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Flat, Free가 만드는 브랜드십, 고어
초전도 현상으로 만드는 미래 경영의 롤모델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16 브랜드십 (2010년 07월 발행)

우리가 그들을 찾아갔을 때 안내데스크에서 처음 받은 ‘방문자 명찰’에는 ‘방문자 가이드 담당 직원’으로 ‘IK Kim’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바로 그날의 인터뷰이, 김인규 본부장(전 대표)이다. 잠시 후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도 그였다. 그간 수많은 기업들을 방문했지만 한 조직의 전前 대표(직함상 컨트리 리더(Country Leader)가 직접 나와 방문자를 미팅 장소로 안내하고, 파워포인트를 준비해 발표하며, 손수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회사는 본 적이 없다. 방문 전, 게리 해멀이 《경영의 미래》에서 몇 안 되는 미래적 기업 중 하나로 소개한 고어를 보면서 품은 ‘정말 이런 조직이 있을까?’하는 의문은 첫 만남에서부터 서서히 풀려 가기 시작했다.

The interview with (주)고어 코리아 본부장 김인규

 

 

게임의 룰

다음은 몇 년 전 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의 사회탐구 영역에 출제된 문제의 지문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다음의 A와 B에 들어갈 게임 이름은 각각 무엇인지 알아맞혀 보자.

 

A와 B 게임의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A 게임에 쓰이는 말들은 각자의 위치와 가는 길이 정해져 있고, 각 말들은 존재하는 의미를 스스로 찾기가 매우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각 말들 간에는 상당한 서열이 수직 계층화되어 움직임의 폭이 매우 작다.
반면 B 게임에 쓰이는 각 말들은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필요한 경우에는 아무데나 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말들은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고 평등하며, 다른 돌의 휘하에 들어감 없이 움직인다. 그렇다고 완전히 독립하여 각자가 따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전체가 통일을 이루어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이 중요한 특성이다.

 

한 번쯤은 A 게임에서 ‘괜한 훈수였다’는 핀잔을 들어보았거나 B 게임의 손쉬운 응용편인 ‘다섯 알의 승부’를 해봤다면, A가 ‘장기’를, B가 ‘바둑’을 설명하는 것이란 것쯤은 쉽게 맞췄을 것이다. 그 모의고사에서 이러한 지문을 두고 어떤 문제를 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수평적 평등 구조’와 ‘수직적 계층 구조’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한다.

 

말했듯 바둑은 장기보다 훨씬 수평적 구조를 가진다. 각 알들 간에 직급도 없으며 가야 할 방향, 있어야 할 위치에 대한 규제도 없다. 그 격자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의 당위성을 갖는다.
왠지 평등한 구조가 훨씬 민주적이어서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할 것 같지만 이러한 수평적 구조일수록 ‘복잡성’은 늘어난다. 정해진 규칙이 없기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찾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계급 구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 구조로의 전향’을 선포해 왔다. 대표적으로 구글이 있고, 국내 기업으로는 제일기획, 포스코,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이 (전면적 개편까지는 아니어도) 수평적 구조로 변환을 모색하고 있다. 심지어 MIT슬로언 경영대학원의 조엘 거센필드 교수가 “X이론(p84 참고)이 조직에 스며들어 있다”고 평가했던 삼성마저도 최근 수평적 조직 구조로의 전향을 시도했다. 왜일까?

 

많은 학자들이 수평적 조직 구조와 수직적 조직 구조에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형태별 장단점을 분석했는데, 수평적 조직 구조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은 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예를 들어 10명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졌고 물을 긷기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고 하자. 이 사막은 오아시스가 꽤나 빈번히 발견되는 곳인데 최대한 많은 수의(규모가 아닌)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10명은 줄을 서서 함께 이동하며 오아시스를 찾아야 할까, 아니면 흩어져서 각자 찾아야 할까?

 

 

이러한 성공적 운영의 핵심으로 고어는 '평등'을 꼽는다.
바둑에서 사용되는 돌처럼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잡아 가며 의미를 찾는 그들은 어떤 조직일까?

