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보는 세상과 눈을 감고 보는 세상, 두 세상을 가로지르는 좋은 담
Book II. Philosophy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엄정식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실 때의 나이와 비슷한 연배이신 엄정식 교수는 47년 동안 철학을 공부한 분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처럼 많은 철학 지식과 자료가 없는 것을 감안한다 해도, 엄정식 교수는 감히 소크라테스보다 더 많은 철학적 사유를 하신 분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인터뷰 중에 혹여, 엄정식 교수로부터 얄팍한 철학 지식으로 브랜드를 설명하려 한다는 책망을 당할까, 인터뷰를 준비하는 내내 불안했다. “브랜드나 제대로 알고 철학에 관한 질문을 하시죠!”라는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여, 준비한 여러 가지 질문들에 철학적 단어로 치장(?)하고 손질하면서 엄정식 교수를 기다렸다. “이 시점에서 악수 한번 합시다!” 엄정식 교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무려 네 번이나 악수를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어떻게 브랜드적 고민과 철학적 번뇌가 비슷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두 가지가 모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엄정식 교수는 경영에서 철학적 고뇌를 흉내 내고 있지만 진지한 태도에 대해서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엄정식 교수가 서강대학교 재직 때(현재 그는 명예교수다) 사람들이 왜 그를 ‘행복한 철학자’라고 불렀는지 백 번은 더 이해가 됐다. 47년 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시작한 연구의 결과들을 지금 브랜드는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내가 읽게 될 것을 그는 알았을까? “*너 자신을 알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든다면 소크라테스는 무슨 말을 했을까? 자신이 누구며, 어떤 소명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처럼,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소명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서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그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철학자인가, 아니면 경영자인가? 브랜더는 과연 누구인가?

눈을 감고 보는 세상
Q
최근 경영에서는 ‘브랜드 철학’이라는 주제가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시발점은 ‘차별화’를 만들기 위한 ‘포지셔닝(positioning)’을 생각하면서부터입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이른바, 포지셔닝 전략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한 브랜드가 나오면 그와 비슷한 컨셉의 브랜드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겨나 더 이상 ‘차별화’가 무의미해졌죠. 이때 경영자 혹은 브랜더들은 브랜드를 가치, 더 나아가 브랜드가 추구하는 혹은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러면서 ‘철학’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철학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대부분을 철학 연구를 하신 교수님께서는 과연, 철학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나는 누구인가?’ 너무나 짧은 질문이지만, 저는 이것이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제 인생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다닌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 또래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당시 대학의 학과를 정할 때, 의대나 상대, 아니면 경영대를 제 1 지망으로 했지만 저는 철학과를 지망했어요. 내가 누구인지 안 후에 무엇을 안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추억》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이 적합한지 스스로 알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분별하며, 또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는 바를 해냄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고, 그리고는 모르는 것을 삼감으로써 비난 받지 않고 살아가며 또 불운을 피하게 된다네.” 만약,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의사나 경영자가 된다면, 그것은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지 절대로 주체적인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유학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저는 ‘나’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철학을 선택했지만, 제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지요.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이 학문들의 화두가 다름 아닌 ‘*자아의 문제’라는 겁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보는 자아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바로 이 ‘자아’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위해 탐구하는 것이 철학, 더 나아가 인문학입니다.

 

자아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가 철학을 통해 얻은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인류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보이는 것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사랑, 배려, 이타심, 협력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간에게 언제나 중요한 화두이지 않았습니까. 브랜드도 최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결국 품질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보되거나, 혹은 경쟁을 통해 쉽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교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란 화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A
저는 이 세상을 두 개의 세상으로 구분해서 봅니다. 하나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과 다른 하나는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세상입니다.
 
먼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을 더 잘보기 위해 현미경을 만들고, 망원경을 만들지 않습니까. 이러한 과학의 시선을 통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이것을 통해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런데 성능이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라도 알퐁스 도데가 본 별과 윤동주가 마음에 품었던 별, 또 생텍쥐페리가 긁적이던 별을 볼 수 있을까요? 못 봅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이 말을 달리 표현해보면 ‘의미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종교가 나오고, 예술이 나오며, 윤리가 나오는 거지요. 자,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세상 중 어느 하나를 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겁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자살’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없지만,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지금 우리 시대는 시장경제가 가격과 가치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가치가 가격에 의해 판단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엄격하게 말해 가치와 가격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가격에 두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치 개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 거지요. 이러한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은 한계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앞서 질문하신 것처럼 상품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별, 그러니까 철학을 담기 시작한 겁니다.

