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십을 위한 예복을 짓다
정성의 마름질, 혼의 박음질, 초월적 책임감의 매듭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16 브랜드십 (2010년 07월 발행)

1996년 3월 홍콩의 시사경제지 <아시아위크(ASIAWEEK)>에는 이례적인 조사 결과 하나가 실렸다. 아시아 주요 도시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자동차, 의류, 레스토랑 브랜드들을 조사한 결과였는데, 조르지오 아르마니, 입생로랑, 베르사체 같은 명품 브랜드 사이로 눈에 띄는 한글 이름 하나가 있었다. Lee Kwang Hee. 그런 놀라움을 뒤로하고,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옷을 지어 온 지 올해로 25년이 됐다. 그런데 최근 이광희 대표는 옷뿐만 아니라 다른 일로도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희망의 망고나무(이하 ‘희망고’)’ 캠페인 같은, 타인을 위한 행사 때문이다. 이광희의 ‘옷’을 사는 고객들은 옷만큼이나 희망고 같은 캠페인에 에너지를 쏟는 디자이너에게 섭섭하지 않을까? 다행히 고객의 소리는 ‘No’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브랜드 ‘이광희’에서 이런 ‘격’을 사서 입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광희 대표는 이것이 자신의 소명이기도 하고, 나아가 이광희라는 브랜드가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패션 분야에 대한, 시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브랜드가 영속하기 위한 브랜드십을 만들 수 있길 바라고 있다.

The interview with 리패션시스템 대표 이광희

 

 

브랜드는 리더의 확장판인가?

브랜드의 리더는 자주 그 브랜드의 비교 대상이 된다. 이제 이름을 대기도 식상한, 마치 동의어처럼 느껴지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 리더의 성격을 꼭 닮은 버진과 리처드 브랜슨, 월마트와 샘 월튼, 유니클로와 야나이 다다시까지 오늘날 브랜드의 존재에 큰 역할을 한 리더들은 브랜드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는다. 간혹 이들 리더가 없는 그 브랜드는 상상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브랜드와 리더를 분리해 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브랜드는 그만큼 리더와는 다른 차원에서 고객과 여러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리더와 브랜드를 함께 떠올리며, 구분하기도 난감한 브랜드들이 존재한다. 바로 사람이 브랜드로 확장된 사례다. 폴스미스, 바비브라운, 토미힐피거, 마크제이콥스, 이상봉, 안철수연구소…. 그나마 샤넬이나 필립스같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여러 번 리더의 교체와 변화를 경험한 브랜드는 사정이 낫지만 아직 한 세기가 지나지 않은 브랜드는 이름만 들어도 리더들의 얼굴이나 스타일, 소문이나 특징이 떠오르곤 한다(어쩌면 코코 샤넬의 전기나 영화를

 

기억하는 고객은 세월이 무색하게도 브랜드와 그녀를 동일시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리더의 명성이나 영웅담이 그 브랜드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광희’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이끌어 오고 있는, 이광희 대표를 만났을 때 했던 첫 질문도 바로 그것이었다.

 

 

고객은 정말 브랜드의 피땀을 요구하는 존재다.
내가 내 혼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옷은
고객도 곧 바로 알아챈다.

 

 

자신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것은 부담이 클 것 같다. 이광희라는 브랜드는 이광희라는 사람의 확장판인가? 두 객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광희(이하 ‘이’) 이광희라는 브랜드와 내가 일치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브랜드로서의 이광희는 계속 젊어지려, 새로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사람으로서의 이광희는 더욱 성숙해지고 연륜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브랜드 모두가 ‘거듭난다’는 관점에서는 같은 것 같다. 그렇지만 브랜드로서의 이광희는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요소들이 어우러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같지는 않다.

 

항상 ‘거듭난다’는 것 외에 당신과 브랜드는 또 무엇이 닮았나?
내가 말한 ‘거듭남’은 일관성 없이 항상 변화만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뭔가 한 가지를 꾸준히 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공통점이다. 나는 브랜드를 특별히 공부한 적이 없다. 하지만 브랜드도 사람처럼 내면의 뿌리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 ‘누구답다’라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을 꾸준히 가꾼다는 것은 브랜드나 나 자신이나 진짜 어려운 싸움 같다.

 

그렇다면 ‘이광희답다’는 것, 곧 인간 이광희의 정체성과 브랜드 이광희의 정체성은 각각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간 이광희에 대해서는 어떻게 스스로 말할 수 있겠나. 다만 브랜드 이광희는 한마디로 ‘정성’이자 ‘격’이다. 내 자식 같은 생명체이고, 내 업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항상 어머니로부터 “혼을 박아 일하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내가 옷 한 벌마다 잘 되고 못 되고를 ‘정성’으로 판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객은 정말 브랜드의 피땀을 요구하는 존재다. 내가 내 혼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옷은 고객도 곧바로 알아챈다.