  

 

세상은 점차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기회는 곳곳에 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폭넓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생태를 생각해 보면 여러 기업들의 방향 전환은 그리 틀려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영 전략가이자 비즈니스 철학자로도 불리는 게리 해멀 역시《경영의 미래》에서 이러한 불확실성 시대에 적합한 경영 모델로서 수평적 조직 문화를 꼽고 있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여러 기업 사례 중 한 기업인 고어(W. L. Gore & Associates)를 접했을 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정말 그러한 조직 시스템으로 기업이 제대로 운영될 수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창업 이래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적자 없이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공적 운영의 핵심으로 고어는 ‘평등(fairness)’을 꼽는다. 그리고 그 평등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조직 구조에 대해 고어 스스로 ‘래티스 구조(lattice, 격자 창살 구조)’라 부르는데, 사실 이 래티스는 바둑이란 게임이 없는 미국에서 바둑을 설명할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바둑에서 사용되는 돌처럼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잡아 가며 의미를 찾는 그들은 어떤 조직일까?

 

 

We are Associates

고어 코리아의 김인규 본부장은 현재 대외적으로 *본부장이란 직함을 쓰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신입사원을 포함한) 직장 동료들에게 ‘IK님, 선배’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사실 이들의 이러한 면모는 고어사의 정식 영문 명칭에서도 엿보인다. W. L. Gore & Associastes, Inc.(W. L. Gore와 동료들), 즉 이 브랜드의 설립자인 W. L. 고어(Gore)(빌 고어로도 불리는)와 그의 동료들이 함께하는 이 브랜드는 (법인 설립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CEO를 두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상당히 평등한 조직 구조이며 이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 본부장
고어 코리아에는 CEO(Country leader)의 고정된 임기 개념이 없다. 본인의 의사와 주변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김인규 본부장의 경우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대표로 활동하다가 자신이 맡은 사업본부가 5배가량 성장하면서 ‘본부장’과 ‘대표’로서 두 가지 역할을 하기가 버겁다고 느꼈다. 또한 조직 전체가 종전보다 더욱 사업 부문별로 운영되는 시스템으로 정착되면서 컨트리 리더 역할이 전보다 훨씬 적어졌다고 느껴, 자연스럽게 본업으로 내려왔고 현재 본부장이라는 직함을 쓰고 있다

 

 

Flat한 조직 구조

고어는 의사결정권이 특정 직급과 직책에 따른 ‘한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프로젝트(고어의 거의 모든 사업은 TFT형태로 구성된다)에 대해 가장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에게 있다. 따라서 늘 유동적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어의 운영 시스템을 지지하는 두 가지 큰 축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맥그리거(Douglas McGregor)의  X, Y이론 중 ‘Y이론’이며 다른 하나는 ‘원형 의자(Stool) 구조론’이다.

 

 

 X, Y이론
우리에게 욕구 5단계 이론으로 친숙한 매슬로우(Maslow)와 함께 활동한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맥그리거가 주창한 이론이다. 이 이론을 압축적으로 요약해 설명하자면 ‘성선설’을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조직 구조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60년 출간한《기업의 인간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X, Y이론을 정리했다.

 

 

1) Why Y?

W. L. 고어는 확실한 Y이론 지지자였다. 고어 창립 전 17년간 몸담은 듀폰에서 소규모 TFT 단위의 프로젝트를 수차례 경험하면서 그는 ‘확실한 목표와 자율적 임무’ 그리고 ‘자유분방한 팀 운영 체제’가 얼마나 큰 에너지와 혁신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알았다. 사실 맥그리거의 X, Y이론의 가장 큰 전제는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 근거한다. 즉 생리적, 안정적 욕구를 지배적인 욕구로 보는 X이론이 아닌 사회적, 자존적 욕구를 직원의 주된 욕구로 보고 그에 따른 동기부여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Y이론을 지향하는 조직에서 직원 동기부여 방식은 ‘의사결정에의 적극적 참여, 책임감 부여, 도전할 만한 직무 부여, 동료와의 원활한 인간관계 구축 환경 제공’을 통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고어는 Y이론을 지지했고 동시에 아래와 같은 ‘원형 의자’의 조직 구조를 만들어 냈다.

                   

2) Armchair vs. Stool

암체어(armchair)가 의미하는 것은 일명 ‘사장님 의자’다. 머리 높이 위로 한 뼘 이상 올라온 등받이에 팔걸이, 그리고 바퀴가 달린 의자 말이다. 한편 스툴(stool)은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다. 고어가 자신의 조직도를 설명하면서 사용하는 이미지가 바로 이 스툴이다.

