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을 선점하는 전략, 독점의 기술
'전략 기획 회의'를 '독점 전망 훈련'으로 교체하라!
Written by 밀렌드 M. 레레
시즌2 / Vol.17 브랜드 전략 (2010년 10월 발행)
1962년, ‘경영’이란 단어는 미국의 경영학자 챈들러(A.D. Chandler Jr.)에 의해 그간 전쟁 용어로만 사용돼 온 ‘전략’이란 단어와 만나게 된다. 바로 《전략과 구조(Strategy And Structure)》라는 책에서다. 이 두 단어의 결합은 단순한 의미상의 조합으로 끝나지 않고, 지난 50여 년간 무한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각양각색의 의미들을 파생시켰다. 그중 1970~1980년대를 뜨겁게 달군 마이클 포터의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 개념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경영 전략의 모듈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그의 경쟁우위 개념이 기업의 외부 환경 분석에 초점이 맞춰져 실질적인 대응법 제시에는 부족하다는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그 후 등장한 ‘경영자원론’이나 ‘핵심역량’ ‘포지셔닝’이란 개념도 궁극적으로는 마이클 포터의 경쟁우위 개념에 다리를 걸쳐 놓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독점의 기술(Monopoly Rules)》의 저자 밀랜드 레레는 경영계에서 정설처럼 여겨진 ‘경쟁우위’를 두고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지속적인 경쟁우위’가 기업에게 수익을 가져다 줄까?” 적어도 현재까지는 레레가 전 세계 경영자들의 관심을 독점하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경쟁우위’ 개념보다 우위(advantage)에 있다는 ‘독점의 기술’은 무엇일까?

경쟁우위 개념의 핵심 요소인 ‘차별화’와 ‘낮은 원가’는 확실한 승리 요인이라는 것이 경영계 전반의 믿음이었다. ‘이었다’라는 과거형 어미가 어색할 정도로 오늘 우리가 가진 고민들,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들은 실로 차별화와 원가절감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레레는 “큰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여러 공통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로는 그 성공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여러 해외 사례 중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월마트를 들여다보자.
알다시피 월마트는 많은 경영학의 대가들이 꼽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차별화와 낮은 가격)를 통한 성공 기업의 대표 사례다. 각 매장에서 공급업체로 POS(Point of Sales) 정보를 바로 전달할 수 있도록 자체 위성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갖추고, 매장별 평균 재고 보충기간을 1주에 2회(업계 평균의 절반)로 함으로써 양질의 제품을 최저가에 판매하며 ‘원가 우위’를 지켜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월마트의 노력은 경쟁자들과는 현저한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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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되는 낮은 원가와 차별화 요인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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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레레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우위의 효익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 판카지 게마와트(Pankaj Ghemawat)의 월마트 성공 연구에서 자신의 주장(월마트의 성공 요인은 낮은 원가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냈다. 게마와트가 분석한 월마트 성공의 이유는 ‘사업 초기, 대형 마트가 없던 소도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자본을 모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시스템을 구축한 것’인데, 레레는 소도시에서 월마트의 존재를 ‘독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월마트가 성공한 진짜 이유는 ‘독점’이며 그 후 자연스럽게 경쟁우위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낮은 원가와 차별화 요인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월마트 사례 말고도 그가 《독점의 기술》에서 제시하는 사례는 수십 가지다. 그 사례들을 알기 전에, 우선 그가 말하는 ‘독점’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공정거래법 등 법적 규제가 탄탄한 21세기 자본주의에서 웬 독점인가 싶겠지만, 여기서의 독점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독점(특정 자본이 생산과 시장을 지배)과는 다르다.