 

브랜드 이광희는 어떤 면에서 인간 이광희의 노력의 산물이자 확장이다. 할리데이비슨이나 부즈, 마코스 아다마스, 휴넷 등 이번 특집에서 만난 많은 브랜드의 리더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자식’에 비유한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만큼이나 리더의 에너지와 열정이 브랜드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브랜드가 리더만을 위한, 리더의 개인적인 애정으로 점철된, 리더 자신의 확장판이기만 하다면 영속하는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십은 정말 이론에 그치는 게 아닐까?

 

 

passion beyond fashion

브랜드의 존재 목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 브랜드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광희 대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이끌어 온 지난 25년을 이야기하며 스크랩북 하나를 펼쳤다. 스크랩북에는 그간 인간 이광희, 디자이너 이광희, 브랜드 이광희를 자랑스럽게 한 몇 가지 사실에 대한 기사와 사설, 캠페인 등의 자료들이 있었다.

 

1985년에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패션 디자이너란 직업은 인정받지 못했다. 디자이너란 이미지가 한국에서는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화장을 짙게 하고 제멋대로인 철부지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당시가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나. 패션 디자이너는 그야말로 사치를 조장하는 사람이 돼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패션에 대한 인식을 고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이름 자체가 중요했다기보다는 패션도 절대적인 생활 문화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매년 정기적인 컬렉션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이유였다.

 

1980년 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정기적인 컬렉션을 여는 디자이너는 없었다. 단발적인 패션쇼들은 존재했지만 매년 컬렉션을 열기에는 여건상 너무 많은 부담이 따랐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처음 쇼를 시작한 이후 정기 컬렉션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패션쇼가 사회적으로 과소비를 조장한다며 단속을 받을 정도였지만 세무서를 찾아가 자진 신고도 하고 설득도 하면서 패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이광희라는 브랜드는 런칭하고 얼마 되지 않아 꽤 일찍 백화점에 입점했다. 그래서 매장 직원들을 관리하는 업무만도 버거웠지만 패션에 대한 인식 전환이라는 책임만큼은 절대 남에게 미룰 수 없는 일 같았다고 한다.

 

‘패션은 생활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고, 나아가 사회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분야’라는 메시지를 이광희의 모든 일에 심고 싶었다는 이 대표는, 패션쇼와 컬렉션에 올라가는 의상뿐만 아니라 쇼에 쓰이는 소품 같은 디테일까지도 밤을 새워 준비했다. 1986년 처음 신라호텔에서 연 컬렉션에는 ‘생활 문화’를 강조하기 위해 테이블 세팅을 위한 테이블보, 센터피스, 냅킨에 이르기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이 대표는 이렇게 쇼를 준비하고 당시 대형 가수들의 디너쇼보다 더 비싼 패션쇼 티켓을 팔았지만 수익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기자들에게도 표를 그냥 주는 법이 없었는데 이유는 단 한 가지, 쇼가 옷을 알리고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열정의 근원은 자신의 이름과 브랜드라기보단 이를 초월한 책임감이었다.

 

처음 연 패션쇼 이야기를 듣고 싶다. 왜 그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고집스럽게 일을 했나?
처음에 패션쇼 티켓 가격을 보더니 쇼 연출하시는 분이 펄쩍 뛰며 이러면 안 된다고, 못 한다고 말렸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패션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고집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패션쇼에서 유명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고, 음악도 의뢰해 직접 제작하고, 꽃꽂이도 직접 해서 단순히 옷만 보여 주는 행사를 피했다. 그리고 패션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고, 그래서 패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당대 유명 작가나 사회 인사들을 쇼에 초청했다. 그 분들이 먼저 우리 쇼를 보고 생각이 바뀌면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섭외조차 어려운 분들이었지만 발품을 팔며 초청하려 노력했던 것은 ‘패션은 문화라는 인식’이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옷 이상의 것’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옷을 예쁘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더 비즈니스를 키울까 고민했다는 말은 이제까지 한마디도 안 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렸지만 줄곧 내가 존재하는 의미, 이광희라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의미가 중요했다. 그걸 생각하다 보니 행사를 통해서도 뭔가 새로운 제안을 하고 변화를 주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름다움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있다. 사회가 어둡다는 말이 많던 시대에 나와 내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브랜드 자체에 대한 책임감도 당연히 이 대표에게 존재한다. 브랜드에 대해서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특별함을 느낀다는 그녀는 이 책임감이 직접 낳은 아이에게 갖는 마음과 같다고 했다. 조직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자면, 어렵고 힘든 일들이 더 많았다는 이 대표. 그래도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나로 인해 패션의 ‘의미’가 바뀌고,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바뀌고,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 책임감이 패션(passion)이 된 것이다.