 

 

 성능이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라도
알퐁스 도데가 본 별과윤동주가 마음에 품었던 별,
또 생텍쥐페리가 긁적이던 별을 볼 수 있을까요? 못 봅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에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Q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브랜더나 마케터, 혹은 디자이너들은 정성을 들여 만든 자신의 상품에 철학을 담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 지가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철학자들은 알퐁스 도데, 혹은 윤동주, 아니면 생텍쥐페리가 본 바로 그 별을 어떤 방법으로 보는지요.

 

A
저는 철학자들의 시각을 세 가지 단어로 정리합니다. ‘더 넓게, 더 깊게, 그리고 더 멀리 보는 시도’라고 말입니다.
 
먼저 넓게 본다는 게 뭐겠습니까? A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A만을 보는 게 아니라 가족관계나 친구관계와 같이 A를 지금의 모습으로 가능케 한 모든 여건까지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문화와 더불어 히스토리를 보는 거지요.
 
반면 깊게 본다는 것은 조금 다른 측면입니다. 구조 속에서 A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파도를 봅시다. 사람들은 파도가 바다인 줄 압니다. 그러니까 파도를 보면서 바다인줄 안다는 거지요. 그런데 실은 바다가 파도라는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 바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깊게 본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 ‘무엇의 나타남’인가,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멀리 본다는 것은 한마디로 예측을 말합니다. A를 둘러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내가 A를 만나 보니까 이러한 삶을 살아왔는데 그것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 라고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멀리 본다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넓게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을 ‘무엇의 부분’으로 본다는 것이며, 깊게 본다는 것은 ‘무엇의 나타남’으로 본다는 것인데, 결국 이것은 입체적인 시각인 거지요. 마지막으로 멀리 본다는 것은 ‘무엇을 예측’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결국 이 세 가지의 관점을 통해 어떤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 그러니까 의미의 세계에 완전히 침잠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들이 설사 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결국에는 그곳에서 남들이 절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적 사고의 힘입니다.

 

 

*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힌다. 아테네에서 수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플라톤 역시 그의 제자 중 한 명이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神殿) 기둥 중 하나에 새겨져 있다는 글귀가 바로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했으며,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무지(無知)를 아는 엄격한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고 여겨 이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추억》
그리스 역사가이자, 군인, 또한 정치가였던 크세노폰은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일찍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플라톤과는 동년배로 주로 군사, 철학 등에 관심을 가진 크세노폰은 고대에는 철학자로서, 또 이후에는 역사학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의 저작 중 《소크라테스의 추억》은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회상하며 쓴 작품으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그의 생각이 상당히 곁들여져 있다.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온갖 문제들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문답을 전개하였는가에 대한 내용을 회상과 전문을 통해 서술한 책으로 매우 산문적인 글이다.

 

 

* 자아의 문제
철학적으로 처음 자아를 자각하게 된 것은 ‘너 자신을 알라’를 가르친 소크라테스다. 그후 자아의 문제가 철학의 주제가 된 것은 인간의 주체성이 확립된 근대 이후의 일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며 ‘생각하는 나’ 자신을 정신이라 부른 데카르트를 비롯, 자아의 정신적 실체성을 부인한 흄, 이 두 대립적인 의견을 인식론의 관점에서 해결을 부여한 칸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자아’의 문제는 끊임없이 탐구되어 왔다. 철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중심 과제 역시 ‘자아의 개념’이다. 인문학에서는 탐구의 주체인 자아가 또한 탐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탐구의 결과가 객관적 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자아의 개념은 주로 인격적 차원에서 통용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인간을 개별화하여 그를 한 인격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그의 자아를 거론할 수 있게 된다.