 

다리가 세 개인 이 원형 의자는 일반적인 상하 계급 구조의 피라미드(혹은 사다리) 구조와는 상반된다. 우선 전체 조직은 ①테크놀로지 팀, ②생산팀, ③영업 및 세일즈팀으로 나뉘고 동시에 이들을 코디네이팅하는 ‘제품 스페셜리스트(각 제품의 개발에서부터 런칭, 판매까지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들)’를 둘 뿐이다. 그 외에 인사, 회계 등 조직의 기본적인 조직 ‘운영’을 위한 서포트 조직을 두고 있다. 이렇듯 고어에는 ‘00과, 00부, 00실’이란 개념이 없으며 권위적인 것을 최소화해 창의력을 고무하는 조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고어는 상당히 평등한 조직 구조 시스템을 지녔다. 하지만 그들의 ‘평등함에 대한 철학’은 조직 행동을 위한 네 가지 핵심가치에서 그 진면목을 보인다.

 

 

Stool에서 떨어지지 않기

등받이가 없는 스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최고의 기술은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을 고려한 유연성 갖기’가 될 것이다. 균형점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어에는 ‘정책(Policy)’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가이드 라인(guide line)’라는 표현을 쓴다. 그 차이는 강제성(정책)과 융통성 여부(가이드 라인)에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균형을 찾아 가는가(편법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그것이 고어의 네 가지 핵심가치인 평등(Fairness), 자유(Freedom), 헌신(Commitment), 워터라인(Waterline)이다. 이것과 기본적인 윤리규정 이외에는 상당한 유연성을 가지며 구성원 개개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들의 원칙, 핵심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 하나의 키워드에서 확인해 보자.

 

1. 평등함(Fairness)
김인규(이하 ‘김’) 출장을 가도 직급에 따라 좌석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 전 직원이 동일한 기준으로 좌석을 배정받는데, 이코노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를 나누는 기준은 오로지 비행 시간이다. 비행 시간이 10시간이 넘으면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도, 30년 근무한 직원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탄다. 즉 원활한 업무 수행상 필요한 조건에 기준을 두는 것이지 연공서열(seniority)이나 직급, 포지션은 기준이 아니다. 단, 고어의 ‘평등함’을 ‘동등함’으로 오해하면 안 되는데, 봉급을 예로 들자면 모든 직원이 평등하기 때문에 연봉도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 대한 기여도가 봉급 결정의 기준이 된다.

 

김 본부장이 말하는 봉급 결정에서의 평등함 역시 흥미롭다. 고어는 직원 개개인의 봉급에 ‘전방위 평가 시스템(360° 피드백)’을 적용하는데 이것이 놀라운 것은 그 전방위 평가의 ‘주체’다. 이는 사장도, 인사팀도 아닌 전 직원, 즉 ‘동료’라는 점이다. 매년 적어도 한 번 이상 모든 직원의 설문을 ‘기명’으로 받는데, 여타 회사들의 인사고과 평가서처럼 ‘성실성, 업무 목표 달성률’ 등의 평가 항목을 두지 않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러한 ‘주관적 기준에 의한 평가’는 외려 불공평한 결과를 낳을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 친분도로, 어떤 사람은 특정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또 어떤 사람은 매출 기여도에, 또 어떤 사람은 단순 성실성에 의해 평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가서는 구체적인 이유를 기술할 필요도 없이 단지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만 매기는 방식이다. 대체 이런 막무가내(?) 평가 시스템은 어떤 장점을 가질까?

 

 

 

 

평가서와 관련해 우리가 주의를 주는 것은 단 하나, 이것은 인기 투표가 아니라는 점뿐이고 모든 평가 기준은 각자에 맡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위 결과는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러한 평가 방식은 이따금 의외의 방식으로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A라는 직원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거의 1등 내지 2, 3등의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A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정도로 우수한 영업사원이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A의 옆자리인 B만이 A에게 꼴찌를 줬다. B를 불러 물었다. 처음에는 B가 A를 시기해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B 말인즉, 자기가 옆자리 앉아 있어서 이따금 A가 거래처와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는데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짓말은 추후 고어의 명성과 신뢰도에 문제가 될 수준이어서 걱정됐고, 그 이유로 꼴찌를 주게 됐다고 했다. 결국 A는 회사를 나가게 됐다.