레레가 말하는 독점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바로 ‘장소’와 ‘시간’이다. 즉 ‘한 기업이 이익을 남길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기간과 그 기간 동안 소유할 만한(수익을 낼 만한) 사업 영역이나 공간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대학의 무용학과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1명, 여학생이 5명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들은 학년별로 한 학기에 한 편씩 작품을 올려야 하는데 극에 필요한 등장인물은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다. 그렇다면 여학생들은 2개의 배역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반면, 남학생은 그 역할에 독점권을 갖는다. 적어도 군대에 간 남자 동기 2명이 제대하는 겨울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남학생은 학교라는 ‘장소’에서(학교 작품이 아니라면 굳이 이 남학생이 그 역을 맡을 필요가 없다), ‘일정 기간’ 동안(동기가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그 역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독점권을 가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수없이 많다. 매점이 하나뿐인 병원, 카페가 하나뿐인 일정 구역, 시험 당일 각종 수험장 앞에서 지우개와 연필을 파는 유일한 아주머니. 그들은 ‘특정 장소’와 ‘시간’ 안에서, 독점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적 독점(앞서 설명한 것은 특정한 상황 하에 생겨난 독점이므로)’ 외에 레레가 설명하는 독점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자산적 독점’이다. 이는 주로 눈에 보이는 자산에 뿌리를 두는데 혁신적인 기술,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이다. 앞서 소개한 무용학과 학생 중 현재 재학 중인 남학생이 2명이었더라도, 오직 한 남학생만이 여주인공으로 뽑힌 47kg의 여학생을 들어올릴 수 있는 힘(자산)이 있다면 그는 자산적 독점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그 독점은 나머지 한 남학생이 같은 힘을 갖게 되는 순간 사라질 독점이기에 역시‘시간’에 구애를 받는다. 기업이 이러한 자산적 독점, 혹은 상황적 독점을 가질 수 있고, 또 그 독점 기간을 최대한 연장할 수 있다면 분명 수월하게 수익 창출에 성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독점’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레레에게 들어 보자.
② 우리 기업은 경쟁업체의 눈에 잘 띄지 않는가?
③ 우리 기업은 경쟁자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가?
④ 우리 기업은 ‘경쟁자’를 염두에 둔다기보다는 ‘가치’에 가격을 매기는가?
⑤ 우리 기업은 현재 많은 돈을 벌고 있는가?

그에게 쉴새 없이 변하는 고객, 산업 환경, 경쟁사를 설명하기에 이만큼 적합한 단 어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만화경(시장) 속에서 고객 역동성(Customer Dynamics), 산업 역동성(Industry Dynamics), 경쟁자 역동성(Competitor Dynamics)으로 빚 어지는 움직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3가지 힘의 교집합 영역이 앞으로 독점해야 할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집합 영 역(빈 공간)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 산업, 경쟁자, 그리고 시장 전반의 트렌드에 의해 쉴 새 없이 변한다. 그곳을 알아차리 는 것이 독점의 기술이다.
어디에서 소비자의 니즈가 일고 있는가, 신기술이 등장하는가, 어디에서 경쟁사들의 무관심 영역이 교차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곳이 바로 ‘빈 공간’이며 독점력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만약 이러한 공간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결과적으로 고객의 마음을 독점할 수 있게 된다. 대체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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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 세상은 점차 벌거숭이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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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빈 공간’에 관한 이야기는 (비즈니스 전략이 아닌) ‘브랜드 전략 측면’에서는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어쩌면 ‘브랜드 전략’과 ‘비즈니스 전략’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와 닿지 않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독자를 위해 (극단적이지만) 예를 들자면, 돈이 되는 불량식품 비즈니스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이것은 (수익 창출의 측면에서) 비즈니스일 수는 있지만 브랜드이기는 힘들다. 브랜드란 ‘단순히 인지도와 충성도, 그리고 수익성을 넘어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주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즉 모든 브랜드가 비즈니스일 수는 있지만 (일시적 적자를 보더라도 그것이 고객과의 신뢰와 관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무형적 흑자가 될 수도 있다) 모든 비즈니스가 브랜드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레레의 빈 공간은 비즈니스 전략을 위한 힌트일 수는 있어도 브랜드 전략, 즉 철학을 가시화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전략’을 말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장차 브랜드로 진화될 비즈니스도 그가 말하는 독점 공간에서 출발할 때 더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 공간은 시장과 고객이 원하고, 경쟁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영역이기에 그만큼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가 숨겨진 공간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을 선점해 올바른 가치를 전달한다면 그만큼 브랜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발견한 숨은 니즈를 올바르게 사용할 것인지, 세상의 기준에서 그릇된 방법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오로지 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자의 몫이다. 전자의 사람들이 그 공간을 더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찾아내 활용하길 바랄 뿐이다.