 

 

*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과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세상
엄정식 교수는 《길을 묻는 철학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관점이 세상에 존재하겠지만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전체 세상을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과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세상으로 나눈다. 두 세계의 우열은 없으며 단지 우리가 중요하게 인지해야 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눈에 떴을 때 보이는 세상과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세상이 서로 어떠한 관계인지 그 의미의 중요성을 살피는 것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별
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천문학자들이 전하는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의미고, 다른 하나는 인문학자들이 찾아내는 주관적인 가치로서의 의미인데, 전자는 눈으로 보이는 별, 그 자체다. 하지만 후자에서 말하는 주관적 가치는 철학자의 이성의 눈으로 그것이 함축하는 도덕적 의미를 규명하거나 시인의 감성의 눈으로 그 존재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대상으로써의 별이다. 예를 들어 칸트의 경우 자연 현상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듯 인간의 심성에는 도덕률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별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였고, 알퐁스 도데는 단편소설 《별》에서 주인집 아가씨 스테파네트를 사랑하는 목동의 청순한 사랑과 순수하고 서정성 풍부한 그 감성을 별로 아름답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또한 윤동주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일제 암흑기라는 현실의 괴로움을 초월하게 해 주는 유일한 표상이며 자신이 바라는 세계의 투영으로 별을 노래하고 있으며, 반 고흐는 광기 어린 밤에 폭군처럼 군림한 별들의 횡포를 그의 캔버스에 그려내기도 한다.

 

 

경영과 철학과의 낮은 울타리
Q
철학은 끊임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사유(思惟)하게 하면서, 결국에는 의미의 세계를 보도록 눈을 뜨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러면 이제부터 경영이나 브랜드의 관점에서 이 철학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요, 앞에서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이쪽 분야에서는 철학을 궁극적으로 소위 브랜드의UBBrandNess라고 하는 ‘자기다움’을 완성시켜 주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이루어 나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명확한 기준이 철학이라는 거지요. 경영자나 브랜더가 바라보는 철학의 관점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철학이라는 말처럼 넓고, 다양하게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이 ‘철학’이라는 단어를 빌려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세 가지의 뜻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물리학, 심리학, 경영학처럼 학문으로서의 철학이에요. 이 때에는 소크라테스,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헤겔 등 흔히 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각각의 시대에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를 연구하며, 그것을 현재의 시대에 맞게 비판적 수용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주 써늘한 학문이지요. 그런데 학문이라 할지라도 다른 학문하고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어요.
 
바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을 동시에 한다는 거지요. 단순히 학문적인 영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의미’를 추구하게끔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두 번째 의미의 철학이 나옵니다. 바로, ‘구도자로서의 철학’이 그것입니다. 학문적 진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 영혼의 승화,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나 해탈 등을 생각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직접 고행(苦行)을 하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바로, 경영학에서 말하는 ‘철학’을 꼽을 수 있습니다. 흔히 ‘경영 철학이 부족하다’라는 말로 표현되죠. 그런데 이 ‘경영’이란 말의 본뜻을 제대로 알아야만 이때에 쓰이는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어요. 경영(經營)을 한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경을 영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경(經)’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경이란, 사서삼경(四書三經),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의 그 ‘경’과 같은 것입니다. 사서삼경은 유교의 기본 경전이고, 경국대전은 조선의 기본 법전이죠. 그러니, ‘경’이란 ‘기본’이 되는 것, 바로 ‘principle’을 말하는 것입니다. prin-ciple이 무엇이냐, 이게 바로 철학이죠. 그래서 경을 영한다는 것은, principle, 철학을 영하는 거예요.
 
결국 정리해보면 경영에서 말하는 철학이란, 그저 몇 개의 상품을 시쳇말로 팔아치울 수 있는 요령이나 전략이 아닌 principle을 실천(practice)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어요. 과연 기업들이 이 경영의 심오한 뜻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시행하고 있느냐 말이에요. 요즘 기업이 적극적으로 인문학과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잖아요, ‘진짜’ 인문학을 만나고 있느냐는 엄격하게 질문해봐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Q
‘진짜’ 인문학을 만나고 있느냐는 질문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다양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인문학 교육을 통해 보다 경쟁력 있고, 창의력이 높은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할지라도 인문학이 그러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보고(寶庫)라는 것은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쟁력을 UB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보니 인문학을 컨텐츠로 한 교육 시스템까지 구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A
사실, ‘교육’은 이 화두만 가지고도 수많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로 *Knight와 Warrior의 차이입니다. Warrior는 전투를 이기기 위해 훈련된 전사를 말합니다. 이들은 왜 전투를 하는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목표 달성을 위해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훈련 받은 사람이지요. 반면, Knight는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이 말해 주듯, 품격을 교육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목적을 제대로 알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기사의 품격과 자질을 교육받는 대신 전사로 훈련 받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도 훈련을 통해서 알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인문학을 배울 때 서양 철학에서 그 근원을 가지고 오는지 아십니까? 학문은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어요. 하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적인 학문이며, 다른 하나는 순전히 Knowledge for Knowledge’s sake, 그러니까 지혜를 탐구하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학문입니다. 전자는 대부분 동양의 철학들이 취하는 방식이지요. 이런 학문들은 ‘처세’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방법적인 것에 대해 얘기하지요. 공자의 이야기를 단순화시켜보면 인仁을 실현하고, 살아 있는 동안 좀 더 행복하게 살자는 것인데, 이것은 곧 삶의 처세에 관한 것이거든요.