 

하지만 고어가 단지 직원들의 평가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동료 간의 경쟁이기에, 또 인간의 본성이기에 자신과 비슷한 순위를 차지할 법한 직원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순위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 종종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 순위는 조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안전장치를 둔 셈이다.

 

2. 자유(Freedom)

보통 ‘자유’라고 하면 ‘자기 맘대로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고어에서 말하는 자유는 세 가지 정도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발견되며 모든 것이 ‘고어다움’을 만드는 방법으로 수렴된다. 먼저 ‘장난 시간(dabble time, 직원들이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낼 수 있는,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의 시간)’으로, 혁신의 주된 에너지가 되는 시간이다. 이때는 원하는 실험 자재를 마음껏 쓸 수 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창립자 W. L. 고어의 아들이자 두 번째 회장인 (밥 고어로도 불리는) 로버트(Robert) 고어가 장난을 치며 우연히 잡아당긴 PTFE란 소재가 결국 고어텍스라는 신소재로 발전되고, 또 한 연구원이 고어텍스 섬유에 함유된 소재로 산악 자전거 바퀴살을 코팅해 본 것에서 기타줄 사업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고어는 실수에도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뭐든지 일단 쉽게 시도해 보게 한다. dabble이란 단어 뜻 그대로(스포츠 활동 등을 오락이나 취미 삼아 조금 해보다, 잠깐 손대다) dabble이니까.

 

둘째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재량’이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공한다는 것은 곧 아이디어의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에 자발적 참여도가 상당히 높다. 동시에 이러한 자유는 남의 아이디어로 연명하는 무임승차 직원도 없음을 의미한다.

 

셋째는 ‘동료를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데 제한이 없다’는 의미의 자유다. 언제든 원하는 만큼 서로 도울 수 있고 동기부여 하며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자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자율적 도움은 앞서 설명한 ‘전방위 평가제(많이 도울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에)’와도, 그리고 이어 설명할 Commitment라는 또 다른 가이드 키워드와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퍼스트 클래스를 나누는 기준은
오로지 비행 시간이다.
비행 시간이 10시간이 넘으면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도, 30년 근무한 직원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탄다.

 

 

3. 헌신과 신뢰(Commitment)

고어에는 리더가 따로 없는 만큼 특별한 명령도 없다. 자신이 지원한 프로젝트에 자유롭게 몰입해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대한 자연스러운 헌신만이 존재한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헌신과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고 독려하는 문화가 조직 자체에 시스템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문화가 된다.

 

헌신에 따른 보상 측면이 시스템화된 에이솝(ASOP - Associate Stock Ownership Plan, 조합원 주식 소유제) 규정도 흥미롭다. 고어의 직원들은 연봉과는 별도로 연봉의 15%를 주식의 형태로 받는다. 그리고는 퇴직할 시점(퇴직 전에는 받을 수 없다)에 해당 주가로 변환 받는다. 그렇기에 회사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이고 그만큼 퇴직 시 받는 보상은 커진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인정신’으로 헌신할 수밖에 없다. 자발적 헌신이 생기는 또 다른 이유는 팀을 구성하는 ‘인원 수’에 있다. 고어는 가능한 조직을 단순화, 최소화하는 데, 인원이 적을수록 팀웍과 책임감이 높아지고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축구선수와 농구선수, 배드민턴 복식조를 상상해 보자. 어떤 팀의 구성원이 가장 큰 책임감을 느끼겠는가. 배드민턴 복식조의 경우 내가 잠시 한눈을 팔면 모든 것이 끝이다. 반면 축구의 경우 ‘가끔은 내가 살살 뛰어도 팀에 큰 부담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은 조직일수록 내가 게으르면 당장 내 동료가 받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게으를 수가 없다. 또한 팀원 수가 적으면 상대의 장단점을 잘 알 수 있다. 결국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다.