 

 

beyond pain, 통증은 악영향일 때만 온다

스스로 선택한 의무를 ‘열정’적으로 다했다는 그녀는,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시작된 passion이란 단어를 짚어냈다. 단어의 어원(그리스어 pathos, 라틴어 passio가 어원, 영어로는 ‘열정’이나 ‘고통을 받다’라는 뜻을 내포)처럼, 열정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리더에게나 어려운 점은 있다. 20대에 처음 백화점에 내 브랜드를 입점시킬 때 모 백화점 사장님이 내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까지 일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철이 없던 때였는데도 “나는 어렵게 일하고 싶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성경에도 ‘좁은 길로 가라’는 말이 있지 않나. 열정에는 당연히 이런 어려움이 수반된다.

 

그래도 나는 25년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렵고 힘들던 감정이 일반적인 ‘고통’이나 ‘부담감’만은 아닌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명감 같은 책임감을 따를 때 느끼는 어려움은 내게 너무 당연한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브랜드적인 관점에서 이 대표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남과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라면 누구나 느끼는 어려움이 고통은 아니라고 말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마치 신체에서 통증을 느끼는 감각인 통각에 미세한 개인차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신체가 ‘아프다’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자극이 일정 정도를 지나쳐 신체에 유해하다고 판단될 경우라고 한다. 그런데 이 대표가 느끼는 책임감은 자신에게 유해하거나, 브랜드에 유해하다고 판단되지 않아서일까. 이 책임감은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았다.

 

리더가 조직을 꾸려 나가고, 자신의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에는 심심치 않게 바이러스가 생긴다. 수치로 보이는 결과와 유한한 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스트레스나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p38, ‘초월적 책임감’ 참고). 그러나 브랜드를 초월해 패션 분야에 대한 책임감, 또 더 나아가 사회의 일부로서 갖는 책임감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나로 인한 작은 변화가 큰 기쁨을 주기에 이 대표에게 오히려 유익한 것으로 작용했다. passion이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고통을 받다’가 ‘열정적으로 일하다’로 변화한 것이다. ‘가치가 있는 것이 더 손이 많이 가는 법’이라는 이 대표의 말처럼 말이다.

 

집 앞 화단에 화초를 가꾸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잠깐 출장을 다녀온 사이에 신경을 못 썼더니 잡초는 잘만 자라는데, 꽃은 곧 시들어 버렸다. 이처럼 소중한 것은 가치가 없는 것보다 손이 많이 가는 법이다. 가치가 없는 것은 사람 손길이 없어도 잘 자라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초월적 책임감의 전이라는 과제

이광희라는 브랜드는 더 이상 인간 이광희만의 몫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브랜드를 넘어선 초월적 책임감을 토대로 일했고, 그것이 브랜드를 ‘리더의 확장판’,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이제 이 대표와는 가족같이 지내 온 직원들에게 어떻게 초월적 책임감을 덧입혀, 브랜드 ‘이광희’를 영속하게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브랜드의 시작부터 이름까지, 특별히 브랜드가 리더 개인과 연관점이 많은 만큼, 진정한 페어런트십(p42 참고)을 가지고 브랜드가 이 대표 없이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브랜드 ‘이광희’가 영속하는 방법일 것이다.

 

 

브랜드 이광희의 초월적 책임감
이제 고객들과 함께 하게 된 크리스마스 컬렉션
“크리스마스 컬렉션을 시작하던 해는 ‘사회가 너무 어둡다’는 이야기를 많이 할 때였다. 그 때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를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하고 가장 행복할 때는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이 들어 크리스마스를 더 아름답게, 즐겁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게 크리스마스 컬렉션을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컬렉션은 이광희 부띠끄가 크리스마스 테이블이나 꽃장식, 트리, 리스 등을 준비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전시하는 행사다. 이 전시를 통해 마련되는 수익금은 모두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되어 결국 수익적으로는 남는 것이 없는 행사지만, 과거 이 대표와 직원들은 전시 전 한달 남짓한 시간의 대부분을 이 컬렉션을 준비하는 데 사용했다. 컬렉션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점이 많아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지만 컬렉션이 시작되고 나면 무엇보다 뿌듯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 컬렉션이 의미 있는 이유는 브랜드 차원에서 좋은 일을 하려고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봉사회’가 조직되는 등 고객이 참여하는 선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컬렉션을 눈여겨 보던 고객들 중 몇 명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이 대표에게 크리스마스 테이블 꾸미기나 장식 만들기를 배우고, 결국 그것으로 컬렉션까지 열게 된 것이다. 전시를 하고 판매해서 생긴 수익금이 좋은 데 쓰이기 때문에 단순히 강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해 모인 고객들이다.
 