 

중국 과학사를 연구한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d)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측량술과 같은 기술은 발달했으나 Knowledge for Knowledge’s sake 즉 지적 호기심을 탐구하는 학문 자체가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대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사람들이 홀로 사유하는 시간을 두면 극단적으로 반역과 같은 테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사람들을 목적에 맞게 모았다가 또 흩어졌다가로 훈련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철학이 발달할 수 없었던 거지요. 반면 서양 철학은 후자의 학문인 지혜를 탐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 철학이 던지는 질문들은 매우 추상적인 것들이죠. 왜냐하면, 그저 ‘알고싶기’ 때문이지 이것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나중의 문제거든요. 인문학의 시작 자체가 지혜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Warrior적인 훈련이 아니라 Knight적인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Q
매우 동의합니다. 저희도 ‘브랜드 교육’이라는 특집을 다루면서 ‘UB목적이 이끄는 브랜드’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저 무조건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브랜드가 지향하는 목적을 위해 교육하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되려 교수님께 묻고 싶습니다. 경영, 구체적으로는 브랜드는 인문학과의 접점을 대체, 어떻게 시도해야 할까요?

 

A
B라는 브랜드에서 자동차를 만든다고 합시다. B 브랜드에서는 소비자의 욕구를 잘 관찰하면서 아름다운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이 자동차에는 인문학적 마인드가 들어 있습니다”고 얘기하지요. 그러면서 그 이유를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욕구를 자동차에 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 엄격하게 말해 보면, 이것은 소비자의 욕구를 잘 살펴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팔기 위함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인문학적 마인드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를 문자 그대로 상품을 ‘소비(消費)’하는 소비자로 아예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재 브랜드가 인문학을 만나는 모습이에요.

 

그렇다면 인문학과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바로 이거예요. 인문학의 ‘무엇’과 만나야 하는가, 말입니다. 그 무엇은 바로, ‘가치’입니다. 브랜드가 인문학과 만난다고 할 때는,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 진리, 정의…. 이러한 인문학이 추구하는 그 가치 자체를 만나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위의 B 브랜드는 소비자의 욕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간 본성 자체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인문학과 제대로 만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이것이 굉장히 우회해서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오히려 우회할 때 더 놀라운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 가본 길을 걸을 때 결국 어떤 누구도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고高차원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브랜드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편으로 인문학을 소위, 이용하고 있어요. 그러면 결국 브랜드도, 인문학도 피폐해지고 맙니다. 안타까운 거지요. 만남은 ‘서로’ 주고받는 거예요.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바람직한’ 만남은 win-win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속성’을 담보 받게 되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브랜드가 인문학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려고만 하다 보니, 인문학의 본질적인 가치도 해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일회성의 만남으로 끝나고 마는 거지요.

 

 

만약,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고 합시다.
‘좀 더 나은 브랜드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우리는
왜 더 나은 브랜드를 만들려고 할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이것이 철학적 질문인데요,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기업은 얼마나 있을까요?

 

 

Q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빗대어 보면, 경영학은 보이는 것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에 이 둘의 만남이 더욱 녹록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어쨌든, 결국에는 경영학은 이익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A
맞습니다. 만약,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고 합시다. ‘좀 더 나은 브랜드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우리는 왜 더 나은 브랜드를 만들려고 할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이것이 철학적 질문인데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기업은 얼마나 있을까요? 편집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업은 이익의 추구라는 태생적 소명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브랜드와 인문학이 만난다고 했을 때, 그 둘은 반드시 일치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좀 전에 얘기했다시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거지요.