 

이는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팀원의 최소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고어는 전 세계적으로 9,000여 명의 직원과 약 45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공장의 경우도 적정 인원 수에 기준을 두고 있다. 최근 중국 등 큰 규모 공장의 수가 늘면서 공장당 평균 직원 수가 200명 정도로 늘기는 했지만 기존에는  150명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연적으로 어떤 그룹이 형성됐을 때 ‘운영’ 면에서, 또 직원들 간의 ‘관계 형성’ 면에서 150명이 최적이라는 ‘던바의 법칙’에 근거한 판단 때문이었다.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150명 미만일 때는 ‘우리’라는 표현을 쓰지만 150명을 넘어가면 ‘그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단순한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친밀도와 거리감을 내포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또 시너지 문제가 있다. 조직이 생기면 인원 수에 관계 없이 인사, 회계, 총무 등 회사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부서가 있어야 하는데 150명이 넘어야 그러한 부서들을 운영 할 때 시너지가 생기고, 그 이하에서는 부서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조직 전체의 효율성인데 이는 책임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150명이 넘어가면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고, 결과적으로는 1인당 채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

 

 

  150명
당신의 트위터 팔로잉 수치(혹은 싸이월드 1촌, 페이스북에서 관계 맺은 사람 수)는 몇 명인가? 그들 중 1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연락하거나 안부를 묻는 사람 수는? 당신이 아무리 마당발이어도 150명 이하일 확률이 높다. 실제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온라인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관리하는 인맥이 수천 명에 이르는 ‘사교적인 사람’과 몇 백 명 정도인 ‘보통 사람’을 비교했더니 두 부류 간 진정한 친구(기준은 1년에 한 번 이상 연락하거나 안부를 묻는 것)의 수는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친구가 1,500명쯤 된다는 사람도, 수만 명에 달한다는 유명인사도 실제로는 150여 명과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150’이란 숫자에 비밀이 있다. 바로 ‘던바의 법칙’이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1990년대 초 영장류 30여 종의 사교성을 연구하면서 대뇌의 ‘신피질(新皮質)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피질이란 대뇌 반구 표면을 덮고 있는 층인데 영장류의 학습, 감정, 의지, 지각 등 고등한 정신작용을 관리하는 영역으로, 인간의 경우 다른 영장류와 신피질 크기를 비교했을 때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약 150명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와 더불어 오지에 남아 있는 원시부족의 마을 구성원 평균 수가 150명 안팎이며, 효과적 전투 수행을 위한 부대원 역시 200명 이하란 점도 밝혀 냈다. 즉 아무리 마당발인 사람도 온전한 친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치는 150명이라는 것이다. 고어는 이를 기업 조직 규모에 잘 적용해 그 구성원 간의 시너지와 조직 운영 효율성의 최적화를 꾀했다.

 

 

4. 워터라인(Waterline)

워터라인은 고어가 가진 독특한 위임 전결 규정이다. 워터라인이란 배를 물에 띄웠을 때 배에 그려지는 물의 수위를 말한다. 고정된 의사결정권자가 없는 고어에서는 이러한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고어는 의사 결정을 ‘배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그림 4>를 보며 이해해 보자. 이번 프로젝트의 최종 의사결정자가 A(보통 자신의 프로젝트에 빠져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힘들다)라고 하자. 이런 경우 A의 의사결정(구멍 뚫기)은 C 지점이 될 수도, D 지점이 될 수도 있다. 만약 C라면 고어라는 배는 항해를 계속할 수 있지만 D 지점에 구멍을 뚫는 일이라면 이 배는 침몰하게 된다. A가 D에 구멍을 뚫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도록 B가 존재한다. 즉 해당 의사결정에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수면 위에 있어 워터라인을 확인할 수 있는) B와 의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재미있는 것은 이 워터라인은 항상 움직인다는 점이다. 배에 물건을 얼마나 실었느냐(회사가 처한 상황) 등에 따라서 유동적이며, 의사결정자(A)와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B)도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항상 배 밖에 있는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 내가 지금 하려는 의사결정이 수면 밑인지 위인지를 항상 크로스 체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특정한 리더가 있다기보다는 각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리더를 새로이 세우는 고어의 문화는 지난 50년 이 상 비즈니스계에서 큰 이슈가 되어 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이러한 고어의 문화를 바라보며 어떠한 생각을 하는가?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독자라면 ‘나도 이런 회사에서 한 번쯤 일해 보고 싶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을 것이고, 현재 고위 직책에서 많은 권한과 특혜를 가진 관리자급이나 리더라면 ‘대체 이러한 조직이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그간 낮은 직급에서 힘겹게 (때로는 서럽게) 지내 온 과거를 떠올리며 ‘안 될 말이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처럼 유교 문화, 효 사상, 그리고 연공서열 개념이 확실한 문화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미국 본사나 유럽 지사들이야 이러한 문화에 익숙할지 모르지만 어떻게 고어 코리아가 이에 적응하고 문화로까지 정착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역시나 답은 스스로 ‘낮아지는 리더’에게 있었다.

