은 매우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 의문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왜 사람들은 이미 소유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더 사고 싶어 할까?”
“왜 어떤 브랜드는 그토록 강력한 구매욕을 생기게 할까? 무엇이 다른 브랜드는 고려할 여지조차 주지 않고 그 브랜드를 구매할 궁리만 하게 만들까?”
“왜 그토록 좋아하던 브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싫어지는 것일까?”
“전혀 살 생각이 없던 브랜드였는데 왜 갑자기 구매하고 싶어질까?”
“왜 사람들은 무엇엔가 골몰하거나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할 때면 ‘머리가 무겁다’고 말하는 것일까? 혹시 생각에도 질량이 있을까?”
“상징이 강한 브랜드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순간적인 에너지가 발생되거나 질량을 가지게 되어 (질량과 힘의 관계 때문에) 그 브랜드와 나 사이에 인력이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의미와 상징이 많은 브랜드들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질량’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브랜드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닐까? 나머지 브랜드들은 전자처럼 내 주변에 빙빙 돌고 있어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데 말이다.”
“특정 브랜드가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순간적으로 쪼개면 원자탄처럼 머리에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으로부터 파생된 뚱딴지 같은 질문이라 생각하겠지만 만유인력과 상대성 우주론을 만든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라면 이런 질문도 흥미롭게 받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구매한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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