 

저는 이런 관계를 ‘좋은 담’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을 쓴 *로버트 프로스트의 또 하나의 명시인 ‘담장 고치기(Mending Wall)’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듭니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좋은 담’이란 대체 어느 정도 높이의 담일까요? 딱히 몇 미터라고 규정할 수 없겠지만요. 높아서 아예 그 문턱을 넘을 수 없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낮아서 서로 넘나들며 상처를 받아서도 안 되는 높이의 담, 그것이 좋은 담일 겁니다. 저는 이런 담이 브랜드와 인문학 사이를 가로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브랜드든 인문학든 그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 거쳐 온 ‘역사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화학이 존재하기까지 연금술부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요, 천문학이 있기까지 점성술로부터 몇천 년을 지나왔을까요. 그렇기에 어떤 것과 어떤 것이 만난다는 것은 그 사이에 좋은 담을 두고 서로 win-win하는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UB) BrandNess
‘-ness’는 특정 단어(보통 형용사)에 붙어 어떤 ‘성질’ ‘상태’ ‘성격’을 뜻하는 명사형 접미사다. 이런 맥락에서 BrandNess는 해당 브랜드의 성질, 상태, 성격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즉, 그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설명하기 위해 유니타스브랜드가 만든 신조어다. 인간도 자기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듯 브랜드 또한 자기다움을 찾아 그것대로 행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것이 곧 브랜딩의 핵심이랄 수 있는 아이덴티티 확립과 일관성 유지의 굵직한 가이드라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브랜드든 철학과 가치관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며 하나의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 경(經)
‘경(經)’이라는 글자가 처음 나타난 시기를 중국 서주(西周)시대 부터 라고 보는데 이 때의 ‘경’은 ‘다스릴 치(治)’로써 한 나라를 ‘통치한다’ 또는’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쓰였다.이처럼 ‘다스린다’는 뜻으로 ‘경’자를 쓰고 있는 경우는 《사서삼경》의 ‘삼경(三經)’인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UB)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
“It’s in Apple’s DNA that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 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the results that makes our hearts sing.” 2011년 3월 2일 오전 10시, iPad2를 소개하는 기자 회견에서 스티브 잡스는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기술과 융합된 교양학(liberal arts)과 인문학(humanites)이 애플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애플의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의 근원을 밝힌 셈이다.

 

 

* Knight와 Warrior
유럽 초기의 중세사회에서 무인계급으로 충성스런 전사였던 Warrior는 전장에서의 용맹성을 널리 인정받았지만 지나치게 투쟁적이고 야만적으로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반면 ‘기사도 정신’로 유명한 기사Knight는 중세 서유럽에서의 무장기병전사로 어릴 때부터 예의와 교양, 학문, 종교, 사냥 등을 배우는 교육기간을 거쳐 21세가 되면 엄숙한 종교의식을 거쳐 기사 작위 수여식을 마치고 전쟁에서의 선봉장 역할과 함께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박물학자, 과학사회학자로 발생생화학의 선구자다. 그의 저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은 비교철학과 중국학에서 중요한 저서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그는 중국이 어떻게 과학기술에서 서구에게 뒤지게 되었는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에 의하면 중국과학이 초기에 서양보다 우월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결국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관료제로 인하여 그것이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며 ‘과학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중요한 이유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책의 일관된 논지다.

 

UB) 목적이 이끄는 브랜드
목적과 목표는 다르다. 목적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목표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행복한 인생’이 삶의 목적이라면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들(부자 되기, 건강하기, 결혼하기)은 목표가 된다. 기업으로 치자면 그들이 내세운 ‘핵심가치 실현’이 경영의 목적이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익 창출’ 등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 목적과 목표가, 그리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브랜드가 허다하다.

 

*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 고치기(Mending Wall)’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어릴 적 오랫동안 머물렀던 뉴잉글랜드 버몬트 농장에서의 생활 경험을 살려 인간적인 냄새가 짙은 자연시들을 발표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인생의 깊고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 시인이었으며, 20세기 최고의 국민적 시인으로 퓰리처상을 4회나 수상했다. ‘담장 고치기’는 로버트 프로스트가 1914년 발표한 시집 《보스턴의 북쪽(North of Boston)》에 수록되어 있는 시로 사회공동체 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는 담이 없는 세계를 꿈꾸지만 이 시속에서 그는 현실에서는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해 “혼란과 맞서 있는 잠정적 결말”이라고 하며, 좋은 담에 대해 판단하거나 단언하는 것을 주저하는 상태로 시의 끝을 맺었다.