 

 

미국 본사나 유럽 지사들이야 이러한 문화에 익숙할지 모르지만
어떻게 고어 코리아가 이에 적응하고 문화로까지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역시나 답은 스스로 '낮아지는 리더'에게 있었다.

 

 

-273.15℃로 낮추기(be colder & be lower)

초전도체의 개념을 설명한 기사(p32 참고)에서 밝혔듯이 리더가 -273.15℃가 된다는 것은 ①리더로서, 인간의로서의 사욕을 없애는 것, ②개인적 가치관과 회사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 회사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 ③점차 자신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고어 코리아의 전 대표, 김 본부장은 스스로 낮아지기 위해, 또 자신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평등해지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사실 고어의 조직 문화가 자리 잡기 힘든 나라가 몇 있다. 독일과 아시아권 국가다. 상당한 수직 계열 구조 문화에 뿌리를 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 고어 코리아에 입사한 지 20년 정도 됐는데 그 전 회사에서는 아침에 출근해서 현장 한 번 둘러보고 오늘의 업무 목표를 설정해 주는 등, 지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내가 모시던 상사는 장교 출신이었는데 늘 엄격했고 결재서류가 마음에 안 들면 뭐가 잘못됐는지 얘기도 안 하고 다 찢어 버릴 정도였다. 독일계 기업에서도 일한 적 있는데 역시 위계 질서가 분명했다. 그래서 처음 고어에 입사했을 당시엔 컬처쇼크가 상당했다. 내가 알아서 일하고, 또 종전에 갖고 있는 권리에 대한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른 후반에 비서까지 두고 일하던 내가 여기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으로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고어였다.

 

 

 

 

사실 고어 코리아에서도 직급이 사라진 지는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회사 전반의 문화 차원에서는 여타 기업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과장, 부장, 이사 등의 직급과 직함이 있었고 그에 따라 앉는 자리도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이 고어 코리아 입사 후 10년이 흘러, 2006년 대표(컨트리 리더)를 맡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내 방부터 없앴다. 현재 고어 코리아에 개인 집무실은 하나도 없다. 자리 배정도 사무실에 오래 머무는 직원들에게 자리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다. 당연히 회사의 서포팅팀(인사, 회계 등)의 직원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앉게 되었고 외부 업무가 잦은 직원은 직급이 높아도 복도 쪽이나 길 쪽에 나앉는 일도 생겼다. 당연히 시니어 직원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우리가 고어 본사 문화와 100% 같아지기는 힘들어도 100%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칭도 마찬가지다. 나를 대표로 부르지 말라 했더니 처음에는 직원들이 너무 어려워했다. 그래서 내가 대안을 제시했다. 아무래도 나를 ‘인규씨’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방이 더 불편한 일이 될 것 같아 ‘IK님’ 혹은 그냥 ‘선배’로 부르게 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상당한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아직도 잔재가 있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자기 방도, 직급도, 권한도 점차 줄여 나간 김 본부장은 회사에서 제공되는 CEO를 위한 차량도 반납했다고 한다. 누구라도 자진해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설사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더라도 각자 연륜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직원들에게 (일종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강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고어처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직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273.15℃가 되려는 리더의 참 모습이며 역할이다. 스스로 먼저 낮아지며(be colder & be lower), 이러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조직원들 역시 자신의 가치관과 회사의 가치관이 상충할 때 (적어도 핵심가치에 있어서는) 기꺼이 회사의 가치관을 따르게 하는 영향력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 초전도 현상에는 ‘초전도 근접 효과’란 개념이 있다.초전도 물질(초전도체가 된 리더)이 일반 금속(직원)과 가까이에 있으면 초전도 성향이 전이되어, 일반 금속 내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관찰되는 것을 말한다. 요는, ‘전이’된다는 의미이며 리더의 그러한 변화가 직원들도 변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조직 구성원은 서로를 닮아 가며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한 방향성을 향해 갈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전이 현상은 개개인의 주변, 즉 가정에도 일어나지는 않겠는가? 그렇다면 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꽤나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사회상으로의 변화를 그려 보는 유니타스브랜드에게 어떤 냉철한 독자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만 같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열역학 보존의 법칙에 입각해 생각해 봅시다. 리더가 잃어버린 -273.15℃는 어디로 갔나요?”