사단법인 희망고(희망의 망고나무)
사단법인 ‘희망고’의 대표. 이 대표의 또 다른 수식어다. ‘희망의 망고나무’를 줄여 만든 희망고라는 브랜드는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작년 3월경에 이곳에 봉사 활동을 갔던 이 대표는 식량이 부족한 그곳에 꼭 필요한 것이 망고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량과 먹을 물이 부족한 수단에서 망고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키울 수 있고, 일 년에 두 번 열매를 맺어 이곳 사람들의 주린 배도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망고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약 5~7년이 걸리기에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한 그루에 15달러나 하는 묘목 값을 수단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수단 사람들의 90%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이 대표는 희망고의 이름으로 패션쇼를 열거나 전시를 하며, 판매수익과 기부금으로 이들을 돕고 있다. 작년 11월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렸던 ‘레전드 오브 더 망고(Legend of the Mango)’ 패션쇼나 최근 홍익대 섬유미술 패션디자인과 학생들과 함께 티셔츠를 제작해 전시한 ‘희망고 展’이 그 구체적인 예다.
이 대표의 이런 행보 때문일까. 이 대표가 이토록 패션 이외의 다른 일로 바쁜데도 고객들은 ‘혹시 내가 입는 옷의 디자인이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함께 이 일에 참여하는 등 이 대표를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브랜드)이광희를 입는 것은 격을 입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초월적 책임감에서 비롯된 모든 일이 결국 고객이 느끼는 브랜드의 격을 높이는 데 일조하게 된 것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경영》에서 리더가 직원들이 일을 통해 ‘자신의 유한한 육체의 틀’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좀 더 ‘의미 있는 실체’와 연결되도록 하면 직원들에게 힘과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그 기업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는것이다. 이렇듯 리더의 초월적 책임감은 ‘의미 있는 실체’로서 직원들에게 작용할 수 있다.

 

 

나로 인해 패션의 '의미'가 바뀌고,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바뀌고,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브랜드십이 중요한 이유는 브랜드가 리더에게 기대어 자립하지 못할 경우, 유한한 한 개인의 수명과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많은 리더들이 이를 대비하여 후계자를 정하고 개인적인 교육을 한다(특히 이런 교육은 가업처럼 내려오는 브랜드나 기업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를 보통 승계 계획(succession plan)을 수립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리더의 후계자뿐만 아니라 기업과 조직에서 직원들이 언제든지 상급 관리자를 대체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승계 계획이 보통 직원들의 이직이나 이탈로 인한 업무 공백을 없애기 위한 ‘직무 승계’ 프로그램일 뿐 브랜드의 철학이나 가치 유지를 위한 교육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리더가 가진 초월적 책임감이 ‘교육’되기 어려운 암묵지(暗默知)라는 것은 명백하다. 브랜드십을 갖기 위해 직원 모두에게 초월적 책임감을 심어 주는 것은 리더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직원들이 초월적 책임감을 가지려면 이 책임 역시 리더 자신처럼 누군가에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느끼고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직원들도 그 책임감을 고통(passion)이 아닌 열정(passion)으로 느낄 것이고, 그 무게감도 100kg이 아니라 0kg에 가깝게 느낄 것이다.

 

지난 25년간 이광희라는 브랜드는 리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성장해 왔다. 이제 다음 25년, 브랜드 반 세기를 준비하면서 자신 없이도 영속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이 대표는 자신이, 그리고 브랜드가 브랜드십을 가지는 것을 남은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나와 함께 지금까지 20년을 일한 직원도 있다. 물어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옷’ 이외의 일을 하는 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함께한 것 같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일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내가 강요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나와 함께 일하면서 같이 느끼면 좋겠다. 내가 없어도 이런 생각을 가진 브랜드가 계속 이어지도록 하나씩 준비하는 것이 내게 남은 과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우화 작가인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은 “현자(賢者)는 갑자기 사망하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Death never takes the wise man by surprise, he is always ready to go). 그 말을 브랜드십을 갖기 위해 준비하는 리더에게 인용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말이다.

 

“브랜드의 영속을 원하는 현명한 리더는 (브랜드를 두고) 갑자기 떠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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