 

 

브랜드, 경영 철학의 시작과 끝

 

 

Q
많은 인문학자들을 만나면서 알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인문학자들이 보기에 ‘좋은 브랜드’는 어떤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인문학자는 결국 ‘인간’에 대해 연구 하는 분들이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장 좋은 브랜드는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니타스브랜드가 추구하는 명제 중의 하나가 ‘Good Brand가 Good Ecosystem을 만든다’입니다. 좋은 브랜드가 하나 생기면 결국에는 생태계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니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좋은 브랜드의 조건(?)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인문학자들로부터 얻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이번 인터뷰의 궁극적인 질문이기도 하구요.

 

A
굉장히 흥미 있는 질문이에요. 처음에 말했다시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제가 결국 얻게 된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가진 추상성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하기가 무척이나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예요. 이건 욕구를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두 번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로 능력에 대해 묻는 질문이죠. 마지막으로‘무엇을 해야 하는가?’예요. 내가 어떤 것을 해야만 하는 ‘*당위’를 묻는 거예요.
 
정리해보면 *욕구, 능력, 당위라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했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더 나아가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욕구와 능력은 언제나 ‘당위’를 향해서 뻗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게 자아를 성장시킬 수 없어요. 극단적으로 말해, 파멸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사실, 그에 대한 답을 제가 무엇이라 확정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 답을 찾아가는 길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소비자의 ‘need’나 ‘want’에 부합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좋은 브랜드라고 한다면, need나 want를 제시해 주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당위’를 제시해 주는 것 말입니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보면,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드는 브랜드가 있다고 해봅시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분석한 다음 제품을 내놓지요. 다시 말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맞추어서 제품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은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담아야 좋은 브랜드라는 거지요. 결국, 당위를 담은 브랜드는 시쳇말로 장사꾼의 목적으로 상품을 소비자에게 판 후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concern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겁니다. 그러니까 욕구와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당위를 향해야 합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욕구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위에 부합되는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인문학적 가치와 브랜드가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아닌, 원해야만 하는 것을 담는 브랜드라면 감히, 인문학적 브랜드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Q
UB‘당위’를 알려 주는 브랜드라고 하니 책임감이 무거워집니다. 결국, 브랜드는 ‘가치’를 지향하고, 그것을 이뤄 나가기 위해 ‘철학’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는 ‘환경’ 혹은 ‘지구’가 전 지구적인 관심 영역이다 보니, 이러한 곳으로 눈을 돌리는 브랜드들에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당위’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A
당위라는 것이 반드시 제품 안에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여, 제품을 팔아서 얻은 이익을 사용하는 방법 등 당위는 다양한 영역에서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좋다’ ‘선하다’라는 단어는 사실, 매우 추상적(abstract)일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metaphysical)인 말입니다. 물론, 사전에 명확한 정의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재연되는 것은 각각의 시대가 추구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화두는 환경이겠지요. 그러나 100년 전은 전혀 다른 가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하다, 좋다라는 가치를 추구하려고 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럴 경우, ‘좋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그러니까 ‘나쁜 것이 무엇이냐’라는 반대의 지점에서부터 접근해 보면 좋아요. 영국의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Karl Popper)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극소화하는 것이다.” 그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결국, 고통을 극소화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선을 행한다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 그 선을 규정하는 인식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선을 행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선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에는 선을 행하게 되는 거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것는 것,
이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께서는 길고 긴 여정을 통해 결국,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그것을 알기 위해 거쳐 온 과정 가운데의 지혜를 배운다면, 브랜드도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는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시작점을 알려주십시오.

 

A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 가는 방법은 찾았으나, 지금도 끊임없이 그것을 완성해가는 중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나를 알아 가는 것,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영원한 테마이기도 했지요. 세계적인 역사학자 *곰브리치는 “진정한 예술가는 관객(Audience)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다”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관객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이것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 가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에서 철학을 ‘영혼이 영혼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 보십시오.