 

 

잃어버린 273.15℃의 행방

독자가 꼬집은 ‘에너지 보존’에 관한 관점(그중에서도 열역학 제1법칙)으로 ‘초전도체가 된 리더’를 보자. 그가 -273.15℃로 낮아지면서 잃어버린 273.15℃는 어디로 갔을까? 김 본부장의 한마디가 구체적인 설명보다 빠른 답을 줄지도 모르겠다.

 

우리 조직에서는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인내는 서로간의 사랑으로 전환된다.

 

초전도체를 유지하기 위해 낮춘 에너지(사욕, 기득권, 영향력 포기와 관련된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직원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사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결국 고어의 핵심가치를 체화하고 전파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1. Active Listening

고어는 조직원 간의 이견을 최대한 수용하고 이해하려 애쓰는데 이러한 태도를 고어에서는 ‘액티브 리스닝’이라 부른다. 조직 리더는 물론, 프로젝트 리더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최대한 팀원의 의견을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리스닝 스킬이나 이견에 대한 포용력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이 많기 때문에 회의할 때나 의사결정 때도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든다. 또한 다른 회사의 매니저나 CEO에 비해 상당한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시간을 두고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는 지속적으로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많다. ‘지시’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2. Powerful vs. Effective

취재 도중 “이러한 고어의 문화를 조직 내에 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설득 과정도 많고 또 10년 전, 직급 등을 없애는 과정에서 외려 ‘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을 때 김 본부장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강하다는 표현은 거부감이 든다. 강력하다기보다는 효과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굳이 지나가는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한 ‘해와 바람’의 우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또 한참 회자되던 ‘경청하는 리더, 서번트 리더십’의 개념에 빗대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의 경험에서 우러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때로는 직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면 꾸준히 참고 기다리면서 설득해 나간다. 군대식으로 ‘헤쳐 모여!’가 단기간에 ‘강력한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효과적인 솔루션’일지는 의문이다. 물론 우리도 효과성 측면의 서베이를 많이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컬처 서베이다. 조직 문화가 나라마다, 사업본부마다, 팀마다 잘 정착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매년 적어도 한 번씩 무기명 조사를 한다. 거기서 점수가 낮은 팀이나 국가는 원인을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유지되기 힘든 문화다.

 

3. Sponsorship

고어의 모든 직원은 스폰서를 둔다. 이것은 의무다. 심지어 “스폰서가 없는 사람은 존재 이유가 없다”라고까지 말한다. 고어에서 자기를 후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누구한테도 신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의 경우 입사 후 첫 6개월은 회사에서 스폰서를 지정해 주지만 그 뒤에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A라는 직원이 B라는 직원에게 스폰서링을 요구했을 때 B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스폰서는 직원의 업무 파악을 돕고 조직 내의 네트워크와 자기계발 측면 등 모든 범위에서 멘토링을 해준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고어 문화를 학습하고 체화하게 된다.

 

한 직원이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의 한계는 최대 7명이다. 너무 많으면 제대로 케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스폰서를 요청 받았을 때 거부권도 준다. NO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담당하고 있는 스폰시 (sponsee)가 너무 많은 경우,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 경우, 후견인으로 서 줄 만큼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이 아닌 가이드라인이라 실제로는 스폰시로 20명을 둔 직원도 있다.

 

 

 

 

“나는 리더다!”