그 독점 공간이 틈새시장과는 무엇이 다른지 의아할 수도 있다. 틈새시장은 (대부분) 작은 규모의 특수한 니즈가 있는 시장을 지칭할 때가 많다. 하지만 레레는 시장의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았을뿐더러 그가 제시하는 대부분의 사례는 대중 시장에서 활약하는 브랜드가 어떻게 독점 공간을 찾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혹시 포지셔닝과 독점을 비교하고 싶다면 포지셔닝 맵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길 바란다. 가격과 퀄리티라는 두 축을 그려 두고 시장에서 ‘경쟁자 대비, 자사의 위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고민할 때 도움이 되는 포지셔닝 전략은 독점의 ‘결과’로, 혹은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으로는 활용할 수 있지만 독점 공간이 바로 포지셔닝 공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포지셔닝 맵 자체로는 독점에서 이야기하는 고객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이어질 레레와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겠지만, 브랜드를 통한 독점은 일반적인 비즈니스 관점에서처럼 더 좋은 제품으로, 더 많은 광고 활동으로,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 독점은 비즈니스 독점(물론 이 안에 브랜드 독점이 포함되기에 명확한 선을 긋기는 힘들지만)보다 훨씬 모호하고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애플, 할리데이비슨, 포르셰 같은 브랜드는 자신을 숭배에 가까운 태도로 모시는(?) 마니아를 얻었다. 그들에게는 타사 브랜드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광고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가격을 더 낮춘다고 해서, 더 다양한 유통망을 갖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처럼 설명하기 모호한 독점의 형태가 더욱 각광 받는 이유는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구도 속에서 점차 구체적인 공간이나 기술에 근거한 독점의 수명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모방이 힘든 (상황적 독점과 자산적 독점이 모호하게 뒤섞인) 독점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다. 전 세계 모든 기업이 매 순간 당신의 기업이 어떤 제품을 어떤 디자인으로, 또 어떤 채널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지 지켜보고 즉각 모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요즘 우리는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 세상은 점차 벌거숭이가 돼 가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끊임없이 찾는 태도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소비자 행동양식 조사 등의 전통적인 리서치만으로는 알아내기 힘들다. 조사 결과 너머에 있는 몇몇 요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자문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아무 거부감 없이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유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들은 왜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나?’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과거 우리 브랜드의 어떤 행동에서 기인하는가?’






최근 삼성,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그들의 관심사를 바꿨을 때 독특한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갑자기 혁신 전략을 짰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수년간 문화가 바뀌어 왔고,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어떤 관점을 갖는가가 관건이다. 이렇듯 전략은 자사 문화와 잘 융합되는 방향으로 수립돼야 한다. 전략을 바꾸고 싶다면 문화를 바꿔야 할 것이며, 문화를 바꾸고 싶다면 철학을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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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은 높은데 이익은 없다? 수시로 경쟁자를 감시하고 그들의 움직임에 상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해도 남는 것은 상처투성이 마음과 경고등이 켜진 현금흐름표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독점 영역이 어디인지를 살펴봐야 할 때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마트끼리 서로 뜯고 뜯기는 혈투 속에서도 경쟁 영역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코스트코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독자라면 다소 급진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는 레레의 주장이 억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독점은 수단이 아니라 궁극적 목표다. 남보다 먼저 독점을 발견하고 차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오늘도 전쟁처럼 치러질 ‘전략 기획 회의’를 ‘독점 전망 훈련’으로 교체하라!”
어쩌면 독점을 가능케 하는 빈 공간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그 빈 공간을 보는 관점에 대해 레레는 마지막까지 ‘스스로 타성에 젖지 말고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제안했다. 그 질문은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 고객은 누구인지, 시장의 흐름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하는 스스로에 대한, 또 시장에 대한, 소비자에 대한 독점적 지식만이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는 붓대를 독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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