 

 

* 당위
당위는 일반적으로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을 뜻한다. 당위는 잘잘못을 가려서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가리키며 올바른 행동의 근거가 된다. 당위는 보통 욕구와 함께 비교되어 정리된다. 욕구와 당위가 갈등할 때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문제가 되는 사항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당위는 도덕법칙이나 의무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칸트는 당위를 어떤 목적을 위한 당위와 무조건적인 당위로 나누고, 후자에 도덕의 법칙이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당위는 적극적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소극적으로 ‘나는 무엇을 해도 되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가 모두 욕구와 능력의 문제처럼 자신이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고 또 자기가 가장 잘 판단할 입장에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 욕구, 능력, 당위-소크라테스적 자아인식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을 때 그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알기를 원하고 요구했던 바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 의무며 동시에 그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길 것이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적 자아 인식은 자율성, 합리성 및 도덕성의 측면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데 우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그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기능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를 초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제대로 가늠하고 그 한계 내에서 실천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엄정식 교수는 자아를 이 세 가지 요소(욕구, 능력, 당위)로 이루어진 하나의 삼각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삼각형의 모습과 크기를 파악하는 것이 곧 자아의 인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역경에 처했을 때, 혹은 주변 여건이 허락되지 않을 때 더욱 또렷이 나타나게 된다.

 

 

UB) 당위
‘영리(營利)’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라는 사전적 정의를 지닌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모체로 성장하는 브랜드에게 당위 혹은 명분을 따지고 드는 것이 가당키나할까? 그러나 경영학의 구루로 꼽히는 톰 피터스, 게리 해멀 등은 비즈니스가 지녀야 할 명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위대한 리더는 명분에 의해 움직였으며 혁명기업들의 성공은 명분에 대한 충성심에서 기인했음을 증거로 꼽으며 말이다. 이런 변화, 그리고 브랜드가 내세운 가치의 중요성이 대두된 이유는 ‘가치’에 대한 소비자의 해석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가치에 대한 해석이 ‘가격대비 효익’이었다면 이제는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되었기 때문이다.

 

 

* 형이상학적(metaphysical)
형이상학으로 번역되는 영어 낱말 ‘Metaphysics’는 그리스어의 메타(meta, 뒤)와 피지카(physika, 자연학)의 결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며, 현실 세계를 초월하여 그 뒤에 숨은 본질이나 보이지 않는 근본원리를 탐구하려는 학문이다. 서양에서는 영원불멸의 실재를 구하려는 그리스철학이 형이상학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후 근대 과학의 성립으로 특수과학의 방법에 따라 얻어지는 것만이 유일한 실재인식으로서 인정받게 됨에 따라 형이상학이 붕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시 철학을 과학과는 다른 근원의 지(知)로 보는 철학자가 많아짐에 따라 형이상학이 새로운 의의를 찾아가고 있다.

 

 

* 칼 포퍼(Karl Popper)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전체주의의 폭력을 체험하면서 일생을 전제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데 바쳤다. 특히 포퍼는 ‘열린 사회’를 주장하며 개인의 자유가 무시되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비판하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포퍼는 과학철학자로서 객관적인 지식을 탐구하면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역설하였다. 그는 과학은 문제에 부딪혀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가설을 제기하고 그것을 반증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관점인 ‘비판적 합리주의’의 인식론을 제창하였다. 대표적 저서로는 《탐구의 논리》가 있다.

 

 

* 곰브리치
명료하고 정확한 서술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의 대가다. ‘예술작품이란 어떤 신비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한 대상’이라는 그의 신념처럼 예술가들의 특정한 형식들은 어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그것이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져 개별적으로 발전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위대한 예술가들은 독특한 형식을 창조했기 때문이 아닌 그것을 역사적 상황 속에서 특수한 문제로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예술가들과는 다른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어떤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가 속한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개별 작품의 해설에 치우치거나 통시적 사실의 나열에 그쳤던 미술사에서 ‘역사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 소크라테스의 《테아이테토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인식론 저서로 플라톤의 대화편들 가운데 가장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를 담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테아이테토스》 편에서 다룬 문제는 ‘지식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에 대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책에서 플라톤은 이러한 문제들을 헤라클레이토스나 프로타고라스와 같은 상대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해결해 나간다. 또한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테아이테토스가 제시하는 앎에 대한 정의를 반박하는 과정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혹자는 이 대화편의 극적 요소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암시하고 있어 소크라테스적 삶의 철학적 변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플라톤이 이 대화편에서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함’을 주장하는 점인데, 진정한 지식은 이런 깨달음에서 출발함을 제시해준다.

 

 

유니타스브랜드 문의

About Us

찾아오시는 길

교육, 컨설팅, 제휴 문의

  • 070-5080-3800 / ahneunju@stunit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