김 본부장의 외침이 아니다. 고어 코리아의 사내 설문조사 결과 전 직원의 50~60%가 택한 답변이다. 신입사원들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처럼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인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일반 기업에서는 지출되는 출장비, 접대비 등을 ‘경비expense’로 부르지만, 고어 코리아에서는 ‘투자(investment)’라고 부른다. 그래서 지금 쓸 돈을 내 돈이라 생각하고 ‘이번 출장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번 접대가 필요한 것인가’를 ‘투자’ 개념으로 사고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김 본부장을 비롯한 고어의 리더(전 직원이 될 수도 있겠다)의 노력이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그들 역시 창립자 빌 고어와 고어 본사의 조직 문화가 전이되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입사 한 달 뒤 우연히 홍콩에서 열린 미팅에 참석했다. 그날 저녁 뒤축이 너덜거릴 정도로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내게 와서는 “너 누구냐, 언제 들어왔냐” 등을 연방 물었다. 이 아저씨가 누군데 이러는지 옆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분이 바로 고어의 두 번째 CEO인 밥 고어였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그 후로 쭉 뵈었는데, 한번은 그가 타고 다니는 차가 하도 낡아서 가족들이 꽤 고가의 외제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런데 받자마자 되팔고 다시 중고차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이 놀라웠다. “나는 직원들과 외관상으로도 간극이 생기는 것이 싫다.”

 

밥 고어 역시 초전도체가 된 리더였다. 이러한 리더가 있었기에 고어의 문화는 조직원 전체를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밥 고어는 무슨 생각으로 이 같은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일까? 즉 밥 고어의 철학의 궁금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밥 고어의 철학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아버지이자 고어의 창립자인 빌 고어의 철학을 알아야 한다. 그의 핵심 키워드는 ‘신뢰’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고어 코리아에 입사할 때의 에피소드를 통해 더 실감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입사 당시 면접을 보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그만큼 신중하게 사람을 뽑는다. 요즘에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3개월가량 걸리고, 보통 최소한 10명 이상에게 면접을 본다. 심지어 입사 후에도 다른 사업 부문으로 옮길 때 15~20명에게 사내 면접을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입사가 결정되면 그 개인을 믿고 맡긴다. 믿어야 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 상당히 신중한 것이고 오래 걸리는 것이다. 사실 고어의 모든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신뢰다. 작은 팀단위의 운영도, 자유도, 평등함도, 헌신도, 워터라인도 모든 것은 신뢰 때문에 가능하다.

 

상대방을 믿을 수 있다면 어떤 점이 껄끄럽고, 고민되겠는가. 고어의 조직원들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 낮아지기에 전체적인 수직 계열의 높이 또한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 직원을 리더급으로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단순히 수평적 조직이기 떄문에 그들이 부랜드십을 가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리더가 되어 모두가 한 방향성을 가지면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이 갖는 살아있는 유기체 속에는
그들만의 운용 메커니즘이 활성화 되고 있었다.

 

 

고어를 따르라?

상당한 자유를 부여하고 권한을 나누어 갖는 이상적인 회사, 고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고어처럼 당장 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실상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산업군의 특수성이나 그간의 업력에 의한 특수성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조직 문화로 인해 고어 나름대로 겪는 어려움도 있다.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 이슈의 경우 최종 의사결정이 상당히 지연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 이슈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꽤나 빨리 짐을 싸곤 한다.

 

사실 우리가 고어에서 놀라야 할 부분은 그들의 획기적인 경영 스타일이 아니라, 그 스타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설치해 둔 정교하고 현명한 숨은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자유가 방종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각종 제도와, 책임감 고양을 위한 ‘소수 인원의 프로젝트제’, 주관적이고 위험성 높은 의사결정을 방지하기 위한 ‘크로스 체킹 시스템, 워터라인’, 권한을 위임하기 전에 확실히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을 가려 내기 위한 ‘채용 시스템’, 수평적 조직의 큰 단점으로 꼽히는 ‘우매한 대중에 의한 의사결정’을 막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시스템(한 사람의 솔직하고 예리한 평가로 영업실적이 좋은 사람을 해고한 일화를 보라)’, 평등함의 진짜 의미가 ‘차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없다는 것임을 알리는 노력(전방위 평가 연봉제)을 말이다.

 

단순히 수평적 조직이기 때문에 그들이 브랜드십을 가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리더가 되어 모두가 한 방향성을 가지면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이 갖는 살아 있는 유기체 속에는 그들만의 운용 메커니즘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즉 수직적 구조가 고착된 기업이라도 그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모든 사원이 리더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들 역시 브랜드십을 가질 수 있다. 즉 고어의 스타일이 브랜드십의 롤 모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시스템을 만든 스마트함이 롤 모델이며, 이것이 당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인 것 같은 고어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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